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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시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마고가 쇠퇴의 분기, 이와미 은광 쟁탈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아마고가 쇠퇴의 분기, 이와미 은광 쟁탈전 에이로쿠 3년(1560년) 이즈모의 전국 다이묘 아마고 하루히사(尼子晴久)가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즈모 지방을 차지한 아마고가가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지듯 멸망으로 향하는 분기점이 바로 이 하루히사씨의 죽음입니다. 뒤를 이은 아마코 요시히사가 결코 선대와 비교해서 특별히 무능했다고 하는 것은 아지만 시대의 흐름이나 주위의 환경의 변화가 그의 죽음과 함께 닥쳐왔습니다. 가마쿠라 때부터 츄고쿠 지방에 군림한 두개의 큰 세력은 스오우의 오오우치가와 이즈모의 아마고가였습니다.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일본의 이와미(石見) 은광은 그 가마쿠라 시대에 발견된 이래 귀중한 자금원으로서 이 두세력의 사이에서 쟁탈전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기모쓰기가, 거짓전투로 멸망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기모쓰기가, 거짓전투로 멸망하다 에이로쿠4년(1561년) 12월 21일, 교전중이었던 시마즈(島津)가와 기모쓰기(肝付)가가 일단 화해가 성립했습니다. 전국시대의 큐슈라고 말하면 오오우치, 오오토모 그리고 시마즈 3가의 '큐슈 삼국지'가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삼국으로 갈라지기 전이고, 남큐슈에서는 사츠마(薩摩)의 시마즈가와 후유가(日向)의 이토가라고 하는 두 세력이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양자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오스미(大隅)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 기모쓰키가 였습니다. 기모쓰기 17대 당주는 기모쓰기 요시카네(肝付良兼), 시마즈의 당주는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 그리고 이토가의 당주는 이토 요시스게(伊東義佑)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세력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2차 코우노다이 전투의 서막이 밝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2차 코우노다이 전투의 서막이 밝다 에이로쿠4년(1561년) 안보의 사토미 요시히로가 수군을 인솔해 호조의 사가미 미우라(三浦)에 쳐들어갔습니다. 안보의 사토미가는 키요카즈 겐지를 이어받는 닛타 요시시게(新田義重)의 아들 닛타 도리슌(新田義俊)이, 우에노의 사토미에 이주해, 토지의 이름을 취해 사토미를 자칭해 시작합니다. 그 자손이 안보의 수호를 명령받고, 11대 당주 사토미 요시자네(里見義実)가 안보의 평정에 성공해 안보사토미(安房里見)라 불리게 됩니다. 그 후, 안보시라하마성(安房白浜城)을 거성으로 해, 세력 확대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대후 즉, 17대 당주가 되는 것이 오늘의 주역 요시히로의 아버지 사토미 요시타카(里見義堯)입니다. 그는 사실 직계 즉, 본가의 혈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엔로쿠4년(1561년)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대격돌, 전국시대 최고 전투 중 하나인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하치만바라의 전투(八幡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북시나노의 사이(犀)강과 치쿠마(千曲)강의 합류하는 장소인 '가와나카지마' 신겐과 겐신은 이 가와나카지마에서 총 5 회의 전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본진으로 쳐 들어온 신겐에, 말을 탄 겐신이 손에 가진 군검으로 베고, 이를 부채로 막는 신겐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투가 이 4번째 전투입니다. 그냥 가와나카지마 전투라고 하면 이 전투를 말하는 것입니다. 겐신의 부대는 1만 3천의 군세를 이끌고 사이죠산(妻女山)에 진을 치고, 신겐은 2만의 군세를 카이츠성(海津..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모토나리와 오오토모 소린의 대결, 모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모토나리와 오오토모 소린의 대결, 모지성 공방전 에이로쿠4년(1561년) 모리 모토나리가 오오토모 소린의 공격을 받고 있던 모지성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를 파견했습니다. 전국 3대 기습전의 하나라고 하는 이쓰쿠시마 전투로 스에 하루카타를 넘어뜨려 젊은 당주 오오우치 요시나가를 할복시키고, 츄고쿠 지방의 명문 오오우치씨를 멸망시킨 아키의 전국 다이묘 모리 모토나리는 이제 시선을 아키 밖으로 돌립니다. 오오우치가와 패권을 다투고 있던, 아마고가도 이때 약체화하기 시작합니다.(아마고의 몰락) 그런 가운데 큐슈의 입구 모지에 있는 모지성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오오우치가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오우치가가 멸망 해(오오우치 멸망), 오오토모 소린이 맡을 뻔한 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복수 시도, 히토토리바시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복수 시도, 히토토리바시 전투 덴쇼 13년(1585년) 11월 17일, 아버지의 애도를 하는 전투로 다테 마사무네와 하타케야마, 사타케, 아시나의 연합군이 세토가와(瀬戸川)에 가설된 히토토리바시(다리)에서 펼친 싸움 '히토토리바시 전투(人取橋の合戦)'가 있었습니다. 이윽고 오슈의 패왕이 되는,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는 어릴 적 천연두에 걸려 한쪽 눈을 실명한 뒤에, 모친에게 버림 받아(요시히메) 위기에 빠졌었습니다. 명승 코사이 소우이쯔(虎哉宗乙)에게 도움을 받아 버틴 그는 15세에 첫 출진을 해, 다테의 옛 영토를 되찾습니다. 이때, 기나이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할복 해(혼노지의 변), 아케치 미쓰히데를 하시바 히데요시가 토벌한 야마자키의 전투(야마자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마사무네의 영토확장, 스리아게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마사무네의 영토확장, 스리아게하라 전투 덴쇼 17년(1589년) 6월 5일, 다테 마사무네가 무츠 아이즈의 아시나 모리시게(芦名盛重)를 물리친 스리아게하라 전투(摺上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파죽지세로 무츠, 데와의 평정을 하던 젊은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히토토리바시 전투)는 덴쇼17년의 초 봄에 모가미, 오사키 가문과 강화에 성공해, 4월에는 소우마 가문에 공격을 시작 합니다. 이 행동에 불안을 가지게 된 것이 무츠 아이즈의 아시나 모리시게(芦名盛重)입니다. 모리시게는 아버지 사타케 요시시게(佐竹義重)와 결탁해 다테를 공격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정보가 마사무네의 귀에 들어갑니다. 마사무네가 이미 아시나의 중신 이나와시로 모리쿠니(猪苗代盛国)와 내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오케하자마 전투로 당시 천하에 제일 가까웠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어이없이 전사해 한 때의 양아치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단번에 전국시대의 무대 전면에 뛰어 오릅니다. 그리고 이 오케하자마의 전투에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3년간의 인질 생활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겐신등이 그랬듯이 알기 쉽게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오다카성, 나루미성은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었습니다. 한때는 오다가의 성들이었지만 나루미 성주 야마구치 노리쯔구(山口教継)는 자신 성 뿐만아니라 오다카성도 점령해 아마가와가에 투항합니다. 이 성들을 되찾기 위해 츠케시로를 지은 오다측에 요시모토의 선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엔로쿠 3년(1560년) 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중 하나인 오케하자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보았듯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오다가와의 국경선으로 도착합니다. 이런 가운데 구쓰카케에서 서쪽으로 이동 중이었던 요시모토 본대에게 희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다측이 설치하고 있던 츠케시로 와시즈를 중신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가 눈 깜짝할 순간에 점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군의 승리에 기분의 좋아진 요시모토는 근처의 오케하자마에 진을 쳐 군세를 쉬게 합니다. 한편, 와시즈가 점령된 일을 알게 된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은 야단 법석이 납니다. 게다가 요시모토군은 허세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의 전투(1)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의 전투(1)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에이로쿠 3년(1560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군에 출진 명령을 내렸습니다.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에이로쿠 3년(1560년)에 출진 명령을 내려 슨푸를 카케가와성, 인마성, 요시다성, 오카자키성, 치리우성과 벌써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던 도토우미에서 미카와의 성으로 이동해, 오와리의 국경을 넘고, 콘도우 카게하루(近藤景春)의 구쓰카케성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앞에는 이마가와가의 최전선 나루미성과 오다카성 한층 더 앞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요시모토의 출진은 상경이 목적이지, 노부나가와의 마찰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상경이 목적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설 쪽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