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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시대

일본 전국시대 연표; 히데요시와 이야에스, 무로마치 후기 모모야마 시대 일본 전국시대 연표; 히데요시와 이야에스, 무로마치 후기 모모야마 시대 이전시대: 오다노부나가의 무대, 무로마치 후기 아즈치 시대 혼노지의 변으로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히데요시가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른 것에서 부터 도쿠가와 이야에스가 에도 막부를 세워 전국시대를 종식시킬 때 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분로쿠, 게이쵸의 역'이라 부르는 임진왜란은 다들 잘 아실거라 생각해 서술하지 않으려 합니다. 연호 년도 일자 사건 덴쇼 1586년 12월 19일 히데요시,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르다 1587년 3월 8일 츠루사키성 공방전(2) 묘우린니의 츠루사키성 탈환 4월 17일 시마즈 요시히사 배수의 진 타카성,네지로자카 전투 6월 19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크리..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임진왜란 서막의 불협화음, 우메키타의 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임진왜란 서막의 불협화음, 우메키타의 란 분로쿠 원년(1592년) 6월 15일, 사츠마 유노오(湯之尾)의 지도우(地頭) 우메키타 쿠니카네(梅北国兼)가 사시키성(佐敷城)을 습격해 빼앗았습니다. 우메키타의 란, 혹은 우메키타 잇키로 불리는 임진왜란 중에 일어난 반란입니다. 먼저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쵸의 역 이라고 부른는 임진왜란은 조선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또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나중에 연표에 사건만 표시하고 지나가고, 기회가 된다면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임진왜란 기간에 일본에 있었던 사건 위주로 서술하려 합니다. 분로쿠 원년(1592년) 4월 13일,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히젠 나고야성(名護屋城)에 거점을 두고, 차례 차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슈의 휘몰아치는 혼란, 쿠노헤의 난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슈의 휘몰아치는 혼란, 쿠노헤의 난 덴쇼19년(1591년) 9월 4일, 이 해의 3월 경에 발발한 '쿠노헤의 난(九戸の乱)'으로 쿠노헤성에서 농성 하고 있던 쿠노헤 마사자네(九戸政実)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장에 포위되어 항복 했습니다. 오다와라 정벌(오다와라 정벌)은 오다와라성 함락(오다와라성 함락)으로 끝났습니다. 이것으로 호조를 멸망시켜 버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여세를 몰아 '오슈 정벌'로 향합니다. 정벌이라 해도 실제로 전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오다와라성을 정벌할 때 참가하지 않은 무장의 영지를 참가한 무장에게 수여한 것이었습니다. 다테 마사무네 역시 늦게 참전한데다 히데요시와 친분이 있던 이시나가문을 멸했기 때문에 영지의 대부분을 빼앗깁니다. 여하튼 이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오슈 발발 잇키의 변명에 성공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오슈 발발 잇키의 변명에 성공하다 덴쇼 19년(1591년) 2월 4일, 앞의 카사이, 오사키 잇키의 주모자라고 의심된 다테 마사무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변명하기 위해 상경했습니다.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덴쇼 18년(1590년) 7월에 오다와라성을 점령해, 관동에 군림한 호조를 멸망시켜(호조 멸망), 확실히 천하를 수중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 기세로, 오슈 정벌을 합니다. 그것은 전투라고 하는 것보다 오다와라성 공격때 참전하지 않았던 사람을 처분하고, 참전한 사람을 우대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영지가 몰수된 토호쿠의 무장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남북조대부터 오슈를 지배하는 명문..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히데요시를 배반? 카사이, 오사키 잇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히데요시를 배반? 카사이, 오사키 잇키 덴쇼 18년(1590년) 11월 24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슈 정벌에 반발해 10월 무렵에 발발하고 있던 카사이(葛西), 오사키(大崎) 잇키로, 잇키 세력에 포위되어 고립상태로 농성하던 사누마성(佐沼城)의 키무라 요시키요(木村吉清), 키요히사(清久) 부자가 구출되었습니다. 덴쇼 18년(1590년)의 3월 말, 호조의 오다와라성 정벌에(오다와라 정벌 시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산하에 들어오지 않은 토호쿠의 여러 무장에게, 오다와라 공격에 참전하도록 명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3개월에 걸치는 싸움의 끝인 7월 5일에 오다와라성이 함락 된 후 호조 우지마사가 할복, 아들 우지나오가 코노야마에 들어가, 사실상 호조는 멸망..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도쿠가와 이야에스, 에도성에 들어가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도쿠가와 이야에스, 에도성에 들어가다 덴쇼 18년(1590년) 8월 1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갔습니다. 8월 초하루를 핫사쿠(八朔)라고 합니다. 이 날, 농가에서는 새로운 곡물을 거둔 것을 축하하는 '타노미노 셋쿠(田実の節句)'라고 하는 행사를 합니다. 이 축하의 기원은,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제일 오래된 설은, 죠큐의 란(承久の乱) 후의 고사가덴노(後嵯峨天皇)가 덴노가 되기 전의 불우하던 시절에, 가신이 타네지쯔(田実: 벼)를 헌상 해 위로한 것을 즉위 후에 항례의 행사로 했다고 하는 것 입니다. 아무튼 가마쿠라 시대의 후기부터, 무가의 사회에서도 이 풍습이 받아들여져 8월 1일을 축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에도시대에서 부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간 경..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의 실책? 오다와라성 논공행상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히데요시의 실책? 오다와라성 논공행상 덴쇼 18년(1590년) 7월 13일, 오다와라 성에 입성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와라 정벌에 대한 논공행상을 했습니다. 논공행상이란 공훈에 따라 상을 주는 일 입니다. 즉, 오다와라 정벌에 의해 멸망 한 호조 가문의 영지(호조 멸망)를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에게 새 영지를 줄 것인지 등이 논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토카이(미카와, 시나노, 가이, 도토미, 스루가 등)에 대신해, 원래 호조의 영지였던 관동 일대, 이른바 간핫슈(関八州: 관동 팔주)가 주어집니다. 물론, 이 은상을 마음 속에서야 오히려 벌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도, 은상은 즉 명령이므로 거부하는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 때, 이에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호조가 멸망, 오다와라성 함락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호조가 멸망, 오다와라성 함락되다 덴쇼 18년(1590년) 7월 5일, 오다와라성에서 농성 하고 있던 호조 우지마사, 우지나오 부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항복을 신청했습니다. 이것으로 전국 다이묘 호조가가 멸망했습니다.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천하 통일을 진행시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덴쇼 13년(1585년)에는 시코쿠를 평정 해(모토치카 항복), 덴쇼 14년부터 15년에 걸쳐 큐슈를 평정 해(요시히사 항복), 그 사이에 에치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와도 주종 관계를 묶어(우에스기 카게카쓰 상경)는 이제 관동의 호조를 공격합니다. 4월 3일, 오다와라성을 포위해 하룻밤에 이시카키산성을 지은 히데요시(오다와라성 포위)는 이제 장수들을 시켜 여러 지성들을 공격합니다.(오시성, 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와라 정벌중 가장 비참했던, 하치오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와라 정벌중 가장 비참했던, 하치오지성 공방전 덴쇼18년(1590년) 6월 23일, 이 해의 3월부터 개시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오다와라 정벌의 별동대에 의한 하치오지성공격이 개시되어 이날, 하치오지성은 함락 됐습니다. 천하를 눈 앞에 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지막 거물인 호조를 공격하기 위해 개시한 오다와라 정벌(오다와라 정벌) 히데요시가, 호조 우지마사, 우지나오가 있는 오다와라성을 22만의 대군으로 포위한 것이, 덴쇼 18년(1590년) 4월 3일이었습니다.(오다와라성 포위) 한편, 호조의 군세는 5만 6천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군세가 오다와라성에 농성하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관동 각지에 있는 호조의 지성에 군세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지요. 여러 성주가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가이히메와 떠있는 오시성, 히데요시군을 무찌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가이히메와 떠있는 오시성, 히데요시군을 무찌르다 덴쇼 18년(1590년) 6월 9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호조의 무사시 오시성(忍城) 공략을 위해 제방을 구축했습니다. 천하를 눈 앞에 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지막 거물인 호조를 공격하기 위해 개시한 오다와라 정벌(오다와라 정벌) 히데요시가, 호조 우지마사, 우지나오가 있는 오다와라성을 22만의 대군으로 포위한 것이, 덴쇼 18년(1590년) 4월 3일이었습니다.(오다와라성 포위) 한편, 호조의 군세는 5만 6천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군세가 오다와라성에 농성하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관동 각지에 있는 호조의 지성에 군세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지요. 여러 성주가 군을 인솔해 오다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