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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시대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전국시대의 평균수명과 장수한 무장들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전국시대의 평균수명과 장수한 무장들 전국시대의 평균수명은 35세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의료시설과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짧은 수명을 가졌는데, 여기에 전란이 거듭되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40~50세 사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장수하는 무장들이 있었습니다. 장수한 나이별로 등수를 매겨 보았습니다. 1위 호조 겐안(北条幻庵) 97세의 장수를 자랑한 무장입니다. 호조 소운의 아이로서 탄생해, 호조의 5대 우지나오(氏直)의 시대까지 살았습니다. 그 생애는 가히 호조가의 발호와 멸망을 지켜본 생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위 류조지 이에카네(龍造寺家兼) 93세의 장수를 자랑한 류조지 이에카네는 쇼니가와 분쟁하며 류조지가의 재흥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결국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색의 심리를 이용한 다케다 신겐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색의 심리를 이용한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이 인솔하는 군대 중에는 갑옷, 무기, 마구를 붉은색으로 칠한 부대(赤備え)가 있었습니다. '붉은 색'으로 염색해 적, 아군의 판별이 쉽게 되는데다가, 적에게의 위협의 목적이 있던 것입니다. '붉은 색'은 진출과 팽창을 나타내는 색입니다. 적이 보면, 다케다 신겐의 부대의 붉은 물결은 상당히 무서웠을 것입니다. 당시 붉은 색을 내기 위해, 진샤(辰砂)라 불리는 희소인 광물을 사용하고 있어 정예 부대에 한정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전국시대의 화장은 어땠을까?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전국시대의 화장은 어땠을까? 전국시대 여성들이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어디까지나 여성이었습니다. 여성 특유의 자신을 꾸미고자 하는 욕구는 그대로 있었지요. 또, 남자들도 전투 등에서 화장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전국시대의 화장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전국시대 전기의 화장 전국시대의 전기의 여성들은 맨 살갗의 색을 강조해 별로 백분(白粉)을 바르지 않는 화장법을 택했습니다. 한편, 남성들은 싸움에 임하는 무사들이 화장을 하는 풍조가 태어나 적에게 목을 잘려도 보기 흉하지 않게, 눈썹을 연필로 그리고, 얼굴에 백분을 발랐습니다. 우리가 흔히 일본 그림에서 보는 새하얀 무장들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개중에는 립스틱처럼 입술을 붉게 칠하거나 치아에 검은색으로 칠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2) 미녀의 기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2) 미녀의 기준 전국시대에는 다양한 무장들이 난립하는 전란의 시대였지만, 그래도 현재와 비슷하게 미남, 미녀가 선호되었었습니다. 미남의 기준은 저번에 살펴 봤지요.(전국시대 미남의 기준) 이번에 살펴볼 미녀의 기준은 '노우'(일본전통극)에 나오는 가면과도 같은 얼굴입니다. 사실 이 가면이 당대의 미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고 갸름한 얼굴, 눈초리가 길게 째졌으며, 눈과 입이 작을 것 그럼 전국시대에 미녀로 전해지는 이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관련 포스팅이 있는 경우 이름을 누르시면 이동할 수 있게 링크해 두었습니다. 오이치노가타(お市の方) 전국시대 제1의 미녀로 알려진 인물로 아자이 나가마사, 시바타 가쓰이에를 남편으로 했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1) 미남의 기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1) 미남의 기준 전국시대에는 다양한 무장들이 난립하는 전란의 시대였지만, 그래도 현재와 비슷하게 미남, 미녀가 선호되었었습니다. 먼저 미남의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미남의 기준은 키가 크고, 살쪘으며, 머리카락이 풍성할 것 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조건을 가진 미남들은 누가 있을까요? 유명 무장들 중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미녀를 보고 싶으면 옆의 링크를 눌러 주세요.(전국시대의 미녀) 오다 노부나가 청년의 무렵에 여자로 잘못 보았을 정도로 미남이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상당히 잔혹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 노부나가가 꽃미남이었다니 충격적입니다. 특별히 젊었을 때 초상화를 준비해 봤습니다. 여자 같나요? 오다 히데타카(織田秀孝) 노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평균신장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평균신장은? 보통 일본인들은 키가 작다고 생각하는데요, 전국시대는 영양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키가 더 작았습니다. 약 160cm가 남성의 평균 신장이었습니다. 그외에 유명 무장들의 신장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마에다 토시이에 182 cm 아자이 나가마사 180 cm남짓 혼다 다다카쓰 140 cm 이시다 미쓰나리 156 cm 오다 노부나가 162 cm 도요토미 히데요시 150 cm 우에스기 겐신 156~160 cm 도쿠가와 이에야스 159 cm(혹은156 cm) 다테 마사무네 159.4 cm 다케다 신겐 162 cm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전국시대가 뭔가 땅꼬마들의 전투같아서 재밌습니다만, 당시에는 표준이었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무기는 어땠을까? 전국시대의 무기 개괄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무기는 어땠을까? 전국시대의 무기 개괄 전국시대 전투에서 주로 사용된 무기는 철포, 활, 쯔부테(礫:투석)입니다. 실제로 적을 사상시킨 무기의 비율은, 원거리용의 무기(활, 철포, 쯔부테)가 약 70%이고, 근거리용의 무기가 약 30%(칼, 창)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료를 조사 해, 통계로서 얻은 숫자입니다. 이와 같이 전투에서 주로 사용된 무기는, 원거리용의 무기였던 것이지요. 게이쵸 5년 8월 24일, 킷카와 히로이에(吉川広家)는 이세 쯔성(津城)을 공격했습니다. 26일 킷카와 가문에서는 공성전의 사상자를 서류에 정리했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전사자는 145명, 부상자는 173명에 이었으며, 철포로 인한 부상자 93명, 창에 의해 58명, 화살에 22명..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2) 전후처리 '쿠비짓켄'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12) 전후처리 '쿠비짓켄' 공양 전투의 승패는 운으로 정해집니다. 적을 토벌할 때도 있고 자신이 토벌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장은 적의 목에 예의를 다했습니다. 「고에쓰군기(甲越軍記)」에 의하면, 우에스기가에서는 대장이 적 대장의 목을 보는 것을 '목대면(首対面)'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투구와 갑옷을 지닌 무사의 목이면 '쿠비짓켄(首実検)', 아시가루의 목이면 '미시리(見知り)'라고 불렀습니다. 「중원고충군진문서(中原高忠軍陣聞書)」는 적의 대장의 목을 취했을 경우, 대장은 말의 궤짝의 좌측에 목을 걸어서 옮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목을 물로 씻어, 부패 방지를 위해 절단면에 소금을 바릅니다. 이것을 '소금절이기(塩漬け)'라고 말합니다. 목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1) 승패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11) 승패 승리 전쟁에 있어서 승리는 전투로 적군에게 다대한 손해를 주어 전투 의욕을 상실시켜, 항복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적이 항복하면 정치적 요구 예를 들어 영지의 할양등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투에서 적의 영주를 토벌할 수 있으면 결정적인 승리가 됩니다. 전투로 적군에게 준 피해가 작으면, 적은 전투 의욕을 잃지 않습니다. 항복을 했다고 해도, 과도한 요구를 들이대면 다시 전쟁이 일어 납니다. 반대로 적군에게 준 피해가 크면, 상당한 요구가 가능하게 되지요. 적은 전력과 전의를 상실하고 있어, 요구를 거절할 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투에 승리하면, 영주는 약탈의 허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축하연을 열었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0) 성과 공성전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0) 성과 공성전 성 성은 고대 일본에서는 '키(き)'라고 불렸습니다. 그 후, '죠(じょ)'라고 불리다가, 전국시대 중반에 '시로(しろ)'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에는 방어를 위해서 해자(堀), 쯔키지(築地: 흙담), 토루(土塁: 흙 보루), 목책(尺木), 담(塀)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해자는 단순히 흙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둥으로 보강해, 흙을 굳히고 무너지지 않게 했습니다. 해자를 팠을 때에 나오는 흙을 쌓아 올이면 그것을 토루라 부릅니다. 목책은 재목을 우물 정(井)자의 무늬로 짜 올리기 때문에, 사이에 틈새가 생깁니다. 공방 시에 그 틈새로 공격을 하거나 적을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 있었습니다. 쯔키지에는 돌이나 욱새를을 혼합한 적토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