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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와라 정벌중 가장 비참했던, 하치오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와라 정벌중 가장 비참했던, 하치오지성 공방전



 덴쇼18년(1590년) 6월 23일, 이 해의 3월부터 개시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오다와라 정벌의 별동대에 의한 하치오지성공격이 개시되어 이날, 하치오지성은 함락 됐습니다. 


 천하를 눈 앞에 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지막 거물인 호조를 공격하기 위해 개시한 오다와라 정벌(오다와라 정벌히데요시가, 호조 우지마사, 우지나오가 있는 오다와라성을 22만의 대군으로 포위한 것이, 덴쇼 18년(1590년) 4월 3일이었습니다.(오다와라성 포위한편, 호조의 군세는 5만 6천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군세가 오다와라성에 농성하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관동 각지에 있는 호조의 지성에 군세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지요. 여러 성주가 군을 인솔해 오다와라성의 농성에 참전하고 있지만, 그의 부재 중을 맡는 성병이 지성에 남아 있었습니다. 히데요시는 호쿠리쿠의 군세를 별동대로 삼아 오시성(오시성 공방전), 하치오지성, 하치가타성 등 관동의 성들을 공격 시킵니다.



당시 전황도


 

 호쿠리쿠로에서 참전한 히데요시의 친구 마에다 토시이에를 대장으로 하는 북국 연합군은 2월 15일, 시나노 마츠요성(松代城)에서 에치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 사나다 마사유키와 합류 토우산도(東山道)로 진격 합니다. 마에다대  약 1만 8천, 우에스기대 약 1만, 사나다대 약 3천의 총원 3만 5천의 위풍당당한 별동대는, 우스이(碓氷)고개에서 호조 영내로 진공해, 우선 그 국경을 지키는 마츠다이성(松井田城)을 공격합니다. 이 때, 카게카츠의 중신 나오에 카네츠구가 큰 활약을 보여, 격전의 끝인 4월 22일에 호조의 중신인 성주 다이도우지 마사시게(大道寺政繁)는 항복해, 마츠다이라성은 함락 됩니다.


 이 즈음에는 이미 오다와라성의 포위를 굳혔기에, 본대인 아사노 나가마사(浅野長政)나 키무라 요시키요(木村吉清)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하 혼다 타다카츠나 도리이 모토타다 (鳥居元忠)등을 호조의 각 지성의 공략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덧붙여서, 그 이시다 미쓰나리가 무사시 오시성으로 향했던 것도, 이즈음입니다. 마츠다이라성의 뒤잇는, 호조 우지야스의 사남 호조 우지쿠니(北条氏邦)가 지키는 하치가타성을 공격했지만, 강고한 방비에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결국 혼다 타다가츠 등의 도움을 빌려 간신히 6월 14일에 함락 시킵니다. 하지만 여러 무장들은 성 하나에 고전한 자신들에게 상당히 분노한 상태 였습니다.



하치오지성



 덴쇼 18년(1590년) 6월 23일, 다음 타겟으로 호조 우지테루(北条氏照)가 성주를 맡는 하치오지성으로 공격을 개시합니다. 이 하치오지성은 표고 445 m의 산 위의 구축된 산성으로, 동서 2 km, 남북 1 km에 달하는 광대한 부지를 가지는, 전국시대 산성의 완성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견고한 성이었지만, 정작 성주인 우지테루 오다와라성에서 농성 중 이었습니다. 부재 중을 맡는 것은 가신 카노우 이치안(狩野一庵)이 이끄는 고작 1,000명이 전부인데다, 그 중에는 대군의 접근을 듣고 급작스레 모은 백성과 여성, 아이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학살이라 해도 무리가 없겠지요



 6월 23일 날이 밝자, 얼마전 도요토미에 항복한 마츠다이라성의 다이도우지 마사시게가 선봉을 맡아 오테몬(大手門)에서 돌격을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호조군은 성의 안쪽으로 퇴각하며 농성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치오지성은 성의 중심 건물을 중심으로 구성된 요충지 지구와 그 앞에 있는 주거 지구의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만, 마에다대는 그 주거 지구의 중심인 킨자쿠루와(金子曲輪)에 돌입합니다. 이에 후퇴하던 성병은 자연히 요충지 지구로 이동하게 되지요. 마에다대가, 킨자쿠루와에서 카노우 이치안등 호조군을 죽이고 있는 동안에, 성의 중심 건물 방면으로 향한 우에스기군은, 호조군을 한층 더 몰아넣습니다.


 이윽고, 난전 속에서 많은 병사와 함께 이치안이 전사 하자 남은 군사도 과감하게 공격해 전사 하는지, 주군의 뒤를  이어 할복 하는지를 선택할 상황에 놓입니다. 게다가 비정하게 공격을 하는 우에스기군의 앞에서, 전사도 할복도 할 수 없었던 여성이나 아이는 모두 망루의 옆에 있던 고슈덴(御主殿)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불과 하루만에 결착이 난 하치오지성 공방전은 비전투원의인 부녀자를 포함한 전원이 전사한다고 하는 오다와라 정벌에서 가장 비참한 전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