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2차 코우노다이 전투의 서막이 밝다
에이로쿠4년(1561년) 안보의 사토미 요시히로가 수군을 인솔해 호조의 사가미 미우라(三浦)에 쳐들어갔습니다.
안보
안보의 사토미가는 키요카즈 겐지를 이어받는 닛타 요시시게(新田義重)의 아들 닛타 도리슌(新田義俊)이, 우에노의 사토미에 이주해, 토지의 이름을 취해 사토미를 자칭해 시작합니다. 그 자손이 안보의 수호를 명령받고, 11대 당주 사토미 요시자네(里見義実)가 안보의 평정에 성공해 안보사토미(安房里見)라 불리게 됩니다. 그 후, 안보시라하마성(安房白浜城)을 거성으로 해, 세력 확대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대후 즉, 17대 당주가 되는 것이 오늘의 주역 요시히로의 아버지 사토미 요시타카(里見義堯)입니다. 그는 사실 직계 즉, 본가의 혈통이 아닙니다. 복잡한가 집안 다툼에 승리한 요시타카가 사토미의 당주가 되어 그 후에 그의 적자 요시히로가 뒤를 이은 것입니다.
사토미 요시타카
요시히로가 당주를 이었을 무렵, 그는 무장으로서의 실전 경험을 꽤나 가진 영주였습니다. 코우지2년(1556년)에는 스스로 군선 80척을 인솔해 에도 만을 건너 미우라 반도를 습격하기도 했지요. 이 때 그의 러브 스토리가 있었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토미가의 가장 큰 적은 다름아닌 호조가였지요. 오유미쿠보를 세운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도와 제1차 코우노다이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요시히로는 호조를 견제하기 위해 관동의 여러 장군은 물론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과도 동맹을 하고 있었습니다.
겐신이 사가미에 쳐들어간 에이로쿠4년(1561년) 그것을 돕도록, 중신 마사키 토키타다(正木時忠)를 원군으로 보내 스스로도 사가미의 미우라에 쳐들어갔습니다. 그 3년 후 에이로쿠7년(1564년) 역시 겐신이 호조를 공격하자 배후에서 호조를 공격하니, 이를 제2차 코우노다이 전투로 부릅니다. 그 이야기는 또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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