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20) 이야에스, 오츠성에 들어가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20) 이야에스, 오츠성에 들어가다



게이쵸 5년(1600년) 9월 20일, 세키가하라의 전투를 승리로 끝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츠성(大津城)에 입성 했습니다. 


 카가의 마에다 토시나가였습니다. 그를 겨우 무찌른 서군(아사이나와테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 다카쓰구 홋코쿠 가도를 통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시쓰구에게서 요청이 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나는 미노로 향하므로 그쪽으로 와주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기후성이 함락된(기후성 공방전)것을 알게 된 서군은 요시쓰구나 다카쓰구를 그쪽으로 파견해 도쿠가와의 군세가 더 이상 오지 못하게 막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다카쓰구는 회군해 버립니다.(다카쓰구의 회군) 이에 서군은 그를 일벌백계로 삼기 위해 공격해, 오츠성은 점령당합니다.(오츠성 공방전)



오츠성 전경



 게다가 쿄고쿠 다카쓰구 자신은 아자이 세 자매중 둘째 하츠(죠우코우인)과 결혼하는데, 그녀의 누나인 챠챠(요도도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결혼했고, 동생인 고우(소우겐인)은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결혼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신부의 위광으로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비와호 근처의 물류의 중심지인 오츠성(大津城)을 맡게 됩니다. 게다가 그의 누나(혹은 여동생)인 쿄고쿠 다츠코(쿄고쿠 다츠코)가 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인을 밝히던 히데요시는 그녀를 측실로 맞아들여, 쿄고쿠 가문은 2만 5천석의 영지를 받게 됩니다. 오츠성에서 농성할 때, 요도도노의 청을 받은 기타노만 도코로의 사자들의 설득에도, 다카쓰구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격은 갈수록 강해져, 결국 성의 중심 건물만이 남게되었을 때, 14일에 다시, 기타노만 도코로로부터의 사자가 옵니다. 이에 다카쓰구는 간신히 성문을 엽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합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세키가하라 전투가 있었습니다.(세키가하라 전투 발발) 결과를 모른 채로 목숨을 부지한 다카쓰구는 머리를 밀고 코노산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키가하라는 불과 반나절만에 서군의 대패로 끝나 버립니다. 오츠성을 점령한 서군의 무장들은 이에 모두 자신의 영지로 도망쳐 버립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야에스는 9월 20일 오츠성으로 입성해, 이곳을 본영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전후처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반전!



 이야에스는 다카쓰구에 만나러 오라고 사자를 보냈지만, 자신의 패배를 부끄러워한 그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몇번이나 이야에스가 사자를 보내자, 다카쓰구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야에스는 '그 대군을 오츠성에서 막아내다니, 고맙네.'라며 칭찬하고, 그에게 와카사 1국, 8만 5천석의 영지로 시켜줍니다. 그리고 남동생인 다카토모(高知)도 탄바 미야츠성 성주로 임명합니다. 다카쓰구는 드디어 마누라와 누나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100%는 아니지만)으로 훌륭한 다이묘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