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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아자이 세 자매의 첫째, 요도도노(챠챠)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아자이 세 자매의 첫째, 요도도노(챠챠)

 

요도도노(淀殿)는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노가타의 딸로 아자이 세 자매 중 첫째입니다. 아자이 나가마사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덤비다 처참하게 져, 그 두개골은 노부나가의 술잔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아자이가는 멸망해 버리지요. 



요도도노(淀殿)



 챠챠는 어머니와 동생 고우, 하츠와 함께 후지카케 나가카츠(藤掛永勝)의 도움을 받아 기후성에서 지내다 우에노성으로 이동합니다. 챠챠, 하츠, 고우는 '아자이 세 자매'로 전국시대때 제일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자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이치노가타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 받아 미인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굉장히 좋았던 자매라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그녀는 키가 170이나 되는 장신이었다고 합니다. 동생 고우가 작은 체구인 것에 비해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또, 오이치노가타가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이 아닌 사촌 여동생이라 챠챠는 노부나가의 딸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네요.



부모와 이별하는 아자이 세 자매



 덴쇼 10년(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죽고 열린 키요스회의에서 어머니가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해 가쓰이에의 거성인 키타노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뒤이에 열린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가쓰이에가 패배하고, 가쓰이에는 세 딸을 내보낸 뒤 그녀들의 어머니와 함께 자살합니다.(가쓰이에와 오이치노가타의 죽음) 오이치노가타가 죽고 난 후 챠챠는 두 동생에게 " 너희들은 명가 오우미 아자이 가문의 공주들이다. 보기 흉한 모습을 하면 안된다 "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뒤 아즈치성(安土城)에서 살다가 후에 쥬라쿠다이(聚楽第)에서 숙모 쿄고쿠 마리아(쿄고쿠 마리아)의 딸 쿄고쿠 타츠코(쿄고쿠 타츠코)의 후견을 받게 됩니다. 히데요시는 여색을 밝히기로 유명했는데, 아름답기로 유명한 오이치노 가타를 사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 가장 닮았던 챠챠를 자신의 측실로 삼게 됩니다.



그녀는 히데요시의 자식들을 낳습니다



 덴쇼 17년(1589년), 도요토미 츠루마츠(豊臣鶴松)를 낳습니다. 이 사실에 기뻐하는 히데요시는 챠챠에게 야마시로국의 요도성(淀古城)을 주지요. 그때부터 챠챠는 요도도노(요도님)라 불리기시작합니다. 하지만 츠루마츠는 텐쇼 19년(1591년)에 사망하고, 분메이 2년(1593년)에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를 낳습니다. 이 때 챠챠와 오오노 하루나가(大野治長)는 젖형제로 두 사람이 밀회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히데요리가 히데요시의 친 자식이 아니라 하루나가의 아이라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녀는 히데요리를 낳고, 부모님을 기리며 요우겐원(養源院)을 세웠습니다. 이는 후에 불타나, 아자이 세 남매의 막내 고우가 나중에 복원합니다. 



요도도노와 히데요리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히데요리의 후견인으로 오오쿠라쿄우노츠보네(大蔵卿局)와 아에바노츠보네(饗庭局)를 채용하여 토요토미 가문의 실권을 잡았습니다. 케이쵸 5년(1600년),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싸운 세키가하라 전투로 인해 토요토미 가문의 직할 영지는 대폭 줄어 들었고, 그 후에 에도에서 무가 정권을 구축한 이에야스와 대립하면서 히데요리를 상경시키라는 요구를 거절 합니다. 결국 케이쵸 19년(1614년), 오사카 전쟁에서 도쿠가와 세력에게 패하고 오사카 성이 함락되면서 히데요리와 함께 자결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히데요리와 함께 도주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자이 세남매 답게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오사카성에서 자결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막내동생 고우가 그녀를 숨겨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