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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전국시대 최고의 미녀,오이치노가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전국시대 최고의 미녀,오이치노가타



오이치노가타(お市の方)는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의 딸로, 노부나가의 여동생입니다. 사촌 여동생이라는 설도 있어 첫째 딸인 챠챠는 노부나가의 딸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습니다. 노부나가가 편애한 여동생이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전국시대 최고의 미녀로, 재색을 겸비했었다고 전해집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치가 남자 였다면 훌륭한 무장이 되었을거다 '란 말까지 남겼습니다. 그녀의 딸들은 전국시대를 관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이치노가타(お市の方)



에이로쿠 10년(1567년) 오빠 노부나가의 수양딸로 오우미의 아자이 나가마사에게 시집을 갑니다. 물론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이었지요. 겐키 원년(1570년), 노부나가가 아자이 가문과 깊은 관계에 있는 에치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을 공격하자,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우호관계가 단절됩니다. 하지만 나가마사와 이치의 부부관계는 주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오우바이인(오우바이인)이 이혼당한것과는 대조적이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아직 판도를 넓히는 도중이었던 '노부나가'가, 누이동생을 스파이로 아자이에 보낸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노부나가가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전투를 하고 있을 때 나가마사가 오다가와의 동맹을 찟고 출병하자, 오이치노가타는 팥을 담은 주머니의 양끝을 묶어 오빠에게 보내 그 계획을 일러, 노부나가는 무사히 후퇴했지요. 또 오다니성을 노부나가가 공격했을 때 오다측으로 대피하고 있었던 것도 이상합니다. 하지만 전자의 팥과자 사건은 후대의 창작이라는 것이 정설이고, 오다니성으로 돌아온 것은 나가마사가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오이치노가타와 세 딸 동상



 아자이 나가마사는 오다 노부나가와 싸우다 아네가와에서 패배해, 그 두개골은 노부나가의 술잔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아자이가는 멸망해 버리지요. 오이치노가타는 세 명의 딸(챠챠, 하츠, 고우)와 함께 후지카케 나가카츠(藤掛永勝)에 의해 구출 되어 오다 가문으로 돌아가지만 장남인 아자이 만부쿠마루(浅井万福丸)는 붙잡혀 살해 당하고 맙니다. 그후에는 키요스성(清洲城)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세 명의 딸과 함께 9년동안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노부나가가 죽고 난 후 노부오나 하시바 히데요시의 중개로 덴쇼 10년(1582년) 시바타 가쓰이에와 결혼을 한다. 가쓰이에가 하시바 히데요시와 싸운 시즈가타케의 전쟁에서 패하자, 키타노쇼성이 함락될 때 도망가라는 가쓰이에의 말을 듣지 않고 함께 세상을 떠납니다. 세 딸만 놓고 세상을 떠나기가 걱정이었던 이치는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편지(딸들에게 사심을 품지 말라는 내용)를 보내는 등 어머니로써 딸들에게 깊은 애정을 보여줬습니다. 결과적으로 챠챠는 히데요시가 데려가니 좀 그렇긴 합니다.



일러스트



 키타노쇼 성이 함락 될 때, 세 딸들에게 "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이 끊기지 않게 해달라 " 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 후 도쿠가와 가문으로 시집을 간 고우가 많은 자식들을 낳으면서 그 혈육은 현재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