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가문에 사랑받은 부인, 키쿠히메
키쿠히메(菊姫)는 다케다 신겐의 여섯번째 딸로, 어머니는 아부라카와 부인입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의 정실이지요. 우에스기가의 전통(?)인지 카게카츠도 그녀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키쿠히메 일러스트
에이로쿠 6년(1563년)에 다케다 신겐의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납니다. 어머니는 아부라카와 부인으로, 친형제에 니시다 모리노부(仁科盛信), 카츠라야마 노부사다(葛山信貞), 마츠히메(松姫)가 있습니다. 마리히메도 아부리카와 부인의 딸이라는 설도 있지요.
덴쇼 3년(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라버니 다케다 가쓰요리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심하게 패한 이후, 다케다 일족의 세력이 쇠퇴하자 가쓰요리는 우에스기와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이 코우에츠동맹(甲越同盟)의 체결이 있었던 덴쇼 7년(1579년)에 양가의 동맹의 증표로 그녀는 우에스기 카게카츠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이 혼약은 오타테의 난(
오타테의 란)중간에 있었던 일로, 이 동맹덕에 다케다는 호조와의 동맹이 파기됩니다. 「고요군감」에 의하면 사실 그녀는 약혼한 승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혼한 이후에는 우에스기 가문 내에서 코슈(甲州)부인 혹은 카이고료닌(甲斐御寮人)이라고 불리며, 검소와 절약을 장려하고 재색을 겸비한 현모양처로서 경애되어, 제 2대 번주 사다카츠(定勝, 카게카츠의 첩의 아들)을 시작으로 하는 후세의 역대 번주들도 다케다 가문을 정중하게 취급했다고 합니다. 후에 다케다가가 멸망하자 다케다 노부키요(武田信清)와 배신한 남편을 버린 마리히메(신류우인(마리히메))의 손자인 아게마츠 타노모 요시츠구(上松頼母義次)도 그녀 덕에 우에스기가에 의탁할 수 있었습니다.
분로쿠 4년(1595년)부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세키가하라 전투의 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인질로 교토의 우에스기 저택에서, 사망할 때 까지 생애를 보냈다고 합니다. 후에 우에스기는 요네자와에 이봉되지만, 키쿠히메는 그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게이쵸 8년(1603년) 겨울부터 병상에 누워 그녀의 동생인 다케다 노부키요가 상경해 그녀를 치유하려 백방으로 애를 썼다고 합니다.
병에 걸린 키쿠히메
다음 해에 우에스기 가문의 후시미 저택에서 향년 42세로 사망합니다. 「우에스기가어년보」에서는 키쿠히메의 죽음에 대한 보고를 들은 카게카츠나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들의 '비탄이 끝이 없었다.'라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키쿠히메의 사인을 자살이라거나 분사라고도 하나, 이것은 근거가 별로 없는 '설'일 뿐입니다.
이런 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카게카츠가 측실 요츠츠씨를 몰래 요네자와 성으로 들여, 자식을 낳으려 하자 이에 키쿠히메가 질투와 화를 못이겨 자살했다고 합니다. 또 요츠츠씨가 사망한 원인 역시 키쿠히메의 저주라는 것인데요, 사망시기가 우연히 겹친 것들을 이용한 음모론에 불과한 듯 합니다.
카게카츠와 자식이 없었던 것에 대해 카게카츠도 남색에 빠져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나오지만, 이를 입증하는 사료가 없습니다. 사실 남색이 있었어도 다 자식남길려고 여자하고도 관계를 맺긴 했으니 전제자체가 그릇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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