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21) 이시다 미쓰나리 체포되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21일, 세키가하라 전투로 패주 하고 있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동군에 잡혔습니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15일의 세키가하라 전투는 점심이 넘어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배신과 오오타니 요시쓰구( 오오타니 요시쓰구)의 죽음으로 형세는 어이없게 동군에게 유리하게 되어, 차례로 서군은 패주합니다.(세키가하라 전투 발발) 오오타니군 다음에 무너진 것은 고니시군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부키산의 쪽으로 도주했습니다.(고니시 유키나가, 자수하다) 그 다음은 최초부터 후쿠시마 마사노리 군과 일진일퇴의 호각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 우키타군이었습니다. 코바야카와의 배반에 격노하고 있던 우키타 히데이에는 형세가 나빠진 것을 느껴 '이렇게 되면, 히데아키라도 찔러 죽이겠다!'고, 적의 한가운데에 돌진하려다 가신에게 제지당해 유키나가와 같이 이부키산으로 도주했습니다.
이시다 미쓰나리
결국 끝까지 노력하며 적의 공격을 막고 있던 이시다군이었지만, 잇달아 새로운 적이 더해지고, 고니시, 우키타군의 패주를 눈앞으로 봐서, 사기는 내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중신 가모 사토이에(蒲生郷舎)가 방패가 되고 적의 이목을 끄는 동안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도 이부키산 방면으로 탈출했습니다. 히데아키와 배신한 무장들이 이이 나오마사의 감독아래 미쓰나리의 거성 사와산성을 공략(사와산성 공격) 하고 있는 동안에도, 서군의 무장들이 도망치고 갔다고 여겨지는 이부키산을 중심으로 대규모 도망 무사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19일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부키야마의 산중에서 자수했습니다. 그리고 게이쵸5년(1600년) 9월 21일, 이시다 미쓰나리가 스스로의 영내의 이카군(伊香郡) 코토키(高時)마을의 굴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다나카 요시마사(田中吉政)의 군사가 찾아냈습니다. 미쓰나리는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나무꾼으로 변장했었다고 합니다. 22일에, '미쓰나리 체포'의 통지가 이에야스의 앞으로 닿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이에야스에 있어 또 하나의 기쁜 통지도 도착했습니다. 그것은, 오사카성에 있는 모리 데루모토가 항복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모리가 만약 반항하면, 다시한번 세키가하라와 같은 전투를 해야했지만, 여기에 와서 이야에스는 확실히 천하를 얻은 것입니다. 새가 울때까지 기다린 이야에스는 드디어, 자신의 세상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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