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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사카모토 료마 암살당하다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사카모토 료마 암살당하다 게이오 3년(1867년) 11월 15일 오후 8 시에 교토 시조가와하라 마을(四条河原町)의 간장상점 오우미야(近江屋)에 잠복 하고 있던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우가, 수 명의 자객에게 습격당해 료마는 즉사, 신타로우는 2일 후에 사망했습니다. 기이하게도, 이 날은 료마의 32번째의 생일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역사상의 인물중에서도 1위, 2위를 다투는 인기인입니다. 그는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번과 조슈번을 중개해, 삿초 동맹을 성립시켰습니다.(삿초동맹) 또, 토사 번이 막부에 제출한 대정봉행을 추진해, 후의 일본을 디자인한 「건백서(建白書)」의 원안을 생각했던 것도 료마입니다.(삿토맹약) 이 두가지 큰 업적에 대해 최근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사츠마번에 토막의 은칙이 내리다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사츠마번에 토막의 은칙이 내리다 게이오 3년(1867년) 10월 13일, 사츠마 번주인 시마즈 부자에게 '토막의 은칙(討幕の密勅)'이 내렸습니다. 게이오 3년(1867년) 10월 13일은 일본의 역사가 결정된 날입니다. 토사번의 참정 고토 쇼지로우(後藤象二郎), 사카모토 료마가 원안을 생각한 선중팔책(船中八策)을 기초로 한 건백서는 이미 로쥬우를 통해 제 15 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의 손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선중팔책) 하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질지 어떨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료마는 죽음을 각오하는 편지를 보내면서까지 교토로 향했습니다. 요시노부는 니죠성의 넓은 방에서, 수도에 있는 번의 중신들을 앞에 두고, 그 속마음을 말했습니다. 이 요시노부의 결의는 다음날인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대정봉환 협력의 시작, 삿토맹약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대정봉환 협력의 시작, 삿토맹약 게이오 3년(1867년) 6월 22일, 사츠마의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토사의 고토 쇼지로우(後藤象二郎),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나카오카 신타로우(中岡慎太郎) 등이, 대정봉환 협력을 나타내는 맹약인 삿토맹약(薩土盟約)을 성립시켰습니다. 게이오 3년(1867년) 4월 토사번의 단체로 정식 발족한지 얼마 안되는 카이에이타이(海援隊)에게 닥친 대사건 이로하마루(伊呂波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배상 문제를 지켜본 사카모토 료마가 당시에 토사 번의 참정으로 활약하고 있던 고토 쇼지로우와 함께 번의 증기선인 야쿠모마루(夕顔丸)를 타고 나가사키를 출항한 것은 6월 9일의 일이었습니다. 이미 이 1월 나가사키에서의 회담에..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10) 조슈가 세번째로 오구라에 상륙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10) 조슈가 세번째로 오구라에 상륙 게이오 2년(1866년) 7월 27일, 제2차 조슈 정벌에서 조슈군은 드디어 오구라성 공략을 목표로 해서, 3번째의 오구라 상륙 작전을 결행했습니다. 조슈는 오오무라 마스지로우(大村益次郎)가 지휘를 해 동쪽의 세키슈우구치에서는 하마다성을 공략하고, 게이슈구치에서는 교착 상태가 계속 되는 중에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가 지휘를 하는 오구라구치에서는 게릴라적인 상륙 작전에 종지부를 찍어, 드디어 오구라성을 공략할 수 있도록 세번째의 상륙을 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 7월 27일, 군함에 의한 원호 사격을 받으면서 상륙한 조슈의 정예 약 800명을 이끌고 오사토에 본진을 지은 신사쿠는 군을 두 패로 나누어 바다측에서 아카사카..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9) 세키슈우구 전투에서 조슈측이 승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9) 세키슈우구 전투에서 조슈측이 승리 게이오 2년(1866년) 7월 15일, 제2차 조슈 정벌 중 세키슈우구 전투로 조슈군이 다이마산(大麻山)을 점령했습니다. 16일과 17일의 이틀간, 츠와노를 넘어 하마다번 내의 마츠다로 진공한 세키슈우구측의 조슈군, 하마다번은 현재 번주 마츠다이라 타케시치(松平武聡)가 투병중이여서, 원래 싸울 생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걱정한 막부군 본영은 돗토리번과 마츠에번에 원군을 요청해, 기슈의 타나베성 성주 안도 타다스케(安藤直祐)를 선봉으로 하마다성으로 보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 7월 15일, 마츠다에서 하마다로 향하는 조슈군과 기슈군이 부딪칩니다만, 막부의 구식의 총에서는 도저히 닿지 않는 거리에서의 조슈의 공격에 패배해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 발발, 해결은 창녀가?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 발발, 해결은 창녀가? 게이오 2년(1866년)에 일본인에 의한 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이라면 1월에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번와 조슈번이 동맹을 맺어(삿쵸동맹), 일본의 운명이 움직인 해입니다. 다음 해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과 왕정 복고의 대호령(王政復古の大号令)이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사이, 요코하마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요코하마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의 승무원 수 명과 요코하마 시내의 노동자 수명이 대낮에 노상에서 싸움을 시작해 버립니다. 거기에 순회공연에 와있던 역사 (力士)시카게야마(鹿毛山)가 개입합니다. 물론 시카게야마도 처음은 말릴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아직 에도의 색이 사라지지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8) 조슈번의 게릴라와 오구라구치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8) 조슈번의 게릴라와 오구라구치 전투 게이오 2년(1866년) 6월 17일, 제2차 조슈 정벌 오구라구치 전투로 다시 조슈군이 오구라에 상륙했습니다. 오구라구치는 그 이름과 같이 오구라번의 거성인 오구라성이 있는 곳입니다. 동쪽의 본영을 히로시마성에 두고 있던 막부는 서쪽의 본영을 이 오구라성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총독은 로쥬우인 오가사와라 나가미치(小笠原長行)가 착임 하고 있었습니다. 오사유키는 총독의 명령으로 큐슈의 각 영주에게 군사의 동원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사츠마번은 출병을 거부하고, 사가번 역시 출병을 거부합니다. 어떻게든 히고번과 쿠루메번이 출병해, 오구라번과 합쳐 2만 정도의 군사가 집결합니다. 그러나, 역시, 의욕이 있는 것은 오구라번뿐이었습니..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7) 세키슈우구치 공방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7) 세키슈우구치 공방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16일, 제2차 조슈 정벌에서 오구라구치와 세키슈우구치의 공방전이 개시되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 6월 8일, 조슈쪽의 관문 스오우 오오시마에 막부군의 군사가 상륙해, 제2차 조슈 정벌의 막이 열렸습니다. 에도 막부는 일본의 정부입니다. 이를 상대로 싸우는 조슈는 1 지방에 불과합니다. 작전을 잘 짜지 않는다면 패배는 명약관화합니다. 조슈에는 방비를 굳혀야 할 거점이 있습니다. 세키가하라에서 진 이래, 거점이 되어야 할 성을 구축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난공불락과는 거리가 먼 하기성에서 에도시대를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 해야할지, 이것이 조슈 정벌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압도..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게이오대 2년(1866년) 6월 14일, 제2차 조슈 정벌의 게이슈구의 선봉으로서 진군 하고 있던 히코네번 이이대에게 조슈군이 기습공격한 게이슈구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이 때, 막부측의 본영은 히로시마에 있고, 선봉의 총독을 맡고 있던 것은 기슈 번주 도쿠가와 모치츠구(徳川茂承), 서쪽의 조슈로의 진공은 시모노세키로 향합니다. 동쪽에서는 산인과 산요의 두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세토우치라고 하는 유통의 요충지가 있었기 때문에, 역시, 산요측 쪽이 번성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산요는 공격과 방어 측에 있어서 최대의 요지가 됩니다. 당시 히로시마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서쪽 지방 가도는 오노로 통했습니다. 그 오노에서는 시쥬우하츠자카(四十八..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5) 신사쿠의 오오시마 탈환 작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5) 신사쿠의 오오시마 탈환 작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13일, 제2차 조슈 정벌, 시쿄전쟁(四境戦争)으로, 최초의 오오시마 전투로 막부 측에 빼앗기고 있던 스오우 오오시마를 조슈번이 탈환하였습니다.(오오시마 공방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8일, 조슈쪽의 관문 스오우 오오시마에 막부군의 군사가 상륙해, 제2차 조슈 정벌의 막이 열렸습니다. 에도 막부는 일본의 정부입니다. 이를 상대로 싸우는 조슈는 1 지방에 불과합니다. 적은 군사를 한층 더 분산해 오히려 패배가 정해진 것이라고 하는 예상 아래, 이 스오우 오오시마에는 군사를 배치하지 않았었습니다. 오오시마는 거의 무저항인 상태인 채로, 비전투원인 많은 도민이 싸움에 말려 들어가 희생이 되었습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