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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 전국시대; 오닌의 란의 격화, 쇼코쿠사의 전투 일본 전국시대;오닌의 란의 격화, 쇼코쿠사의 전투 동군은 쇼군을 옹립했으나 총사령관 요시미가 전쟁을 방폐하고, 서군은 역적이 되었으나, 오오우치 마사히로가 참여하는 시궁창 같은 상황에서 동군과 서군은 타개책을 찾기 시작합니다. 오닌 10월, 서군의 하타케야마 요시나리와 아사쿠라 타카카게가 쇼코쿠사에 진을 치고 있는 타케다 노부가타를 공격합니다. 첫날, 쇼코쿠사에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납니다. 아무래도 최근 사기가 높아진 것은 서군이고, 동군은 사기가 떨어졌다 보니 서군의 기세에 앞도된 동군은 일단 퇴각을 개시합니다. 서군은 죽인 목을 수례에 한가득 실고 의기양양해서 귀환했다고 합니다. 둘째날, 의기양양해져 방심이 생긴 서군과, 어제의 보복이라는 증오로 뭉친 동군 그리고 요시나리에 강렬한 증오를 품고있는 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닌의 란의 초전, 5월 전투 일본 전국시대;오닌의 란의 초전, 5월 전투 지난 포스팅들로 인해 벌어진 오오닌의 난 이후 전국의 다이묘들은 동군과 서군으로 갈라져 11년 동안이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25만명에 달하는 군대가 싸우는 동안 교토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지요. 고료의 전투 이후 가스모토는 세력을 결집시켰고, 쇼군의 사저를 제압한뒤 쇼군을 확보하고, 천황과 상황의 거처를 무로마치정으로 옮깁니다. 이에 대해 소젠은 교토의 서쪽에 본진을 두고 가스모토의 동군과 대치합니다. 병력은 대략 서군이 11만, 동군이 16만으로 추정하나, 이 수치가 과장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들의 진 사이의 거리는 불과 수백미터인데도, 유명한 장수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이 전쟁이 계속되었었습니다. 재밌지 않나요? 25만의 군세가 대치하는데 이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닌의 란의 서막, 고료 전투 일본 전국시대; 오닌의 란의 서막, 고료 전투 저번 포스팅에서 하타케야마가의 후계자 분쟁을 다룬 것이 기억나시나요? 그 분쟁에서 하타케야마의 후계를 놓고 아들인 요시나리와 동생인 마사나기가 크게 부닥친 것이 바로 이 고료 전투입니다. 늦둥이 아들인 하타케야마 요시나리는 1466년 12월 뜬금없이 대군을 이끌고 교토로 올라와 교토 북서쪽의 지장원에 진을 칩니다. 그리고 그는 쇼군 요시마사를 설득합니다. 그 설득에 넘어간 요시미사는요시나리를 화려한 저택, 고쇼로 부르고 마사나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정월에 행해지는 행사를 중지시킴으로서 알립니다. 그리고 결국 요시미사는 공식적인 연회에서 하타케야마의 후계로 요시나리를 정하고, 마사나가에게 고토의 저택을 요시나리에게 양도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마사나가는 .. 더보기
일본전국시대; 전국시대의 시작, 오오닌의 난 일본전국시대;전국시대의 시작, 오오닌의 난 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보통 엄청난 혼란입니다. 전국시대도 예외는 아니여서, 커다란 혼란이 기존 무로마치 막부의 체제를 흔들기 시작했고, 여러 영웅들이 천하의 패권을 잡기 위해 들고 일어났지요. 보통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으로 1467년의 오오닌의 난부터라는 설과 1493년에 일어난 메이오의 정변이 시작이라는 설 그리고 호조 소운이 호조 가를 세울 때로 시작을 잡는 설까지 다양한 설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오오닌의 난을 시작으로 잡고, 전국시대를 개막시킨 이 난에 대해 포스팅 하려 합니다. 무로마치 막부 말기,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수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막대한 막부의 재정난과 수많은 쓰치잇키(잇키란 무엇인가?)로 골치를 썩히고 있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일본 전국시대란? 일본 전국시대;일본 전국시대란?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일본에는 '전국시대'가 있습니다. 사실 일본의 역사라는게 우리나라 사람이 접근하기에 쉽지는 않지요. 일본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들도 있고 말입니다. 보통 일본의 전국시대는 Koei사의 '삼국지'시리즈를 하다가, 더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의 전국시대를 다룬 '신장(노부나가)의 야망'을 플레이기 하게 되면서 빠져들게 되지요. 신장의 야망을 플레이하며 이 장수는 누구지? 해서 찾아보고, 그러다가 일본 전국시대를 다룬 소설, 을 읽고 전국시대에 빠져들게 되곤 합니다. 저도 이런 사람들 중 하나인데요. 재밌는 것은 정작 일본 친구들은 전국시대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카와 이야에스를 아는 정도가 일반적.. 더보기
일본전국시대; 일본 전국시대의 진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본전국시대;일본 전국시대의 진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전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어떤 진을 선택하느냐 입니다. 특히 병농분리가 되지 않았던 전국시대에는 진을 잘못 짰다가는 병사들이 모두 도망쳐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형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에는 헤이안시대에 당나라에서 오오에노 고레도키(大江維時)가 가져온 '8진'을 따라 진형을 취했습니다. 어린(魚鱗), 언월(偃月), 학익(鶴翼), 방원(方円), 봉시(鋒矢), 안행(雁行), 장사(長蛇), 형액(衡軛)의 여덟 종류의 진이 있었는데요, 각각의 진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린진은 그 이름과 처럼 물고기의 형태로 진을 치는 것입니다. 한 부대를 '비늘'로 보아, 맨끝의 일점에 병력을 집중하여, 적을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무장의 취미, 다도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무장의 취미, 다도 전국시대 무장들에게 다도는 엄청난 유행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의 엄청난 수 의 도공을 끌고 가기도 해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오다 노부나가가 어째서 혼노지에간 이유 중 하나가 다름아닌 '다기'를 구하기위해서 였다는 설도 있지요. 일본에 차가 전래된 것은 가마쿠라시대 이에사이(栄西)라는 스님이 중국을 방문해 일본에 돌아오면서 반입했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한편으로는 나라시대의 스님, 교우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시즈오카에 있는 호우메이사의 본존불상을 조각하다 피로로 눈이 감기려는 교우키(行基)에게 한 할머니가 무언가를 내밀었습니다. 이것을 마시자, 피로는 씻은듯이 사라지고 눈이 번뜩 뜨여 조각을 마무리 했다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잇키란 무엇인가? 일본 전국시대;잇키란 무엇인가? 조용하던 마을에 갑자기 종소리가 퍼집니다. 각자 생업(이라고 해도 주로 농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은 급히 집회소로 향합니다. 향이 두번 타기 전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결석으로 취급하기에, 주민들은 앞다투어 집회소로 향합니다. 집회소에 들어간 그들은 잇키를 결의하며 사발통문을 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학농민운동 등 농민 운동, 항쟁이 일어날 때마다 썼던 것이기도 하지요. 사발통문이란 둥그런 사발을 두고 그것을 기준으로 빙 둘러 이름을 써 누가 주모자인지 모르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었습니다. 사발통문으로 쓰지 않았을 때는 목록에 끝에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했습니다'라던가 '무순서'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보통 이 사발통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치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