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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키타고에 보신 전쟁(1) 신정부군의 기타고에 착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키타고에 보신 전쟁(1) 신정부군의 기타고에 착진 게이오 4년(1868년) 윤 4월 25일, 에도성을 무혈 개성 시킨 신정부군이 카가, 도야마등의 군사를 동반해, 해로로 에치고 타카다(高田)에 진공해 드디어, 신정부군에 의한 북쪽으로의 진공이 개시되었습니다. 게이오 4년(1868년) 1월 3일에 발발한 토바 후시미 전투는 에도 막부의 제15 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의 오사카성 탈출로 신정부군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윽고, 신정부군에 의해 에도성이 무혈 개성 되어 요시노부가 우에노의 관영사에서 근신 생활을 보내 전화가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신정부군의 중심인 조슈에 있어, 긴몬의 변 이래, 막부 세력의 중심이 되고 있던 아이즈번, 쇼나이번은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에도성 무혈개성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에도성 무혈개성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1868년) 4월 11일 에도성이 무혈 개성 되었습니다. 토바 후시미 전투에서 진 막부는 승리한 신정부군이 어기를 내걸어 역적이 되었습니다. 힘이 난 신정부군은 그대로 동쪽으로 나아가, 드디어 에도 총공격을 3월 15일로 정합니다. 그런 가운데 3월 9일 슨푸에 있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를 만나기 위해, 한명의 남자가 에도에서 슨푸(시즈오카)로 향합니다. 그의 이름은 야마오카 뎃슈(山岡鉄舟)였습니다. 그는 카츠 가이슈(勝海舟)에게서 중요한 역할을 부탁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에도를 전화로부터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운 좋게 다카모리와의 면회가 실현된 뎃슈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전투의 의지가 없는 것, 에도를 무대로 전쟁이 발발하면 많은..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신선조 패퇴! 카츠누마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신선조 패퇴! 카츠누마 전투 게이오 4년(1868년) 3월 6일 곤도 이사미(近藤勇)가 인솔하는 코요 친부타이 (甲陽鎮撫隊)가,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가 인솔하는 신정부군과 코슈 카츠누마에서 격돌한 카츠누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게이오 4년(1868년) 1월 3일에 발발한 토바 후시미 전투에서 진 막부군은 1월 6일에 막부군의 대장인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오사카성을 탈출한 일을 눈치챈 제 번의 장병들은, 1월 7일~8일에 걸쳐 차례차례로 오사카성을 뒤로 합니다만, 9일에는, 오오사카성 탈출을 납득 하지 못하고, 성과 함께 전사 할 각오인 잔류한 병사들에 의해 불이 발해져 오사카성은 불길에 싸였습니다. 이 때, 오사카만을 출발해 에도를 목표로 한 막부 군함에는 신선조의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오오쿠보 도시미치 오사카 천도 건의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오오쿠보 도시미치 오사카 천도 건의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1868년) 1월 19일,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가 '오사카 천도안'을 건의 했습니다.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1868년) 1월 2일에 군사를 일으킨 막부군의 대열에 1월 3일에 신정부군이 대포를 발해 발발한 토바 후시미 전투는 관군의 대승리로 끝납니다. 전년 10월에는 막부측이 대정봉환, 12월에는 왕정 복고의 대호령을 낸 신정부군으로 갈등은 커집니다. 이번 토바 후시미 전투에도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막부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아직도 신정부군은 막부에 대한 역적이라는 이미지를 닦아 낼 수 없었습니다.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1868년) 1월 19일 관군의 중심 인물의 한 사람인 오오쿠보 도시미치가 제출한 것이..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토바 후시미 전투(5) 코베 사건으로 신정부 외교권 확보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토바 후시미 전투(5) 코베 사건으로 신정부 외교권 확보 게이오 4년(1868년) 1월 11일, 토바 후시미 전투로 혼란하는 중, 코베에 피난하고 있던 미국해병을 오카야마번 군사가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시카성의 불로 토바 후시미의 전투는 끝난듯 했습니다만, 실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에도막부 말기의 이 시기 막부가 수호 통상조약을 맺은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러시아 등 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큰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은 프랑스의 롯슈와 영국의 파크스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먼 유럽에서는 대립관계에 있었습니다만, 일본에 대해서는 그 이해관계가 일치하기에 시모노세키 전쟁에서도 볼 수 있듯 서로 협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토바 후시미 전투(4) 오사카성 불타 오르다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토바 후시미 전투(4) 오사카성 불타 오르다 게이오 4년(1868년) 1월 9일, 토바 후시미의 전투로 패전해,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도망친 뒤의 오사카성이 함락 되고 불탔습니다. 7일 아침 막부군의 총대장인 요시노부가 없어진 일을 눈치챈 장병들로 오사카 성내가 큰소란에 휩싸입니다. 그 때 오오사카 성내에 있던 것은 육군 텐슈타이(伝習隊)나 신선조 등의 막부 직속의 장병과 아이즈, 쿠와나, 토바, 오카이등의 번의 사람들로 아직도 상세를 알지 않는 토바 후시미의 생자들은 잇달아 오사카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총대장이 없어져 버린 이상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7일~8일에 걸쳐 준비를 갖추고 오사카성을 뒤로 하게 됩니다. 쿠와나번 등은 7일의 저녁에 성을 나와 사카이에서 하루를 머무른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토바 후시미 전투(2) 토바 후시미 전투 개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토바 후시미 전투(2) 토바 후시미 전투 개전 게이오 4년(1868년) 1월 3일 교토로 향하는 막부의 대열에, 사츠마번이 포격을 개시해, 토바 후시미 전투가 개전 되었습니다. 에도 내에서 전개되고 있던 사츠마번의 테러 행위에 대해, 단속이라고 칭한 막부군이 사츠마번 저택을 구워 토벌한 것이 전년 게이오 3년(1867년) 12월 25일의 일이었습니다. 그 통지가 오사카성에 있는 제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 앞에 닿은 것이 12월 28일로, '즉각, 사츠마번을 토벌할 것'이라고, 성 내의 분위기가 바뀌는 중에 3일 뒤인 신년 1월 1일에는 요시노부에게서 '삿토의 표'라는 실질적 선전포고가 발해져 다음날인 1월 2일에는 그것을 조정에 제출할 수 있도록 , 로쥬우격인 오오..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토바 후시미 전투(1) 오사카에서 벌어진 첫 서양식 해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토바 후시미 전투(1) 오사카에서 벌어진 첫 서양식 해전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1868년) 1월 2일, 오사카만에 들어간 막부 군함 카이요우마루(開陽丸)가 만내에 정박중이던 사츠마 번선 헤이운마루(平運丸)에 포격 했습니다. 막부 토벌을 계획하는 사츠마번과 조슈번에 도쿠가와막부는 대정봉환을 실시해 버립니다. 물론, 다른형태로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만, 형태만으로는 덴노가 확실히 권력을 얻은 것입니다. 이에, 삿쵸 측은 명분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삿쵸는 결국 왕정 복고의 대호령이라고 하는 쿠데타를 결행해, 막부를 제거하려 합니다. 그리고 에도 내에 테러행위를 실시해, 막부에 대한 도발을 시작합니다. 이윽고, 그 도발에 참지 못한 막부가 에도에 있는 사츠마 번저..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메이지덴노, 왕정 복고의 대호령 발표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메이지덴노, 왕정 복고의 대호령 발표 게이오 3년(1867년) 12월 9일, 왕정 복고의 대호령이 발해졌습니다. '대정봉환'과'왕정 복고' 어느쪽이나 도쿠가와 막부가 정권을 덴노에 반납하는 것으로 일견 똑같이 느껴집니다만, 둘은 크게 다릅니다. '대정봉환'은 덴노 아래 새로운 막부 주도의 조직을 마련하고 정치를 실시한다고 하는 것이고, '왕정 복고'는 막부 정권을 배제해, 덴노 스스로 정치를 실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10월 14일에 토막을 외치는 사츠마, 조슈의 비난의 화살을 막으려는 듯이, 쇼군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시원스레 대정봉환을 한 제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였지만, 그의 예측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막부를 넘어뜨리는 대의명..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신선조의 분열, 아부라코우지의 변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신선조의 분열, 아부라코우지의 변 게이오 3년(1867년) 11월 18일, 원래 신선조에 속했던 고다이지당(高台寺党)의 이토 코우지 타로우(伊東甲子太郎)가 신선조에 습격당해 목숨을 잃은 '아부라코우지의 변'이 있었습니다. 히타치 시즈키번 출신인 이토 코우지 타로우는 겐지 원년(1864년) 11월 친구인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의 소개로, 남동생 스즈키 미키사부로우(鈴木美樹三郎) 등 7명과 함께 신선조에 입대했습니다. 입대한지 얼마되지않아 참모라는 요직에 발탁 되어 대장인 곤도 이사미(近藤勇)에게 중용 됩니다만, 원래 미토나 에도에서 학문이나 검술을 배우고 있었을 무렵으로부터 그는 존왕양이이었고, 막부측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신선조에 들어간 걸까요? 원래 친구였던 토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