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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신선조의 분열, 아부라코우지의 변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신선조의 분열, 아부라코우지의 변



 게이오 3(1867년) 11월 18일, 원래 신선조에 속했던 고다이지당(高台寺党)의 이토 코우지 타로우(伊東甲子太郎)가 신선조에 습격당해 목숨을 잃은 '아부라코우지의 변'이 있었습니다.


 히타치 시즈키번 출신인 이토 코우지 타로우는 겐지 원년(1864년) 11월 친구인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의 소개로, 남동생 스즈키 미키사부로우(鈴木美樹三郎) 등 7명과 함께 신선조에 입대했습니다. 입대한지 얼마되지않아 참모라는 요직에 발탁 되어 대장인 곤도 이사미(近藤勇)에게 중용 됩니다만, 원래 미토나 에도에서 학문이나 검술을 배우고 있었을 무렵으로부터 그는 존왕양이이었고, 막부측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신선조에 들어간 걸까요? 


이토 코우지 타로우



 원래 친구였던 토도와 사이토 하지메(斉藤一)등 몇 명의 신선조 대사를 스스로의 파벌로 끌어들여, 게이오 3년(1867년) 3월, '코우메이덴노의 고료우에시(御陵衛士)[각주:1] 배명 했다'며, 신선조를 탈퇴하고, 6월에는 파벌의 12명을 거느리고 히가시야마의 겟신인(月真院)을 거점으로 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겟신인이 고다이지당의 속해있는 작은 절이었기 때문에, 이 일파는 고다이지당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신선조에는 규율로 탈퇴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토가 '삿쵸의 동정을 알기 위해서 내가 나온 척을 해 두자'라고 콘도를 속인 것입니다. 


 이토는 함께 신선조에서 빠져나온 사이토 하지메에게 '콘도를 암살하고 신선조를 빼앗아, 막부 토벌에 이용한다!'는 계획을 말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실은 사이토는 콘도가 파견한 스파이입니다. 사이토는 즉시 이 정보를 가지고, 콘도에게로 향합니다. 자신의 암살 계획을 은 콘도는 곧 바로 행동을 일으킵니다. 게이오 3(1867년) 11월 18일, '적(삿쵸)  시찰의 비용을 건네주기 때문에,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이토를 꾀어냅니다. 이토는 실제로 사츠마나 조슈와 접촉해, 막부 토벌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는 '이것은 적 시찰의 일환이라고, 콘도는 믿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토는 홀로 콘도의 애인의 집으로 가, 만취해 버립니다.


 이에 겟신인으로 돌아가는 이토는 그 앞의 아부라코우지에 신선조의 자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걸어가는 이토에게, 오이시 쿠와지로(大石鍬次郎)가 창을 찔러 이토의 어깨를 관통합니다. 휘청거리면서도 칼을 뽑아 응전하는 이토는 자객 중 한 명을 베어 버렸습니다만, 상대는 여럿인데다 자신은 취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부라코우지의 혼미츠지(本光寺) 앞의 석탑에 기대어 절명했습니다. 


아부라코우지의 변 설명하는 팻말



 이토의 죽음을 확인한 콘도와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는 곧바로 겟신인에 사자를 보냅니다. '이토가 토사사의 습격을 당해 부상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토의 시체를 시치죠도리와 아부라코우지의 교차로 옮겨, 이번에는 겟신인의 잔당을 처리하려 매복합니다. 시간은, 정확히 오전 0시 고다이지당이 이토의 사체를 눈치채, 망연하면서도, 그것을 롱(籠)에 실어 데려 돌아가려고 한 순간, 신선조가 습격합니다. 케나이 아리노스케(毛内有之助), 핫토리 타케오(服部武雄) 그리고 토도 히로시스케(藤堂平助) 3명이 전사하고, 이토의 남동생 미키 사부로우(美樹三郎) 등 4명이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피합니다.


 그 잔당은 곤도 이사미를 습격하기도 했습니다만,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 결국, 고다이지당은 궤멸 했습니다. 많은 대사를 거느려 통제를 위해, 엄격한 규율을 제정해 위반한 사람을 차례로 숙청해 온 신선조  이토 코우자 타로의 아부라코우지의 변은 그 최후의 시작이었습니다. 토바 후시미 전투에 막부군의 일원으로서 더해진 신선조는 관군이 된 삿쵸에 패배해, 잠복한 시모우사 나가레야마에서 포위된 콘도가 오오쿠보 다이와(大久保大和)라고 자칭해 출두한 것은, 게이오 4(1868년) 4월의 이었습니다. 

  1. 능묘를 지키는 직책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