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메이지덴노, 왕정 복고의 대호령 발표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메이지덴노, 왕정 복고의 대호령 발표



 게이오 3년(1867년) 12월 9일, 왕정 복고의 대호령이 발해졌습니다.


 '대정봉환'과'왕정 복고' 어느쪽이나 도쿠가와 막부가 정권을 덴노에 반납하는 것으로 일견 똑같이 느껴집니다만, 둘은 크게 다릅니다. '대정봉환'은 덴노 아래 새로운 막부 주도의 조직을 마련하고 정치를 실시한다고 하는 것이고, '왕정 복고'는 막부 정권을 배제해, 덴노 스스로 정치를 실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10월 14일에 토막을 외치는 사츠마, 조슈의 비난의 화살을 막으려는 듯이, 쇼군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시원스레 대정봉환을 한 제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였지만, 그의 예측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막부를 넘어뜨리는 대의명분을 잃은 삿쵸는 가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츠마번의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결탁한 공경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는 면밀한 줄거리를 계획합니다.


일본의 미래를 결정한 회의



 미리 '왕정을 복고 해, 나라의 힘을 만회하는 기초를 쌓아 올렸으므로, 향후는 섭정, 관백, 막부등을 폐지해, 총재(総裁), 의정, 참여(参与)를 두고 정치를 실시한다'고 하는 내용의 칙서를 준비했습니다. 전날이 되어 사츠마, 조슈, 토사, 후쿠이, 오와리의 5번의 사람들이 이와쿠라저택에 집합해, 이 작전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화는 이튿날 아침까지 계속 된 뒤, 조정의 회의에서 그 칙서를 내 아직 어린 메이지덴노에게 '왕정 복고의 대호령'을 외치게 했습니다. 게이오 3년 (1867년) 12월 9일의 밤, 교토 고쇼 내의 고고쇼(小御所)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대호령에 의해, 총재로 취임한 아리스가와노미야 타루히토 신노우(有栖川宮熾仁親王)의 아래, 황족, 공경, 제후(야마노우치 도요시게, 마츠다이라 요시나가 등)와 이와쿠라 토모미 등 공경과 토막파의 번사(사이고 다카모리, 오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고토 쇼지로우 등) 그리고 메이지덴노도 동석했습니다. 


 하지만 옛 막부의 요인은 출석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완전하게 쿠데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토막파의 회의 중에 도쿠가와가문 영지의 반납, 정이 대장군직(쇼군직)과 나다이진(内大臣)관위 박탈, 다이묘로의 격하 등이 논의 되었습니다. 이 회의 중, 요시노부에 대한 처분에 반대하고 있던 것은 요시노부에게 대정봉환을 결의시킨 건백서를 제출한 토사번 번 야마노우치 요도였습니다. 하지만, 도중 휴식때 같은 대기실에 있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더 이상 방해하면 죽여버린다'는 위협을 듣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결국 막부의 최후를 장식하는 토바 후시미의 전투, 보신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음 12월 25일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