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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게이오대 2(1866년) 6월 14일, 제2차 조슈 정벌의 게이슈구의 선봉으로서 진군 하고 있던 히코네번 이이대에게 조슈군이 기습공격한 게이슈구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이 때, 막부측의 본영은 히로시마에 있고, 선봉의 총독을 맡고 있던 것은 기슈 번주 도쿠가와 모치츠구(徳川茂承), 서쪽 조슈로의 진공은 시모노세키로 향합니다. 동쪽에서는 산인과 산요의 두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세토우치라고 하는 유통의 요충지가 있었기 때문에, 역시, 산요측 쪽이 번성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산요는 공격과 방어 측에 있어서 최대의 요지가 됩니다. 당시 히로시마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서쪽 지방 가도는 오노로 통했습니다. 그 오노에서는 시쥬우하츠자카(四十八坂)라고 하는 산을 넘는 길과 항구를 통해 이와국에 통하는 2개의 길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이와쿠니성은 조슈번의 지번인 킷카와 가문의 본거지이기 때문에, 여기가 조슈의 동쪽의 최전선입니다. 



아카조나에, 이들이 신식군대와 싸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막기 위해 진공로에 있는 2개의 장소에서, 양자는 격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게이오 2(1866년) 6월 14일 아침 막부군의 선봉을 맡아 기개양양하게 가도로 나아가는 것은, 히코네번의 이이 부대였습니다. 이 지방은 전국시대의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가 다케다 가문에서 계승한 '이이의 아카조나에(井伊の赤備え)'를 부대를 이끌고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그린 캐릭터인 '히코냥'도 상당히 유명하지요. 아키와 스오우를 가로지르는 것은 코세가와(小瀬川)입니다. 이 코세가와를 넘으려 애쓴 것은 하코네 번사 다케하라 시치로우베이(竹原七郎平)였습니다. 하지만, 산에 몸을 숨기고 있던 조슈군이 그를 저격해 버립니다.


 이를 신호로 조슈군은 산 속에서 몸을 감추면서 이이 부대에 총격을 반복해, 이이 부대는 대혼란에 빠집니다. 수로 압도적으로 차이가 있는 도쿠가와 막부와 싸우는 조슈는 온전히 싸워서는 승산이 없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게릴라전에 반입한 것입니다. 이때 조슈군이 쓴 무기는 사카모토 료마의 중개로 사츠마번이 제공한 최신예의 미녜총[각주:1]을 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정예들은, 200 m 끝에 매달린 동전을 관통한다고 하는 명수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이이 부대가 이름을 날리는 아카조나에는 전국시대에나 유명했지, 이제와봐야 시대착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미녜총입니다



 그리고 이 이이 부대의 패주를 은 타카다번의 사카키 부대는 후방에서 싸워보지도 않고 철퇴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게이슈구치의 초전은, 조슈의 압승이 되어 히로시마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어짜치 이 2차 조슈 정벌은 결국 조슈번과 막부의 싸움입니다. 어디까지나 일본의 제일은 덴노, 쇼군이라고 해 봐야 번들을 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츠마번처럼 전쟁에 참여를 거절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전처럼 막부의 권위가 컸다면 또 모를 일입니다만. 


 전국시대의 아카조나에를 그대로 쓴 것은 다름아닌 도쿠가와 막부가 만든 '무가 제법도'때문이기도 합니다. 무가끼리의 전쟁을 금지한 것으로, 새로이 무기를 구매하거나 주조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던 것으로 법대로 라면 조슈, 사츠마번 측이 위법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기에 2차 조슈 정벌에서 막부군이 월등히 많았다고는 해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구식무기를 든 채로 신식무기를 지닌 조슈번과 상대한 것으로 어떻게 보면 승패는 쉽사리 예측하기 힘들었습니다. 



2차 조슈정벌 개요도



 처음의 기습으로 기세를 올린 조슈군이지만, 다른 곳의 전투와는 다르게 이곳만은 일진일퇴의 전투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이 부대가 떠난 뒤, 그 기세를 몰아 동쪽으로 향해, 아키로 진공하려고 한 조슈군이었지만, 이이 부대의 뒤를 이어 도착한 기슈번 진구성(新宮城) 성주 미즈노 타다모토(水野忠幹) 스스로가 군을 인솔하고 있는 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슈번은 의욕 만만하고, 게다가 서양식의 장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6월 19일 시쥬우하츠자카에서 격돌하는 양자였지만, 조슈군이 아무리 공격해도 미즈노 부대는 철퇴하지 않고, 양자 무승부의 교착 상태가 되었습니다.

  1. 일본 에도시대에 수입된 프랑스제 총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