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9) 고니시 유키나가, 자수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세키가하라 전투(19) 고니시 유키나가, 자수하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19일,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진 서군에 속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부키산(伊吹山) 속에서 잡혔습니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19일의 일 세키가하라의 촌장 린조우주(林蔵主)가, 이부키산속을 걷고 있저, 약간 먼 곳에서 '여보시오. 이리 와 주시오.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도망자였습니다. 4일전의 9월 15일, 세키가하라에서 큰 전투가 있어, 근처는 그물 처럼 둘러쳐진 도망 무사 사냥으로 삼엄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때주위 마을의 태도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도망치는 무사 사냥에 참가해 포상을 받는지, 혹시모를 화를 입지 않기 위해서, 못 본 척을 하는지 입니다. 린조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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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8) 배신자의 보신, 사와산성 공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세키가하라 전투(18) 배신자의 보신, 사와산성 공격 게이쵸5년(1600년) 9월 17일, 그저께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배신한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등 세력이 보신을 위해 사와산성(佐和山城)을 공격했습니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15일에 발발한 세키가하라 전투는 천하 판가르는 전투라고 하지만, 오후에는 거의 결착이 나 버렸습니다. 저녁, 전공의 확인을 하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진에,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찾아 왔습니다. 히데아키의 배신에 의해, 단번에 전황이 이에야스 측에 유래해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어느 의미로는 동군 승리의 제일 공로한 것입니다. 그러나, 배신이 늦었던 일로, 이에야스가 초조 시켰던 것도 사실입니다. 히데아키는 이에야스의 앞에 나아가, 배신이 늦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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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7) 적도 놀래키다! 시마즈의 배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세키가하라 전투(17) 적도 놀래키다! 시마즈의 배진 게이쵸5년(1600년) 9월 16일, 세키가하라 전장에서 탈출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토키무라(時村)에 도착해 미즈구치(水口)를 거쳐, 오사카로 향했습니다.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시마즈대는 끝까지 서군으로서 전장에 남아있었습니다. 시마즈대는, 전투의 한중간, 완전히 군사를 움직이지 않아, 보다 모산 이시다 미쓰나리가 사자를 보내고 참전을 재촉해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싸움을 한다.'라며 끝까지 관망했습니다. 시마즈대를 인솔하고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는, 형 요시히사와 두 명의 동생 토시히사(歳久), 이에히사(家久)와 함께 '시마즈4 형제'로 알려진 사츠마의 무장입니다. 원래 시마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맹세를 주고 받은 사이여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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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5) 시마 사콘, 전사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세키가하라 전투(15) 시마 사콘, 전사하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15일,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죽은 시마 사콘(島左近)은 서군의 주요인물이면서, 오오타니 요시쓰구와 함께, 목이 발견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요시쓰구의 목에 대해서는 유아사 고스케와 도도 다카노리의 일화가 있습니다만, 사콘에는 그런 일화도 없습니다. 세키가하라에서 시마 사콘과 직접 대결한 쿠로다 부대 병사의 회고록 「후루사토이야기古郷物語」에도, '그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 몸의 털이 곤두섰다'라고 썼듯이, '귀신 사콘(鬼左近)'의 이명에 어울리는 맹장은 에도시대가 되어도, 쿠로다의 가신들의 이야깃거리로 남았습니다. '밀려 드는 대군에 녹아들어 자취을 감추었다', '깊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창을 휘두르며 분전 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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