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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4) 오오타니 요시쓰구 전사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4) 오오타니 요시쓰구 전사하다



게이쵸5년(1600년) 9월 15일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오오타니 요시쓰구가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오오타니 요시쓰구의 모습



 전날밤 세키가하라에서 결전을 결의해 오카이성을 나온 이시다 미쓰나리가 인솔하는 4만의 군세가 세키가하라에 도착한 것은 일자가 바뀐 오전 1 시경이었습니다. 미쓰나리는 이미 난부산에 포진 하고 있던 나츠카 마사니에(長束正家),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등과 최종 협의를 하고, 세키가하라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사사오산(松尾山)에 본진을 두었습니다. 오전 2시, 미쓰나리가 한밤 중에 이동을 한 것을 알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군에 출격 명령을 내려, 그 최후미에서 이동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오전 4시에 서군, 오전 6시에 동군이 포진을 완료합니다. 남서의 마츠오산에는 전날에 이미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부대가 도착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욱한 안개가 개인 오전 8시, 이이 나오마사가 우키타 히데이에에게 공격을 한 것을 계기로, 천하를 판가르는 전투의 막이 올랐습니다.


 쌍방의 병력은 함쳐 8만~10만 이라고 합니다. 이 때, 동군의 사전 교섭역이었던 쿠로다 나가마사의 가신 케야 몬도(毛屋主人)가 이에야스에게 '적은 2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고합니다. 이 2만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과장도 있지만, 나가마사의 사전 교섭에 의해 몇명의 서군 무장이, 동군에 내통 하고 있는 것이 현상이었습니다. 우선, 난구산 주변에서는 킷카와 히로이에사 있었는데, 킷카와는 모리의 분가로, 모리군의 선봉대이기 때문에 그가 움직이지 않는 한 그 후방에서 진을 치는 모리 히데모토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히데모토는 서군 총대장 모리 데루모토가 오오사카성에 머물고 있기에 대리와 같은 형태로의 세키가하라에 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난구산 주변의 서군은 움직이지 않아 버립니다.





 다음으로, 미쓰나리의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대는 원래 이에야스의 동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미쓰나리와 함께 있었을 때, 전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서군에 말려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는 쿠제가와 전투이후 야습을 제의하나, 미쓰나리가 일축하자 화가나 제대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개전과 동시에 격돌한 것은 이시다대 VS 쿠로다&호소카와대, 우키타대 VS후쿠시마 마사노리대, 고니시 유키나가대 VS데라자와 히로타카대, 오오타니 요시쓰구대 VS도도 다카토라&교고쿠 다카토모대 였습니다. 최초 1시간 정도, 일진일퇴였습니다. 아니, 약간 서군이 우위인 상태였지만, 이시다대의 선봉인 시마 사콘이 부상해, 전란안에서 자취을 감추는 무렵에는, 형세가 역전합니다. 참지 못한 미쓰나리는 오전 11 시경에 총공격의 봉화를 올립니다만,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아 버립니다. 게다가 미쓰나리는 움직이지 않는 시마즈대에게 향해 사자까지 보냅니다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투 개시부터 4시간 정도 지난 정오 무렵에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대가 드디어 마츠오산을 하산해, 오오타니대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이에 주변에 있던 와키자카, 쿠츠키, 오가와, 하라츠카의 4부대도 동군에 붙어, 일제히 오오타니대에게 돌진했습니다.


 오오타니 요시쓰구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미쓰나리가 가장 신뢰를 가지고 있던 무장입니다. 미쓰나리가 이에야스를 토벌할 결의를 해, 최초로 상담했던 것도 요시쓰구였습니다. 그는 당시 한센병으로 거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천성의 지략으로 요소요소에 말방책을 구축해, 도도, 쿄고쿠 를 상대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때, 요시쓰구는 부자유스러운 신체로 이미 시력도 거의 없고, 가마를 타서 지휘했습니다. 게다가, 죽음을 각오했는지 투구와 갑옷을 입지 않고 손상한 피부를 숨기기 위해, 얼굴에는 복면을 한채로 손발에는 흰 옷감을 감고 있었습니다.



하라츠카 다메히로



 그런 요시쓰구의 손발이 되어 지휘, 명령을 서포트한 것이 히라츠카 타메히로(平塚為広)라는 무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도도, 쿄고쿠대에 가세해 코바야카와대를 시작으로 하는 서군의 배신자들의 총공격을 받습니다. 이에 오오타니대의 유명한 무장이 차례차례로 쓰러져 가는 중, 드디어 최후를 각오한 타메리로는 적장의 목 하나하나에 와카를 붙여 주군 요시쓰구에게 보내도록 지시한 후, 밀려 드는 적진에 돌입해 전사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사자에게서 들은 요시쓰구는 크게 웃으며 말합니다.


'무용에도 와카에도 감동했다! 지금부터, 그 녀석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나서, 가신 유아사 고스케(湯浅五助)에게 할복을 도울 것을 명한 뒤, 배를 열십자로 찢어, 장렬히 할복을 했습니다. 오오타니대의 괴멸로, 더욱 더 패색이 짙어지는 서군은 이윽고 우키타대, 고니시대가 차례차례로 전선 이탈해, 히데이에도 유키나가도 이부키산으로 자취을 감추고, 미쓰나리 자신도 패주 합니다.



유아사 고스케 일러스트



 오후 2 시경, 끝까지 세키가하라에 있던 시마즈대가, 결사의 돌파로 남동측의 이세지에 퇴각을 개시해, 난구산에 있던 군단도, 역시 이세로(伊勢路)로 퇴각해 세키가하라의 전투는, 불과 반나절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전투 종료 직전 도도 다카토라의 조카 도도 다카노리(藤堂高刑)는 전투의 긴장상태에 지쳐 물을 마시려고 산중에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눈앞의 나무의 그림자 아래로 한 명의 무장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 이상으로 피곤하고, 상처도 심한 다름아닌, 유아사 고스케였습니다. 가 아닙니까! 고스케는, 동군에서도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무장이었으나, 심하게 지쳤기에 쉽게 포박되어 버렸습니다.다카노리에게 잡힌 고스케는 그에게 부탁을 합니다. 


'기다려주게! 지금 나는 막 이 주변에 주군 요시쓰구밈의 목을 묻었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찾지 말아 주게!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게, 제발 부탁이네. 나는 요시쓰구님에게서 '병에 걸린 얼굴을 적에게 보여지면 안된다. 반드시 발견되지 않는 곳에 묻어 줘.'라는 명령을 받았네. 주군의 명령을 지킬 수 없다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네. 무사의 정으로 약속해 주면, 나의 목을 당신에게 주겠네!"


고스케의 주군의 생각해 감동한 다카노리는 대답합니다. 


"알았다. 약속한다! 신에 맹세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에 기뻐한 고스케는 무저항인 채 다카노리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진으로 돌아와 그 목을 숙부 다카토라에 보이면, 그는 크게 기뻐하며 본진의 이에야스에게 보고합니다. 물론, 이에야스도 많이 기뻐했으나, 다카노리에게 묻습니다. 



고스케를 쿠비짓켄 하는 이야에스



"고스케 정도의 무장의 목이 이렇게 깨끗하다니, 거의 저항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한 것인가?"


"우연히 그를 만났을때 매우 지치고, 많은 상처를 입고 있어 쉽게 목을 베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요시쓰구의 목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그 주변은 찾아 봤는가?"


 다카노리는 체념하고 대답했습니다. '네, 실은 그의 목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스케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약속을 하고 목을 베었으므로, 비록 이에야스 님이어도 이야기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저를 벌하여ㅠ주십시오."
이에 그 자리에 긴장이 달립니다. 주군의 '이야기하라'는 명령에 '싫습니다'라고 거역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리에서 목이 베어져도, 어쩔 수 없을 정도의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당분간의 정적 이에야스가 크게 웃습니다. 


"대단하구나! 의리가 있는 젊은이구나! 정직 하기도 하거니와, 요시쓰구의 목도 너의 공훈이 될텐데..." 


라고 말하면서, 다카노리를 가까이에 불러, 스스로의 칼과 창을 포상으로 하사했던 것입니다. 현재의 세키가하라 옛 전장에는 요시쓰구의 무덤과 고스케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은 후에, 도도 가문에 의해서, 그 땅에 세워 졌다고 합니다.


契りあらば 六の巷に 待てしばし

약속했었던 여섯개의 갈림길에 기다리게나

遅れ先立つ 事はありとも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