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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7) 적도 놀래키다! 시마즈의 배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7) 적도 놀래키다! 시마즈의 배진



 게이쵸5년(1600년) 9월 16일, 세키가하라 전장에서 탈출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토키무라(時村)에 도착해 미즈구치(水口)를 거쳐, 오사카로 향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 동상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시마즈대는 끝까지 서군으로서 전장에 남아있었습니다. 시마즈대는, 전투의 한중간, 완전히 군사를 움직이지 않아, 보다 모산 이시다 미쓰나리가 사자를 보내고 참전을 재촉해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싸움을 한다.'라며 끝까지 관망했습니다. 시마즈대를 인솔하고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는, 형 요시히사와 두 명의 동생 토시히사(歳久), 이에히사(家久)와 함께 '시마즈4 형제'로 알려진 사츠마의 무장입니다. 원래 시마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맹세를 주고 받은 사이여서, 요시히로가 일부러 사츠마에서 세키가하라에 온 것도, 사실은 이에야스 때문입니다. 아직 후시미성에 있던 이에야스를 방문한 요시히로는 그 때, 이에야스로부터 '나는 지금부터 아이즈 정벌로 향하기 때문에, 후시미성의 부재중을 부탁하네.'라고 말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데리고 있는 수로는 체면이 서지 않는다.'라고 사츠마의 형에게 군사를 더 보내어 주도록 요청합니다. 하지만 당시 사츠마는 내전 상태였기 때문에, 너무 많은 군사를 소비하는 일은 어렵웠습니다. 어떻게든 1,500 정도의 수를 기나이에 파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야스가 아이즈로 향한 후, 부재중이 된 후시미성에 향하지만, 이 때, 후시미성을 맡고 있던 것이 토리 모토타다(鳥居元忠)는 완고한 성격 때문에 요시히사의 진심을 의심해 입성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혹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있던 모토타다가, 다른 무장을 끌어 들이는 일을 거절한 것일 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후시미성은 일종의 미끼이기 때문에 성실하고 정직한 모토타다는 거기에 시마즈를 말려 들게 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같은 무렵,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친아버지 키노시타 이에마사(木下家定)도, 인질로 후시미성에 들어가는 일을 신청하고 있습니다만, 모토타다는 이것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모토타다에게 후시미성으로의 입성을 완고하게 거절 당한 요시히로는 우연히 오오사카에 체재하고 있다가 미쓰나리가 군사를 일으켜, 얼떨결에 서군에 참가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서군의 패색이 진해진 전장에서 미쓰나리까지 패주 한 지금,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군에 항복하는 것은 '사츠마의 네마리 용'의 자긍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적을 베다 전사 하는지, 전장을 탈출하는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요시히로는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거나 할복하려 했지만, 조카인 시마즈 토요히사가 맹반대해서 결국, 전장을 탈출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동군의 후방에 있는 이세로(伊勢路)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후 2시에 시마즈 부대는 돌격해 적을 뚫으려 하고, 혼다 타다카츠와 이이 나오마사가 그들을 막아 섭니다.



시마즈의 배진(보라색은 배신한 서군)



 시마즈대는 지면에 점을 찍듯이 일정 간격으로, 군사가 앉아 총을 쏜다고 하는 작전을 짜, 뒤의 군사가 총을 쏘는 동안에, 앞의 군사가 그 군사의 뒤로 후퇴해, 뒤이어 그 군사가 총을 쏘아, 그 사이에 다시 앞의 군사가 뒤로 간다고 하는 동작을 반복해 공격 하면서, 서서히 후퇴해 갔습니다. 그런데도 밀어닥치는 대군에 조카인 토요히사는, 요시히로의 진바오리를 입고 분투해, 미끼가 되었습니다. 이 탈출극은, 다른 사람이 전원 전사 해도, 요시히로 한 명이 살아 남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토요히사는 전사하고, 이에 쵸주인 모리아쯔(長寿院盛淳)가 '내가 시마즈 요시히로다!'라고 외쳐, 적의 주의를 필사적으로 끌어당깁니다. 하지만 역시 그도 전사해 버립니다. 두 명의 대역의 분전 덕분에, 요시히로는 어떻게든 전장으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합니다.(쵸주인 모리아츠)


 게이쵸5년(1600년) 9월 16일에 토키무라에 도착해, 미즈구치를 거치고, 이후에 오사카로 향했습니다. 18일 후, 고향의 토미노구마성(富隈城)에 가까스로 도착했을 때는, 불과 80기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시마즈의 탈출극은 '시마즈의 배진(島津の背進)'이라고 하며 적인 동군에게서도 절찬되었다고 합니다. 무사하게 사츠마에 돌아가기야 했지만, 시마즈를 이대로 놔 둘 리가 없습니다. 이 후, 이에야스는 '시마즈 정벌' 의 명령을 내립니다. 과연 시마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