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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가문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오슈의 패자, 다테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오슈의 패자, 다테 가문



 전국시대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교토가 중심에 있는 기나이에 있엇기에 토호쿠 지방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방의 토호쿠 지방역시 전국시대의 전란에서 무사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의 중심에 있었던 가문 중 하나가 다테 가문입니다.



타케니니와토비스즈메竹に二羽飛雀

 

다테 가문의 성립


 다테 가문은 전통적인 명 가문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후예입니다. 요리토모(頼朝)의 오슈 정벌때 자신의 자식 네 명을 군에 종군시켜 다테군을 제수받아 '다테'라 칭하게 됩니다. 남북조시대에 들어서 다테 가문은 그 영지를 넓히며 세력 또한 넓히게 됩니다. 이 발전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무네토(宗遠)와 마사무네(政宗)[각주:1]입니다. 이때 그들은 쇼군가와 겨룰정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들의 뒤를 이은 모치무네(持宗)는 두번의 상경을 통해 쇼군의 총애를 받아 이름의 한 글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이후로 다테 가문은 대대로 쇼군의 이름의 한 글자를 받는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를 편휘(偏諱)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 쇼군에게 공물을 바쳐, 무츠국의 수호직을 얻게 됩니다.


텐분 5년(1536년) 분국법인 진카이슈(塵芥集)를 제정하며 전국시대의 다테 가문의 기틀을 닦게 됩니다. 또한 거성을 요네자와(米沢)로 옮겨 북쪽 진출을 그만둘 것을 천명하며 모가미의 세력확대를 막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다테 가문은 많은 자식을 두고 있었는데, 주위의 다이묘들에게 장가를 보내 그 세력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이치 하사록(采地下賜録)이라는 가신의 지행을 정리한 목록을 만들기도 했으니, 가신단에 대한 강대한 통제가 이루어졌슴을 알수 있습니다.



오슈의 패왕, 다테 마사무네의 등장



다테 마사무네 초상화



 다테 가문을 이은 테루무네(輝宗)는 아들의 영특함을 알아보았는지 마사무네(政宗)가 성인이 되자마자 가독을 상속시키고 은거합니다. 하지만 하타케야마 요시쓰구가 마사무네의 공격에 항복한 뒤 테루무네를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킵니다.(테루무네 납치 사건) 이에 마사무네는 부득이하게 아버지까지 총으로 공격해 죽게 합니다. 마사무네는 복수를 위해 히토토리바시 전투(히토토리바시 전투)를 일으키나, 패배하게 됩니다. 여기서 마사무네는 힘에 의지한 공격이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리아게하라 전투(스리아게하라 전투)에서 무츠의 남부를 손에 넣은 마사무네는 오슈의 절반을 손에 넣어 '오슈의 패왕'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 뒤에 스키가와성을 공격해 니카이도 가문을 멸문시킨 마사무네(스키가와성 공방전) 얼마 뒤 이시카와 가문이 항복해 센도 칠군을 손에 넣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테 마사무네가 이끄는 다테 가문은 명백히 훌륭한 센고쿠 다이묘로 성장하게 됩니다.



마사무네의 처신술, 다테 가문을 살리다



오슈국의 위치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다테 마사무네도 천하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앞에서는 주춤하게 됩니다. 오슈의 패왕이라며 기세를 세우던 그는 히데요시에게서 '오다와라성 정벌에 참여할 것'이라는 통지를 받고 고민합니다. 게다가 히데요시 연고의 니카이도 가문을 멸문시킨 것으로 힐책을 받고 있던 데다, 여기서 단순히 참여하면 패도가 꺽이는 것을 안 것입니다. 마사무네가 마음을 정하고 오다와라 정벌에 참여하려 하나, 독살사건이 일어나 출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늦게 도착한 마사무네는 훌륭한 퍼포먼스로 목숨과 영지 일부를 보전하게 됩니다.(히데요시 대면)


 그러나 가만히 있어서야 이름이 울지요. 마사무네는 공작을 벌여 '카사이, 오사키 잇키'를 발발 시킵니다.(카사이, 오사키 잇키) 그런데 그가 이 일을 사주했다는 증거가 나오며 다시 한번 다테 가문은 멸문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마사무네는 또다시 화려한 퍼포먼스와 핑계로 또다시 목숨을 보전하게 됩니다.(변명에 성공한 마사무네) 그 뒤로도 마사무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아 코우노마에(코우노마에)를 두고 바둑을 두는 등 대접을 잘 해줍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에 참전해(마사무네의 행보) 그 영지를 보전하고 결국 센다이 번주(仙台藩主)로 제수 받아 에도 막부에서도 그 위용을 잃지 않았습니다.

  1. 전국시대에서 유명한 다테 마사무네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