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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가문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큐슈의 패자, 시마즈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큐슈의 패자, 시마즈 가문



 전국시대의 큐슈는 류조지, 시마즈, 오오토모 세 가문이 난립하는 마치 삼국지와 같은 형태였습니다. 그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전국의 큐슈를 통일하려 한 것은 다름아닌 시마즈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천하를 통일해 가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큐슈정벌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루네쥬지丸に十字


시마즈 가문의 성립


시마즈 가문의 출자에는 코레무네(惟宗), 미나모토 (源), 후지와라(藤原)의 후예라는 세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나모토나 후지와라 같은 경우는 단지 자신의 출자를 미화하기 위해서 같다 붙인 것입니다. 실제로는 코레무네 가문의 출자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들이 시마즈 장(島津庄)을 하사받아 스스로 '시마즈'라 칭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시마즈는 미나모토노 요리모토(頼朝)에게 사츠마, 오오스미의 수호직을 제수받아 남 큐슈의 슈고 다이묘가 됩니다. 하지만 수많은 분가가 생겨나며, 오히려 종가 시마즈의 위상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타카히사(貴久)가 등장해 혼란을 수습해 전국시대의 시마즈 가문의 터를 닦습니다.



시마즈 가문, 큐슈의 패자가 되다



시마즈 사형제의 모습



 타카히사의 뒤를 이은 적남인 요시히사(義久)는 요시히로(義弘), 토시히사(歳久), 이에히사(家久)의 3명의 걸출한 형제들의 협력을 얻어, 시마즈의 힘을 기르기 시작합니다. '시마즈 4룡'으로 불리는 이들 형제들은 매우 큰 활약을 보입니다. 먼저 큐슈 남부를 제패하고, 중부로 진출하다 후유가에서 만난 오오토모의 대군세를 미마가와 전투(미마가와 전투)에서 츠리노부세 작전을 펼쳐 몰살시켜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오오토모 가문을 몰락시킨 요시히사는 그 기세를 이끌어 큐슈를 제패해 갑니다. 

 

 이제 큐슈에 남은 적은 류조지 가문뿐입니다. 시마즈는 시마바라 반도에 침략해 조략을 펼쳐 류조지의 세력을 포섭해 나갑니다. 이를 막기 위해 출격한 류조지 다카노부를 다테나와테 전투(다테나와테 전투)에서 죽이고 류조지 가문을 무찌릅니다. 이후에 아와야성 공방전(아와야성 공방전)에서 다카하시 쇼운(高橋紹運)을 죽인 시마즈 가문의 눈 앞에 큐슈 통일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천하인의 앞에서 좌절하다


 하지만 이런 시마즈의 기세도 오래가지 못했으니, 큐슈 통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오오토모 소린이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의탁하며, 하시바 히데요시가 큐슈 정벌에 나섭니다. 처음에야 토츠키가와 전투(토츠키가와 전투) 등에서 크게 승리한 시마즈 이지만, 네지로자카 전투(네지로자카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며, 대세를 깨달아 요시히사는 스스로 머리를 삭발하고 항복을 신청합니다. 이렇게 해서 영지를 보전한 시마즈이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참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고, 지켜만 보다 패색이 짙어지자 재빠르게 퇴각을 합니다.(시마즈의 배진) 그렇지만 뛰어난 외교술로 사츠마, 오오스미와 휴우가의 일부를 지배하는 다이묘가 됩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에게 복수하다


 이렇게 해서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에서 좋지 않은 대접을 받은 시마즈 가문은 후에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자, 그 앞에서 '토막'(막부 토벌)의 기치를 들며 도쿠가와 이야에스에게서 받은 핍박을 해소하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 때에 시마즈 가문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