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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여성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바타성 함락, 시바타 시게이에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시바타성 함락, 시바타 시게이에의 할복 덴쇼 15년(1587년) 10월 28일, 우에스기 카게카쓰(上杉景勝)의 총공격을 받고 있던 시바타성(新発田城)이 함락 되어, 시바타 시게이에(新発田重家)가 할복 했습니다. 시게이에의 시바타 가문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에치고 북부에 세력을 자랑한 아카키타중(揚北衆)인 사사키(佐々木) 가문의 분가 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가마쿠라 시대에 막부에서 장원의 지도우(地頭:장원 관리직)을 하라는 지시를 받아, 쭉 이 땅을 지켜 왔다고 하는 자긍심도 있어, 남북조 이후에 수호가 된 우에스기, 하물며 그 아래의 수호대인 나가오와는 계속 갈등하던 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족끼리의 분쟁이나 분열을 반복하며 서서히 힘이 쇠약해져 이윽고 나가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루사키성 공방전(2) 묘우린니의 츠루사키성 탈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츠루사키성 공방전(2)묘우린니의 츠루사키성 탈환 덴쇼 15 년(1587년) 3월 8일, 시마즈군의 공격으로 츠루사키성(鶴崎城)을 빼앗겼던 묘우린니(妙林尼)가, 다시 성을 탈환했습니다. 덴쇼 14년 묘우린니가 1/10정도 밖에 되지 않는 군세로 시마즈군의 맹공을 견뎌냈던 것 기억 나시나요?(츠루사키성 공방전) 하지만 결국 츠루사키성의 군량이 다해 묘우린니는 항복합니다. 성에서 나와 포로가 된 묘우린니는, 미마사카노카미에게 성 아래에 있는 저택을 받아, 그곳에서 살게 됩니다. 묘우린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마즈군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이 부르는데 가지 않을리가 없겠지요. 아무튼 그녀는 원수인 시마즈군과 친하게 지내지만 뱃속에서는 칼을 품고 있었습니다. 묘우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전국시대의 화장은 어땠을까?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전국시대의 화장은 어땠을까? 전국시대 여성들이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어디까지나 여성이었습니다. 여성 특유의 자신을 꾸미고자 하는 욕구는 그대로 있었지요. 또, 남자들도 전투 등에서 화장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전국시대의 화장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전국시대 전기의 화장 전국시대의 전기의 여성들은 맨 살갗의 색을 강조해 별로 백분(白粉)을 바르지 않는 화장법을 택했습니다. 한편, 남성들은 싸움에 임하는 무사들이 화장을 하는 풍조가 태어나 적에게 목을 잘려도 보기 흉하지 않게, 눈썹을 연필로 그리고, 얼굴에 백분을 발랐습니다. 우리가 흔히 일본 그림에서 보는 새하얀 무장들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개중에는 립스틱처럼 입술을 붉게 칠하거나 치아에 검은색으로 칠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2) 미녀의 기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2) 미녀의 기준 전국시대에는 다양한 무장들이 난립하는 전란의 시대였지만, 그래도 현재와 비슷하게 미남, 미녀가 선호되었었습니다. 미남의 기준은 저번에 살펴 봤지요.(전국시대 미남의 기준) 이번에 살펴볼 미녀의 기준은 '노우'(일본전통극)에 나오는 가면과도 같은 얼굴입니다. 사실 이 가면이 당대의 미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고 갸름한 얼굴, 눈초리가 길게 째졌으며, 눈과 입이 작을 것 그럼 전국시대에 미녀로 전해지는 이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관련 포스팅이 있는 경우 이름을 누르시면 이동할 수 있게 링크해 두었습니다. 오이치노가타(お市の方) 전국시대 제1의 미녀로 알려진 인물로 아자이 나가마사, 시바타 가쓰이에를 남편으로 했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백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3) 전투에 참가한 여성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는 백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3) 전투에 참가한 여성 전투라고 해서 여성을 비껴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 전투에 참가하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미망인이 당주가 되는 일도 있었기에, 남편이 사정이 있어 싸울 수 없는 경우, 아내는 대신에 지휘를 맡는 것이 인정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국시대에는 츠루히메나 묘우린니같이 아내가 성병을 지휘해 농성 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농성전의 경우에 가까이 온 적병에게 총을 쏘거나 돌을 던지는 일은 그리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이기에 여성들이 동원되는 경우도 꽤나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사천왕인 혼다 타다카츠는 '전장에 처음 온 남성들은 피를 보고 구토를 하는데, 여성들은 침착하다.'라며 여성들이 오히려 더 용..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전국시대 여성들의 삶, 여성들의 생활(2)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전국시대 여성들의 삶, 여성들의 생활(2) 전국시대 여성들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저번(전국시대 여성들의 삶(1))에 이어서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여성의 이름은 가계도에 기재되지 않는다 실명이 판명되어 있는 전국시대의 여성들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거나 관직의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전국시대의 여성은 실명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일반적입니다.여성은 머지않아 남의 집에 시집가 버리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일족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가르치는 것은 남편이 되는 남성만 당시의 여성들은, 실명을 경솔하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실명을 가르치는 것은 남편이 되는 남성, 혹은 지극히 친한 상대만이었습니다. 옛날 일본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이름을 묻는..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황실에 시집간 도쿠가와의 딸, 도쿠가와 마사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황실에 시집간 도쿠가와의 딸, 도쿠가와 마사코 도쿠가와 마사코(德川和子)는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고우의 다섯 번째 딸입니다. 맨처음 이름은 마츠히메(松姫)였습니다. (카즈히메和姫 라는 설도 있지요) 케이쵸 17년(1612년)에는 고미즈노 천황(後水尾天皇)이 즉위하자, 이에야스는 마사코의 입궁을 제의했습니다. 케이쵸 19년(1614년) 4월에 입궁선지(宣旨: 천황의 명령을 기록한 문서)가 나왔지요. 하지만 입궁은 오사카 전쟁과 이에야스의 사망, 고요제 천황(後陽成天皇)의 승하 등이 계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에 연기 되었습니다. 곧 후궁 저택의 조영(造営)이 시작되지만, 고미즈노 천황이 총애하는 궁녀 요츠츠지 요츠코(四辻与津子)가 출산해버리면서 그녀의 입궁시기가 애매해 집니다. 겐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타카츠카사 타카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잘못된 결혼으로 인생을 망치다 타카츠카사 타카코 타카츠카사 타카코(鷹司孝子)는 에도 막부 제 3대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정실입니다. 아버지는 타카츠카사 노부후사(鷹司信房), 어머니는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의 딸 삿사 테루코(佐々輝子)입니다. 겐나 9년(1623년) 8월, 이에미츠가 정이대장군 선하(宣下)를 받기 위해 에도로 왔을 때,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실인 고우의 조카가 됩니다. 칸에이 원년(1624년),혼마루(本丸)에 들어갑니다. 1년 뒤, 정식으로 이에미츠와 결혼하여 미다이도코로(御台所)가됩니다. 이에미츠와의 사이는 결혼 당초부터 험악하여, 실질적인 부부생활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결혼 후 얼마 안있다가 이에미츠에게 절연을 당하지요. 오오쿠에서도 추방을 당하여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불행했던 삶, 이야에스의 부인 쯔끼야마도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불행했던 삶, 이야에스의 부인 쯔끼야마도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실로 본명은 세나(瀬名)입니다. 코우지 3년(1557년), 이마가와의 인질이었던 마츠다이라 모토노부(松平元康: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결혼합니다. 에이로쿠 2년(1559년)에 마츠다이라 노부야스(松平信康: 도쿠가와 노부야스)를, 에이로쿠 3년(1560년)에 카메히메(亀姫)를 낳습니다.에이로쿠 3년(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백부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죽자 모토야스(元康: 모토노부에서 개명)는 오카자키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급히 도망친 것이기에 쯔끼야마도노와 자식들을 데려가진 못했습니다. 쯔끼야마도노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여동생의 남편 카미노고성(上ノ郷城) 성주 우도노 나가테루(鵜殿長照)의 2명의 아이와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도쿠가와가의 유모 오우바노츠보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도쿠가와가의 유모 오우바노츠보네 오우바노츠보네(大姥局)는 에도 막부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유모입니다. 남편이 이마가와 가문을 섬기면서, 인질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보살펴 주고 있었는데, 이마가와 가문이 쇠퇴 하자 그 후에는 남편과 함께 후호죠 가문을 섬긴다. 남편이 죽고 난 후, 잠시 동안은 스루가에서 살지만, 생모를 어렸을 때 잃은 이에야스의 아들 히데타다의 유모가 되어 도쿠가와 가문에 들어갑니다. 이로 인해 초창기의 오오쿠에서 실권을 잡습니다. 히데타다는 공처가로, 질투가 심한 정실 고우(江)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며 측실을 두는 일도 허락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오우바노츠보네의 시녀였던 세이(静)에게 손을 대 임신을 시켜버렸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오우바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