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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불행했던 삶, 이야에스의 부인 쯔끼야마도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불행했던 삶, 이야에스의 부인 쯔끼야마도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실로 본명은 세나(瀬名)입니다. 코우지 3년(1557년), 이마가와의 인질이었던 마츠다이라 모토노부(松平元康: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결혼합니다. 에이로쿠 2년(1559년)에 마츠다이라 노부야스(松平信康: 도쿠가와 노부야스)를, 에이로쿠 3년(1560년)에 카메히메(亀姫)를 낳습니다.

쯔끼야마도노

에이로쿠 3년(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백부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죽자 모토야스(元康: 모토노부에서 개명)는 오카자키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급히 도망친 것이기에 쯔끼야마도노와 자식들을 데려가진 못했습니다. 쯔끼야마도노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여동생의 남편 카미노고성(上ノ郷城) 성주 우도노 나가테루(鵜殿長照)의 2명의 아이와 오다이노가타(於大の方)의 차남 겐자부로(源三郎: 후의 마츠다이라 야스모토)와의 인질교환에 의해 슨푸성(駿府城)에서 아이들과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오카자카로 옮겨 이야에스와 드디어 재회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어머니 오다이노가타의 명령에 의해 오카자키성에 들어가는 허락을 못받고 오카자키성 밖에 있는 절에서 유폐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와 바꿔 돌아온데다 쯔끼야마도노는 이마가와의 사람이니 미웠겠지요. 에이로쿠 10년(1567년), 노부야스와 오다 노부나가의 장녀 토쿠히메(徳姫)가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쯔끼야마도는 여전히 성 밖에서 계속 살고 있었습니다. 

 겐키 원년(1570년) 4월 하순, 드디어 쯔끼야마도노는 오카자키 성으로 옮겼습니다. 토쿠히메는 텐쇼 4년(1576년)에 토쿠히메(登久姫)를, 텐쇼 5년(1577년)에는 쿠마히메(熊姫)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토쿠히메가 노부야스의 아들을 낳지 않자 걱정이 된 쯔끼야마도노는 다케다 가문의 가신의 딸의 시녀를 데려와 노부야스의 측실로 맞이했습니다. 



 덴쇼 7년(1579년), 토쿠히메는 쯔끼야마도노가 자신을 노부야스에게 모함한 일, 츠키야마와 중국인 의사 겐쿄(減敬)와의 밀통, 다케다 가문과의 내통 등 12개조 탄핵문을 노부나가에게 보내는데, 이 일로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의 할복을 명령합니다.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쯔끼야마도노는 노나카 시게마사(野中重政)에 의해 암살 당하고, 노부야스는 후타마타성(二俣城)에서 할복을 합니다. 하지만 위의 12개조 탄핵문은 후대의 창작이라는 설도 있어, 일련의 사건이 도쿠가와가 내의 갈등의 표출이아니었나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아무튼 후에 천하를 쥐는 도쿠가와 이야에스의 부인인데도, 성 밖에서 쓸쓸이 살다 들어오자마자 도쿠히메와의 고부갈등으로 목숨을 잃고 마니 불쌍하기 그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