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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교육에 힘쓴 어머니 타치하라 나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교육에 힘쓴 어머니 타치하라 나미 타치하라 나미(立原なみ)는 타치하라 쓰나시게(立原綱重)의 딸이며 야마나카 미츠유키(山中満幸)의 정실로, 가히 아마고 10용사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야마나카 시카노스케 유키모리(山中鹿介幸盛)의 어머니입니다. 한국 어머니들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극성인 어머니들도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일본 전국시대에 한국 어머니에 결코 지지 않을만큼 교육에 열성인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나미입니다. 그녀는 자식을 기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해 사카노스케의 양육에 모든 힘을 기울여 자신이 맛없는 것을 먹고, 좋지 않을 것을 입을지라도 아들인 사카노스케에는 좋은 것들을 주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엄격할 때는 엄격했습니다. 자식들이 학문을 익히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아케치 미쓰히데를 내조한, 쯔마키 히로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아케치 미쓰히데를 내조한, 쯔마키 히로코 쯔마키 히로코(明智熙子)는 쯔마키 히로타다(妻木広忠)의 딸로, 아케치 미쓰히데의 두 번째 아내입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로 유명했으나 결혼 전에 천연두에 걸려 얼굴이 곰보자국이 남게 됩니다. 이에 그녀는 결혼을 단념하려 하고 자신과 닮은 여동생을 미쓰히데에게 보내나, 미쓰히데는 이를 간파하고 그녀에게 당신의 얼굴이 아닌 마음을 보았다고 하며 결혼을 요청합니다. 사실 이런 일화는 타카하시 쇼운이나 킷카와 모토하루에게도 있어 실제가 아니고 그냥 인물의 인품을 나타내는 만들어진 일화 정도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얼마후 아케치성(明智城)은 적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어, 미쓰히데는 료닌(浪人: 방황무사)이 되고맙니다. 그러자 히로코는 궁핍해진 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신앙을 끝까지 관철한 여인, 호소카와 가라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신앙을 끝까지 관철한 여인, 호소카와 가라샤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는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딸로,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忠興)의 정실입니다. 그녀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삼녀로 덴쇼 6년(1578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권유로 호소카와 타다오키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남편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혼노지의 변이후 어쩔 수 없이 역적의 딸인 그녀를 탄고의 미토노(味土野)에 유폐하게 됩니다. 이때 그녀를 지지해 준 것은 시녀들과 키요하라 마리아(清原マリア)였습니다. 덴쇼 12년(1584년) 히데요시가 용서해 그녀는 다시 호소카와가로 돌아옵니다. 그전까지 그녀는 불교를 믿었지만, 남편이 다도를 배운 '센노리큐(千利休)'의 동문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이 자주 놀러와 타다오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전국시대의 요부 혹은 오명, 센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전국시대의 요부 혹은 오명, 센히메 센히메(千姫)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로 7세의 어린나이로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시집갑니다. 센히메의 모친은 아자이 세 자매의 막내, 고우로 히데요리의 어머니인 챠챠의 동생이라, 센히메와 히데요리는 사촌남매지간입니다. 당시에 사촌남매지간의 결혼이 터부시된것은 아니었지만, 센히메의 나이를 볼 때 인질로 간 측면이 강하지요. 게이쵸 19년 (1615년) 도쿠가와가와 히데요시가의 전투인 오사카 여름의 전투가 발발해 그녀는 위기에 빠지나, 구출되어 부친인 2대 쇼군 히데타다에게로 돌려보내 집니다. 이때 도쿠가와측은 센히메를 구출해 내는 자에게 가문을 일으켜세워주고, 센히메를 아내로 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결사의 각오로 센히메를 구출한 것이 사카자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우에스기가를 이끈 내조의 여왕,오센노가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우에스기가를 이끈 내조의 여왕,오센노가타 오센노가타(お船の方)는 나오에 카케쯔나(直江景綱)의 딸로 나오에 노부츠나(直江信綱), 히구치 카네츠구( 樋口兼 続)의 아내입니다. 코우지 3년(1557년) 우에스기 겐신의 중신인 나오에 카케쯔나의 딸로 태어납니다.나오에가에는 아들이 없었기에 데릴사위로 노부츠나를 들입니다. 노부츠나는 가독을 상속해 나오에가를 이끕니다만, 우에스기 겐신이 죽고 일어난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란)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맙니다. 오타테의 란에서 승리한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그녀에게 자신의 오른팔 히구치 카네츠구와 결혼하라 명합니다. 그리고 카네츠구는 오센노가타의 내조에 힘입어 거의 우에스기가의 정치의 전권을 맡게 됩니다. 「토다이키(当代記)」에는, 그녀를 '別而馳..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시대의 흐름에 삼켜진 고우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시대의 흐름에 삼켜진 고우히메 고우히메(豪姫)는 마에다 퇴이에의 딸로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딸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원래 마에다 토시이에의 딸입니다. 그러나 마에다가와 도요토미가는 고류가 깊어, 히데요시는 그녀를 자신의 딸로 들입니다. 히데요시는 그녀를 매우 아껴 화려한 소녀시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역시 히데요시가 양자로 들여 키우던 우키다 나오이에의 아들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소꿉친구로 함께 컸다고 합니다. 그리 해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결혼을 해 2남 2녀를 둡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았을 때 출산휴유증으로 병을 얻어 생사를 모를 지경으로 몸이 약했는데, 이때 히데요시가 죽고 맙니다. 이로 인해 그는 큰 충격을 받았지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미인박명, 코마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미인박명, 코마히메 코마히메(駒姫)는 모가미 요시아키(最上義光)의 딸로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측실입니다. 오이마노카타(お伊万の方)라고도 합니다.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중 하구로 전투에서 모리 나가요시는 대패합니다. 그는 설욕을 다짐해 이번에는 이야에스의 본거지인 하마마츠성을 기습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에 히데요시는 망설이데 허가하고, 최후미에 자신의 조카 히데츠구를 보냅니다. 그냥 전투 경험을 쌓게 해 주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 기습을 눈치챈 도쿠가와군의 공격으로 히데츠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하시바군은 대패합니다.(나가쿠데 전투) 후에 그는 아자이 세 자매중 첫째 챠챠가 낳은 히데츠구가 후계자가 되자, 한때 후계자로 지명받았던 히데츠구는 찬밥 신세가 되고 할복을 명받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내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코우노마에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내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코우노마에 코우노마에(香の前)는 타카다 지로자에몬(高田次 郎左衛門)의 딸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었으나 내기의 댓가로 다테 마사무네에게 넘어갑니다. 그녀는 18세의 나이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어 오타네도노(お種殿)라 불립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크게 바뀌게 됩니다. 어느날 다테 마사무네와 히데요시가 바둑을 두기 시작합니다. 히데요시는 타이코바둑(太閤碁)이라 불리는 독특한 방법으로 바둑을 두었는데 이것이 매우 효과적이여서 적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사무네에게 내기를 제안했지요. 마사무네는 히데요시의 바둑을 두는 방법을 알았기에 자신의 목을 걸겠다고 합니다. 이에 히데요시는 자신은 천하인이니 목을 걸수는 없고 때마침 그의 곁에 있던 오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오오우치 격퇴하나, 외로움에 지다 오오호우리 츠루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오오우치 격퇴하나, 외로움에 지다 오오호우리 츠루히메 오오호우리 츠루히메(大祝鶴姫: 이하 츠루히메)는 이요국 오오야마즈미신사(大山祇神社)의 신관 오오호우리 야스모치(大祝安用)의 딸입니다. 전국시대가 되자, 스오우의 오오우치 가문이 츄코쿠나 큐슈에서 세력을 확대해, 세토내해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요국에 있던것이 오오호우리 가문입니다. 오오호우리 가문은 신관직이기에 전장에 나서는 일은 없었으나, 전쟁이 일단 일어나면 일족을 진다이(陣代: 주군을 대신해서 적진을 향해가는 사람)로 파견하곤 했습니다. 텐몬 3년(1534년)에는 오오우치의 침공을 그녀의 오빠인 야스오쿠가 막기도 했습니다. 아기 때부터 용모가 아름답고 늠름했던 츠루히메는 어릴적부터 무술에 흥미를 보이며 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모리의 대군을 눈앞에 두고 당당했던, 츠루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모리의 대군을 눈앞에 두고 당당했던, 츠루히메 츠루히메(鶴姫)는 우에노성 성주 우에노 타카노리(上野高 徳)의 정실입니다. 덴쇼 3년(1575년), 모리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우에노 다카노리(上野隆徳)가 지키는 비젠 츠네야마 성(備前常山城)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우에노 다카노리의 주군인 미무라 모토치카(三村元親)는 오다 노부나가의 꾀임에 넘어가 모리가를 배반했지요. 이에 모리의 대군이 모토치카를 넘어뜨리고, 이번에는 다카노리를 향해 갑니다. 마츠야마성이 점령될 무렵에는 이미 츠네야마성도 풍전 등화의 상태였습니다. 마츠야마성 점령 한 달 후에 대군에 포위되어 패배를 직감한 우에노 다카노리는 일족을 모아 마지막 주연을 열고, 일동에게 할복의 의지를 고했습니다. 그러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