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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오오우치 격퇴하나, 외로움에 지다 오오호우리 츠루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오오우치 격퇴하나, 외로움에 지다 오오호우리 츠루히메



오오호우리 츠루히메(大祝鶴姫: 이하 츠루히메)는 이요국 오오야마즈미신사(大山祇神社)의 신관 오오호우리 야스모치(大祝安用)의 딸입니다.



오오호우리 츠루히메



전국시대가 되자, 스오우의 오오우치 가문이 츄코쿠나 큐에서 세력을 확대해, 세토내해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요국에 있던것이 오오호우리 가문입니다. 오오호우리 가문은 신관직이기에 전장에 나서는 일은 없었으나, 전쟁이 일단 일어나면 일족을 진다이(陣代: 주군을 대신해서 적진을 향해가는 사람)로 파견하곤 했습니다. 텐몬 3년(1534년)에는 오오우치의 침공을 그녀의 오빠인 야스오쿠가 막기도 했습니다.


아기 때부터 용모가 아름답고 늠름했던 츠루히메는 어릴적부터 무술에 흥미를 보이며 비범한 재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병법에도 밝아, 사람들은 그녀를 '미시마다이묘진(三島大明神)'이 낳은 아이라 불렀습니다.


 텐몬 10년(1541년)에 또다시 오오우치 시라이 후사타네(白井房胤)가 침공하자, 신관이 된 형 야스오쿠를 대신해 야스후사가 진다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분전으로 오오우치군을 철퇴시키기는 했지만, 야스후사는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해 10월에 또다시 오오우치가 침공하자, 야스후사를 대신해 이번에는 16세의 츠루히메가 진다이로서 출진해 싸워 오오우치의 무장 코하라 타카코토(小原隆言)를 죽이고 군세를 격퇴했습니다. 16세의 처자가 전장에서 이런 혁혁한 공을 세우다니 믿기 힘드네요. 그녀는 적진에 소리치며 뛰어들었습니다.


'미시마다이묘진'의 신탁(神託)이 내려졌다! 전군은 나를 따르라!


게기다 츠루히메는 밤이 되자 기생로 변장해 적진영으로 숨어들어가, 미인계로 적장을 한 사람씩 처리해 버려 적군을 퇴각시킵니다.


 텐몬 12년(1543년) 6월, 2번이나 패배한 것에 화가 치민 오우치 요시타카(大内義隆)는 스에타카후사(陶隆房)의 수군을 이곳에 파견합니다. 이 대군에 오오호우리 가문의 군세와 동맹군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차례로 패퇴합니다. 츠루히메는 살아 남은 병력을 집결시켜 최후의 반격을 행해 마지막 반격을 실시해 오오우치군을 격퇴합니다. 사실 그녀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때마침 불어오는 태풍도 한 몫했습니다.


 하지만 격퇴당해 도망치는 오오우치군을 바라본 츠루히메는 전쟁에서 죽은 오라버니나 애인을 그리워 하여 18세의 나이로 자결했다고 합니다. 작은 배를 타고 태풍으로 나아갔다고 하네요.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사세구를 남겼습니다.


わが恋は 三島の浦の うつせ貝 むなしくなりて 名をぞわづらふ

내 사랑은 미시마의 항구의 빈 조개 형체도 없어져가니 이름을 붙여주오


츠루히메가 착용했다고 여겨지는 도우마루가 오오야마즈미신사에 남아있습니다. 현전하는 유일한 여성용 도우마루라고 합니다. 또, 츠루히메의 일생을 기리는 츠루히메 마쯔리가 매년 행해진다고 하네요.



그녀를 기리는 축제



우에노성 성주 우에노 타카노리의 정실인 츠루히메(츠루히메)도 모리의 대군 앞에서 당당히 저항했던 것을 보면, 츠루히메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언가 힘이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녀들은 학(鶴)처럼 고고하게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