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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겐키 3년(1572년) 승리한 다케다 신겐이 수급을 확인했습니다. 미카타가와라 전투가(미카타가와라) 끝난 다음날, 신겐은 죽인 무장의 확인을 실시합니다. 그 중에는, 이에야스와 동맹 관계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원군 히라테 히로히데(平手汎秀)의 목도 있었습니다. 그는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 스승역)인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의 삼남(손자라고 하는 설도 있음)입니다. 마사히데는 젊은 날의 노부나가가가 기발한 패션을 하고, 양아치들의 리더가 되고, 날뛰어 오와리의 망나니로 불리고 있었을 무렵,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노부나가에 호소한 인물입니다.(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노부나가가 정말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기에, 자신에게..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끝난 밤에, 도쿠가와의 군세가 다케다의 진지에 야습을 시도했습니다.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에(미카타가와라) 승리한 다케다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망간 하마마츠성의 북쪽으로 1 km정도 떠러진 곳에 있는 사이가카게(犀ヶ崖)의 북측에 포진 합니다. 심야가 되자, 이에야스 부하 아마노 야스카게(天野康景)와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 등이 패전을 만회 하려고 야습을 걸치는 작전을 세웁니다. 16정의 총과 약 100명의 군사를 거느려 은밀하게 지름길로 이동하는 데다가, 눈이 올 듯해 어둑어둑한 밤이고, 적은 지리를 이야에스군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야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겐키 3년(1572년) 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로 최대 패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있었습니다. 4만 5천의 대군을 인솔해 가이를 출발, 교토를 향해 서쪽으로 나아가는 다케다의 앞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는 하마마츠성이 가로막습니다. 군사의 수가 훨씬 뒤떨어지는 이에야스는 농성 작전을 취해, 쳐들어 오는 다케다군에 대비합니다. 하지만 다케다군은 이에야스를 무시해 하마마츠 성벽아래를 그냥 지나치려고 합니다.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야에스지만 이때는 아직 혈기를 가진 젊은이었지요. 이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며 가신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채, 미카타가와라에 진군합니다. 이에야스가 인솔하는 도쿠가와군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침공한 다케다 신겐의 별동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타마타오성을 포위했습니다. 히토고토자카 전투(히토고토자카)를 펼친 다케다 신겐의 본대와 이누이성(犬居城)으로 움직인 별동대가, 하마마츠성(浜松城)의 북동에 위치하는 후타마타오(二俣尾城)성을 포위했습니다. 성을 지키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부하 나카네 마사테루(中根正照)와 아오키 사다하루(青木貞治), 마츠다이라 야스야스(松平康安)였습니다. 공격하는 다케다측은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를 주력으로 한 부대였지요. 후타마타오성은, 텐류우강과 후타마타오강에 둘러싸인 대지 위에 쌓아 올린 천연의 요충지에 위치한 성이라 공격하기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일본 전국시대;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진출해 온 다케다 신겐과 그것을 맞아 싸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이에 미카타가와라 전투의 전초전인 히토코토자카 전투(一言坂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상경한 뒤 노부나가와 사아가 험악해진 요시아키가 가장 의지한 것은 전국 최강이라 구가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었습니다. 결국 겐키 3년(1572년) 본거지 쯔즈지가사키관(躑躅ヶ崎)에서 출진한 신겐은 호조 우지마사의 원군 2,000을 포함한 약 2만 5,000의 대군세를 3개로 나누어 각각 다른 루트로 침공합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인솔하는 5,000의 군세는 시나노의 이이다 방면에서 미카와로 남하해 오쿠미카와(奥三河)에 침공하고, 이에야스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오미의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과 싸운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 아네가와 전투입니다. 오다니성(小谷城)은 험한 산 위에 있어 포위가 힘든데다 아사쿠라 요시아키의 명령을 받은 아사쿠라의 중신 아사쿠라 카게아키라(朝倉景鏡)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을 공격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노부나가는 어떻게든 오다니 성내의 군사를 꾀어내 평지에서 전투를 벌이려 합니다. 우선은 노부나가는 오다니성의 남쪽에 있는 요코타성(横田城)을 포위합니다. 오다니성은 험준한 산위에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물자의 운반이 쉽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통의 요소에 있는 요코타성을 잃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도쿠카와 이야에스의 미카와 잇코우잇키 진압 일본 전국시대; 도쿠카와 이야에스의 미카와 잇코우잇키 진압 에이로쿠 6년(1563년) 미카와 잇코우 잇키에 참가하고 있던 나츠메 요시노부(夏目吉信)가 이에야스 측에 투항한 것을 계기로 이에야스는 잇코우 잇키를 평정하려 나섭니다. 미카와 잇코우 잇키라고 하는 것은, 당시 , 조동종(曹洞宗)의 세력이 강했던 미카와 동부를 제외한 지역에서, 혼쇼지(本證寺)의 소라세이(空誓)를 중심으로 영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저항한 약 반년간의 잇코우잇키입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 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에노미야지(上宮寺)의 경내에 토쿠가와의 분사를 마음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과(이 설이 정설입니다) 혼쇼지에 도망친 건달을 도쿠가와의 가신이 허락을 받지 않고 포획 했기 때문에이라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아무튼 도쿠가와측..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오케하자마 전투로 당시 천하에 제일 가까웠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어이없이 전사해 한 때의 양아치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단번에 전국시대의 무대 전면에 뛰어 오릅니다. 그리고 이 오케하자마의 전투에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3년간의 인질 생활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겐신등이 그랬듯이 알기 쉽게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오다카성, 나루미성은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었습니다. 한때는 오다가의 성들이었지만 나루미 성주 야마구치 노리쯔구(山口教継)는 자신 성 뿐만아니라 오다카성도 점령해 아마가와가에 투항합니다. 이 성들을 되찾기 위해 츠케시로를 지은 오다측에 요시모토의 선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연표; 히데요시와 이야에스, 무로마치 후기 모모야마 시대 일본 전국시대 연표; 히데요시와 이야에스, 무로마치 후기 모모야마 시대 이전시대: 오다노부나가의 무대, 무로마치 후기 아즈치 시대 혼노지의 변으로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히데요시가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른 것에서 부터 도쿠가와 이야에스가 에도 막부를 세워 전국시대를 종식시킬 때 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분로쿠, 게이쵸의 역'이라 부르는 임진왜란은 다들 잘 아실거라 생각해 서술하지 않으려 합니다. 연호 년도 일자 사건 덴쇼 1586년 12월 19일 히데요시,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르다 1587년 3월 8일 츠루사키성 공방전(2) 묘우린니의 츠루사키성 탈환 4월 17일 시마즈 요시히사 배수의 진 타카성,네지로자카 전투 6월 19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크리..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도쿠가와 이야에스, 에도성에 들어가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도쿠가와 이야에스, 에도성에 들어가다 덴쇼 18년(1590년) 8월 1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갔습니다. 8월 초하루를 핫사쿠(八朔)라고 합니다. 이 날, 농가에서는 새로운 곡물을 거둔 것을 축하하는 '타노미노 셋쿠(田実の節句)'라고 하는 행사를 합니다. 이 축하의 기원은,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제일 오래된 설은, 죠큐의 란(承久の乱) 후의 고사가덴노(後嵯峨天皇)가 덴노가 되기 전의 불우하던 시절에, 가신이 타네지쯔(田実: 벼)를 헌상 해 위로한 것을 즉위 후에 항례의 행사로 했다고 하는 것 입니다. 아무튼 가마쿠라 시대의 후기부터, 무가의 사회에서도 이 풍습이 받아들여져 8월 1일을 축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에도시대에서 부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간 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