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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의 실책? 오다와라성 논공행상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히데요시의 실책? 오다와라성 논공행상 덴쇼 18년(1590년) 7월 13일, 오다와라 성에 입성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와라 정벌에 대한 논공행상을 했습니다. 논공행상이란 공훈에 따라 상을 주는 일 입니다. 즉, 오다와라 정벌에 의해 멸망 한 호조 가문의 영지(호조 멸망)를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에게 새 영지를 줄 것인지 등이 논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토카이(미카와, 시나노, 가이, 도토미, 스루가 등)에 대신해, 원래 호조의 영지였던 관동 일대, 이른바 간핫슈(関八州: 관동 팔주)가 주어집니다. 물론, 이 은상을 마음 속에서야 오히려 벌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도, 은상은 즉 명령이므로 거부하는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 때, 이에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와라성 공방전(1) 공성의 대가 히데요시와 최강의 오다와라성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와라성 공방전(1)공성의 대가 히데요시와 최강의 오다와라성 덴쇼 18년(1590년) 4월 3일, 오다와라에 도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라성 포위의 태세를 정돈했습니다.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천하 통일을 진행시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덴쇼 13년(1585년)에는 시코쿠를 평정 해(모토치카 항복), 덴쇼 14년부터 15년에 걸쳐 큐슈를 평정 해(요시히사 항복), 그 사이에 에치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와도 주종 관계를 묶어(우에스기 카게카쓰 상경)는 이제 관동의 호조를 공격합니다. 아시가라성(小田原城), 야마나카성, 니라야마성(韮山城)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돌파한 히데요시는 우에스기, 마에다의 호쿠리쿠 군세에게는 관동 각지의 호조의 성을 공격하게 하고, 스스로는 본대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 난공불락의 야마나카성 함락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 난공불락의 야마나카성 함락 덴쇼 18년(1590년) 3월 29일, 하시바 히데츠구(羽柴秀次)군이 야마나카성(山中城)을, 오다 노부오(織田信雄)군이 니라야마성(韮山城)을 공격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이 개시되었습니다.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천하 통일을 진행시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덴쇼 13년(1585년)에는 시코쿠를 평정 해(모토치카 항복), 덴쇼 14년부터 15년에 걸쳐 큐슈를 평정 해(요시히사 항복), 그 사이에 에치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와도 주종 관계를 묶어(우에스기 카게카쓰 상경), 덴쇼 14년의 11월 4일부로 '관동총무사령'을, 다음해의12월 3일부로 '오량국총무사령'을 반포합니다. 이 '총무사령'이란, '다이묘끼리 사적..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와라 정벌 개시, 히데요시의 군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와라 정벌 개시, 히데요시의 군의 덴쇼(연호) 17년(1589년) 12월 10일, 교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쥬라쿠(聚楽)에서, 호조의 오다와라성 공격의 군의를 열었습니다. 시코쿠, 큐슈를 평정 해 관백에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남은 것은 관동과 토호쿠였습니다. 토호쿠에서는, 요네자와(米沢城)성의 다테 마사무네와 야마가타성(山形城)의 모가미 요시아키(最上義光)의 두 세력이 있었지만, 관동은 호조 소운 이래 100년에 걸쳐 군림해 온 호조가 당당히 실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호조는 호조 우지나오가 다이묘직에 있긴 했었지만, 실권은 아직 아버지인 우지마사가 잡고 있었고, 히데요시에게는 약간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토호쿠의 다테와 미카와의 도쿠가와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와라 정벌의 서막, 호조의 나구루미성 탈취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와라 정벌의 서막, 호조의 나구루미성 탈취 덴쇼 17년(1589년) 10월 23일, 호조 우지나오(北条氏直)의 가신으로 누마타성(沼田城)을 맡는 이노마타 쿠니노리(猪俣邦憲)가 사나다의 나구루미성(名胡桃城)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원래 가이의 다케다의 가신이었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는 덴모쿠산에서 다케다 가쓰요리가 할복(다케다가 멸망하다) 해 다케다가 멸망 한 후, 다케다의 옛 영토는 승자인 오다 노부나가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해 오다의 가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가 불과 3개월 후의 덴쇼 10년 6월에, 혼노지에서 쓰러져 버립니다.(혼노지의 변) 그로 인해 구 다케다령은 눈 깜짝할 사이에 미카와의 도쿠가와,사가미의 호조, 에치고의 우에스기 3강의 표적이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우에스기의 전국 굴지의 금광 사도섬 공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우에스기의 전국 굴지의 금광 사도섬 공략 덴쇼 17년(1589년) 6월 12일, 에치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사도(佐渡)에 건너가, 가와하라다성(河原田城)을 공격해 성주 혼마 타카토(本間高統)이 할복 했습니다. 사도는 일본에서 최대급의 금의 산지입니다. 사도의 금산(佐渡金山)의 대명사인 아이카와 카나야마(相川金山)는, 게이쵸 6년(1601년)에 발견된 것으로, 오늘의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츄고쿠의 패자가 된 모리의 첫 번째 발걸음이 모리와 아마고의 은광 쟁탈전이었던 것처럼, 금광은 누구던지 손에 넣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도섬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사도 수호대인 혼마 가문이 통치하는 섬으로 우에스기 겐신의 시대에는, 카나보리(광부)들을 보내는 등 관계를 쌓아 올리고 있었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데루모토의 히로시마성 축성시작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모리 데루모토의 히로시마성 축성시작 덴쇼 17년(1589년) 4월 15일, 모리 데루모토가 히로시마성의 축성에 착수했습니다. 선대 모리 모토나리의 '화살 세 대의 가르침(三矢の教え)으로 유명한 아키의 전국 다이묘 모리 가문. 그 모토나리가 아마고 가문의 일개 고쿠진이었을 무렵으로부터, 산요, 산인에 일대 세력을 자랑하는 대영주가 되고, 그 손자 데루모토가 뒤를 이은 때까지, 모리의 본거지는 쭉 코오리야마성(郡山城)이었습니다. 코오리야마성은 산간에 만들어진 산성으로, 그 지형을 살려 난공불락이라고 구가해진 견고한 성입니다. 모토나리가 아마고 가문에서 독립하는 계기나 된 아키산성 공방전에서도 오오우치의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4개월간, 아마고의 총원 3만이라고 하는 대군을, 불과 8천으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히데요시,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르다 덴쇼14년(1586년) 12월 19일, 전년에 관백이 된 하시바 히데요시가 태정관을 제수받으며,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의 성을 받았습니다. 히데요시의 정확한 이름은 직위까지 늘어놓은 '우시관백태정대신풍신조신수길(羽柴関白太政大臣豊臣朝臣秀吉)'이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명은, 전국 무장중에서도 삼걸이라 불리는 유명인입니다. 전국시대는 몰라도 위의 세 사람의 이름은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이름중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이름은 다른 두 명의 이름과 조금 다릅니다. 사실 저렇게 이름을 나열하는 것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으니, 바로 '조정에서 성을 받는다'라는 것 때문입니다. 조정..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평균신장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평균신장은? 보통 일본인들은 키가 작다고 생각하는데요, 전국시대는 영양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키가 더 작았습니다. 약 160cm가 남성의 평균 신장이었습니다. 그외에 유명 무장들의 신장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마에다 토시이에 182 cm 아자이 나가마사 180 cm남짓 혼다 다다카쓰 140 cm 이시다 미쓰나리 156 cm 오다 노부나가 162 cm 도요토미 히데요시 150 cm 우에스기 겐신 156~160 cm 도쿠가와 이에야스 159 cm(혹은156 cm) 다테 마사무네 159.4 cm 다케다 신겐 162 cm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전국시대가 뭔가 땅꼬마들의 전투같아서 재밌습니다만, 당시에는 표준이었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닌자 인물편; 이야에스의 초반기를 도운 닌자, 우카이 마고로쿠 일본 전국시대 닌자 인물편;이야에스의 초반기를 도운 닌자, 우카이 마고로쿠 우카이 마고로쿠(鵜飼孫六)는 전국시대의 코우가닌자 입니다.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사하자, 마츠다이라 모토야스(후의 도쿠가와 이야에스)는 오카자키성(岡崎城)을 탈환해, 미카와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세력은 미약해, 자신과 같이 이마가와에 반감을 가진 니렌기성(仁連木城)의 성주 토다 시게사다(戸田重貞)에게 코우가에 원군을 요청했다. 코우가 닌자인 토다 시게사다는 이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이마가와의 성인 카미노고우성(上ノ郷城)에 잠입했습니다. 200명의 코가 닌자대를 지휘해 성내를 교란시켜, 나가모치는 도주했고 성은 이 혼란으로 인해 점령당하고 맙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