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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 도요토미의 성을 받고 태정관에 오르다



 덴쇼14년(1586년) 12월 19일, 전년에 관백이 된  하시바 히데요시가 태정관을 제수받으며,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의 성을 받았습니다. 히데요시의 정확한 이름은 직위까지 늘어놓은 '우시관백태정대신풍신조신수길(羽柴関白太政大臣豊臣朝臣秀吉)'이었습니다.



태정관이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명은, 전국 무장중에서도 삼걸이라 불리는 유명인입니다. 전국시대는 몰라도 위의 세 사람의 이름은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이름중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이름은 다른 두 명의 이름과 조금 다릅니다. 사실 저렇게 이름을 나열하는 것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으니, 바로 '조정에서 성을 받는다'라는 것 때문입니다.

 

 조정에서 성을 내리는 것은 '혼카바네(本姓)'라고 해서, 조정에서 직접 내려야 하기에 아무나 자칭할 수 없었습니다. 보통 일부다처였기에 지나치게 증가한 천황가의 황태자나 황녀에게 성을 주어 신민인 신분으로 강하시키는것과  덴노가문의 신하이다고 하는 의미의 '오미(臣)'의 성 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성이라고 하는 것은, ~일족이라고 하는 의미로, 문벌이라는 느낌의 이름입니다. 이렇게 조정에서 받은 성은 성과 이름의 중간에 'の(~의)'를 넣는 것이 맞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도요토미노 히데요시 라고 읽어야 옳은 것입니다. 즉, 이렇게 보면 단순히 지역의 가문을 자칭하는 '오다'나 '도쿠가와'보다는 격이 높은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오다의 뿌리야 '후지와라'라는 가문이고, 도쿠가와 역시 미나모토의 자손이라고 하긴 합니다만.


 만약, 바뀐 성이 아닌, 원래 가문의 성을 자칭한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타이라노 노부나가(平信長)'가 되고, 도쿠가와 이야에스는 '미나모토노 이야에스(源家康)'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농민 출신인 히데요시는 키노시타 히데요시가 되지요. 이런 자신의 출자에 대해 히데요시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습니다. 전통을 무시하기로 유명한 노부나가마저 '타이라노 노부나가'를 자칭하는 마당에, 평민인 히데요시는 큰 열등감을 느켰을 것입니다.



시골청년에서 최고권력자로..



 히데요시의 아명인 히요시마루(日吉丸)로, 그가 텐분 5년(1536년) 1월 1일 생으로, 히요시텐오우사(日吉山王社)에서 원숭이와 관련이 있었기에, '원숭이'라고 불렸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창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고, 실제로는 텐분 6년 2월 9일 태생이라는 것이 유력합니다. 게다가 아명의 '마루(丸)' 는 당시 무가에서만 사용하던 것이지요. 히데요시가 붙일리가 없습니다. 아무튼 노부나가를 시중들게 된 이후로는 '키노시타 도키치로(木下藤吉郎)'라 자칭합니다. 덴쇼 2년(1574년)에는 시바타 가쓰이에(田勝家)와 니와 나가히데(長秀)의 성에서 한글자씩을 취해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라 자칭합니다. 하지만 그의 언행을 보면 이때까지는 별로 출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 덴쇼 10년(1582년)에 야마자키의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려, 천하가 손에 닿는 무렵이 되면, 그는 지금까지와는 달라집니다. 노부나가를 토벌한 미쓰히데를 토벌한 일로, 자신이 노부나가의 계승자라 주장해 노부나가가 자칭하고 있던 '타이라(平)'를 자칭해 '타이라노 히데요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대로 주위의 무사들에게 백안시 되는 결과가 낳아 버립니다. 오다나 도쿠가와 처럼 그래도 잘 찾아보면 선조인 것과는 다르게 완전히 제멋대로 성을 취한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그는 이미 영락한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의 조카로 들어가려 합니다. 허나 요시아키에게 남은 것은 자존심뿐, 그는 무시해 버리지요.


최고 권력자이지만 가문이..

 덴쇼 13년(1585년), 관백이 된 히데요시는, 이제 더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원래 관백직은 대대로 후지와라의 혈통이 이어야만 하는데도, 그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로 반 강제적으로 관백직을 취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데요시는 일부러 후지와라의 혈통을 받는 코노에(近衛)가의 양자가 되어 '후지와라노 히데요시' 자칭해, 주위를 납득 시키려고 합니다. 게다가 '히데요시의 조부와 조모가, 옛날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을 무렵, 모함을 받아 유죄가 되어 버려 궁중을 떠난 순간 함께 벼슬살이를 하던 딸(히데요시의 어머니)이, 사내 아이(히데요시)를 낳았다' 며 자신이 덴노의 아이라던가, '어머니는, 태양이 뱃속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임신했다'는 것으로, 자신은 해의 아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립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해도 히데요시가 무사도 아니고, 하물며 귀족도 아닌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하를 잡아도, '사의 핏줄'이 아닌 히데요시는 주위의 경멸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 히데요시의 최종 수단이, '도요토미'라고 하는 성입니다. '후지와라' 같은 성도, 큰 공에 의해 덴노가 직접 내려준 성이었기에, 자신 역시 새로운 성을 받으려고 한 것이지요. 이로서 명분이야 그러한 위인들과 같게 되어 새로운 가문을 만들어낸 히데요시 였습니다만, 그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콤플렉스까지 이길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