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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츠루사키성 공방전 묘우린니의 대활약

일본 전국시대;

츠루사키성 공방전

여성 영주, 묘우린니의 대활약



 덴쇼14년(1586년) 12월 12일, 시마즈의 대군의 공격을 받은 오오토모의 츠루사키성(鶴崎城)을 성주 대리였던 묘우린니(妙林尼)가 사수했습니다.



츠루사키성 성터



 덴쇼 13년(1585년)의 3월~4월에는 기슈(기슈정벌)를, 6월~7월에는 시코쿠(쵸쇼카베 모토치카, 히데요시에 항복)를 평정 해, 순조롭게 천하 통일에의 길을 걷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지만 아직 큐슈에는 세력을 뻗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 해의 오키타와테 전투의 류조지를 물리친(다테나와테 전투) 사츠마의 시마즈가가 큐슈 전 국토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오토모 소린은 히데요시에게 구원요청을 하고, 히데요시는 이를 받아들여 덴쇼 13년(1585년)에 중재를 했었으나 조건이 시마즈에 심각하게 불리했기에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덴쇼 14년(1586년) 7월 드디어 시마즈씨는 본격적으로 치쿠젠 공격에 착수합니다. 14일에는 치쿠젠의 이와야성에 공격이 개시됩니다.(이와야성 공방전)  



당시 전황도



 한편, 소린은 이때 본성인 우스키성(臼杵城)에 군사를 모아 본거지를 사수하고자 합니다. 이에 시마즈는 오오토모의 지성들을 차례로 공략합니다. 이 지성 중 하나인 츠루사키성의 성주는 요시오카 노리마스(吉岡紀増)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시마즈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기에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며 열정적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기에 츠루사키성에 없었습니다. 사실 위에 말한대로 본거지를 지킨다는 것은 이렇게 지성을 버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성에 남은 것은 여성들과 농민들 뿐, 그리고 노리마스의 어머니 묘우린니였습니다. 그녀는 여기서 놀랄만한 활약을 펼칩니만, 사실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오오토모 흥망기(大友興廃記)」,「호우사츠군기(豊薩軍記)」등의 전기에만 남아있습을 뿐입니다. 이름도 두가지 이상으로 전해지고, 노리마스의 어머니였다는 설과 할머니였다는 설도 있지요. 아무튼 그녀의 활약을 살펴보겠습니다. 


등축제에 등장한 묘우린니


묘우린니 캐릭터


 위에서 말한대로 군사와 성주가 없는 츠루사키성에 '곧 시마즈의 군이 공격해 온다!'라는 정보가 들어 옵니다. 이에  이와야성과 같이 철저하게 싸우다 전사하는지, 아니면 시원스럽게 성을 포기해 항복할지의 두가지 선택 앞에 놓이게 됩니다. 이 때의 묘우린니는 쇠사슬을 머리띠로 하고, 웃옷 밑에 간편한 방호구를 입은뒤에 위에 겉옷을 입고 나기나타(薙刀를 손에 들어 철저하게 농성할 의지를 보입니다. 먼저 성의 앞에 둘러쳐진 해자 한층 더 깊게 파, 해자와 해자의 사이에 둘러친 목책의 주위에는 함정을 다수 파고 평지로 보이도록 위장 했습니다. 또 남아있는 총을 늘어놓고 준비에 심혈을 기울인 뒤에 적을 기다립니다. 


 그녀의 이런 리더쉽에 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사기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이윽고 11월 하순 약 3,000의 시마즈의 대군이 츠루사키성을 포위합니다. 이들을 인솔하는 것은 이쥬우인 히사노리(伊集院久宣), 노무라 후미쯔나(野村文綱), 시라하마 시게마사(白浜重政) 등의 무장들로 모두 시마즈의 정예였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격전을 거쳐왔기 때문에 츠루사키성의 방비는 우수워보였습니다. 게다가 성주는 부재, 그 어머니(또는 할머니)의 준비니 더욱더 무시하게 되었지요. 어설픈 목책들을 보며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히데요시의 군이 센고쿠 히사히데의 실책으로 토츠키가와에서 대패(토츠기가와 전투)한  덴쇼14년(1586년) 12월 12일, 드디어 시마즈군은 츠루사키성에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작전은 없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됩니다. 평지인 줄 알았던 땅은 함정이어서 겨우 함정에서 기어 오르면 총에 맞아 쓰러져 버렸지요. 아무리 농민이라도 성벽 밑에 있는 병사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패하자, 일단 시마즈군은 퇴각합니다.


 이대로 포기했다가는 자신들의 이름의 실추는 명백, 이번에는 사람의 앞에 소와 말을 달리게 해 구멍을 확인하면서, 서서히 진군하는 작전으로 전환합니다. 하지만 천천히 오는 병사들도 총으로 맞추기 쉬운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이런식으로 무려 16차례나 츠루사키성을 공격했으나, 시마즈의 피해만 커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농성의 포인트는 물자였지요. 츠루사키성의 물자는 갈수록 떨어져 버립니다. 결국 묘우린니는 결단을 내려, 성문을 열고 성을 포기하는 대신에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보장받습니다. 이로 시마즈는 드디어 이 성을 함락시킨 것입니다만, 사실 묘우린니는 히데요시의 도착을 기다려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히데요시마저 극찬하는 작전을 세워 이 성을 탈환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츠루사키성 공방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