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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덴쇼 10년 6월 2일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할복하고 맙니다. 반노부나가 포위망을 찟고, 전국 통일을 눈 앞에 둔 노부나가는 서쪽의 모리를 토벌하기 위해 수도로 돌아가, 6월 4일 출진을 예정하고 선봉으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저번에 썼듯이,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고 맙니다. 혼노지의 변이 왜 일어났는가?(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그리고 그 경과(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에 대해서 썼다면 오늘은 흑막설에 집중해 범인을 찾아 보겠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5월 30일, 교토에서 사카이로 이동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카이의 항구를 유람 하는 등 사카이 관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반달전 이야에스는 아즈치성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멸망의 서곡, 타카마 카미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다케다 멸망의 서곡, 타카마카미성 공방전 덴쇼 9년(158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 부하 오카베 모토노부(岡部元信)가 지키는 토노에(遠江), 타카마 카미성(高天神城)를 점령한 제3차 타카마 카미성 공방전이있었습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하도 심하게 패하여 아버지의 이름값을 못한다는 혹평을 비하지 못하는 다케다 가쓰요리지만, 사실 영지의 크기 자체만 두고 보면 가쓰요리 때가 조금 더 커졌습니다. 물론, 다케다 신겐이 물려준 강대한 군사력과 탄탄한 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겠지만 말이죠. 어쨌든 이런 가쓰요리의 영지 확대의 상징이 도토미와 스루가의 국경에 있는 타카마 카미성이었습니다. 이 성은 원래 오가사와라(小笠原氏)가의 거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안쇼우성 전투 일본 전국시대;안쇼우성 전투 텐몬 18년(1549년)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부하 타이겐 셋사이(太原雪斎)가 미카와 안쇼우성을 공격해 성주 오다 노부히로(織田信広)를 납치한 안쇼우성 전투가 있었습니다. 텐몬9년(1540년),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가 스루가의 이마가와가에 속하고 있던 미카와의 오카자키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広忠)가 지키는 안쇼우성을 빼앗고 나서 오와리와 미카와의 분쟁은 잠잠했습니다. 이때의 노부히데는, 또 하나의 이웃나라인 미노의 사이토도산과 전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텐몬 18년(1549년)하극상의 전국시대답게 마쓰다이라 히로타다가 가신에게 참살된다고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미카와의 마츠다이라의 주군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많이 당황하게 합니다. 이전부터 오다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의 기구한 인생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의 기구한 인생 에이로쿠10년(156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信康)와 오다 노부나가의 딸 토쿠히메(徳姫)가 결혼했습니다. 이들은 고작 9살로, 어린 신랑 신부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정략 결혼을 한 것입니다. 이 다케치요는 이에야스의 정실 쯔키야마도노(築山殿)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 노부야스(信康)입니다. 토쿠히메는, 고도쿠(五徳)라고도 불렸다는데요 우리나라의 발음으로는 '오덕'이 되어버리네요. 그 후 두 사람 모두 18세가 되는 무렵에 장녀가 탄생해 다음 해에는 차녀도 탄생합니다만, 남자 아이가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토쿠히메와의 사이에 남자아이가 태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