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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안쇼우성 전투

일본 전국시대;
안쇼우성 전투


 텐몬 18년(1549년)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부하 타이겐 셋사이(太原雪斎)가 미카와 안쇼우성을 공격해 성주 오다 노부히로(織田信広)를 납치한 안쇼우성 전투가 있었습니다.



안쇼우성(安祥城)



 텐몬9년(1540년),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가 스루가의 이마가와가에 속하고 있던 미카와의 오카자키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広忠)가 지키는 안쇼우성을 빼앗고 나서 오와리와 미카와의 분쟁은 잠잠했습니다. 이때의 노부히데는, 또 하나의 이웃나라인 미노의 사이토도산과 전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텐몬 18년(1549년)하극상의 전국시대답게 마쓰다이라 히로타다가 가신에게 참살된다고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미카와의 마츠다이라의 주군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많이 당황하게 합니다. 이전부터 오다가가 가끔 국경선을 위협해 히로타다는 이마가와가에게 가신으로 들어가 2년전에 장남 타케치요(竹千代)를 인질로 이마가와가로 보냈지만, 도중에 오다가에게 그를 빼앗겨, 타케치요는 이 때 오다의 인질이었습니다.



안쇼우성 위치



 즉, 당주가 없어진 마쓰다이라가가 그 후계인 타케치요를 요구했을 경우 마쓰다이라가가 오다의 산하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되면, 미카와 일국이 전부 오다의 영지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에 위협을 느낀 요시모토는 마쓰다이라를 이마가와의 가신으로 두기 위해서 오다에게 공격을 가하려합니다. 즉시 가신 아사히나 야스요시를 오카자키성으로 보내고 방비를 굳히는 한편, 참모의 타이겐 셋사이를 총대장으로 임명해 노부히데의 아들 오다 노부히로가 성주를 맡고 있던 안쇼우성에 쳐들어갑니다. 텐몬 18년(1549년) 승려인 셋사이는 검게 물들인 법의 위에 갑옷을 입고 스스로가 최전선에 서서 지휘합니다만 오다군의 격렬한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마쓰다이라군의 기둥 혼다 타다시고(本多忠高)를 잃은 뒤, 퇴각합니다.



타이겐 셋사이



 그 후에도 쌍방의 격돌이 있었습니다만 안쇼우성은 쉽게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그해 11월 군세를 정비한 셋사이는  대군을 인솔하고 안쇼우성을 포위한 뒤 총공격을 실시합니다. 이번에는 산노마루(三ノ丸)를 점령해 성의 중심 건물들을 고립시키는 일에 성공합니다. 셋사이는 성주 노부히로를 생포로 하여 오다에 인질이 되고 있는 타케치요와 교환하려 했습니다. 노부히로는 오다의 당주 노부히데의 아들이고 타케치요는 죽은 마쓰다이라의 당주 히로타다의 아들이니 둘의 가치는 비슷했습니다. 성의 중심 건물에 홀로 남겨진 형태가 된 노부히로는 싸움을 단념하고 항복해 이마가와의 인질이 됩니다. 4일 뒤, 오와리 가사데라에서 양자는 인질 교환을 해 돌아온 8세의 타케치요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카자키 성주라고 하는 신분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오카자키성에는 이마가와의 가신이 성주로서 들어가 타케치요는 그대로 슨푸에 보내졌습니다. 어린 타케치요가 오카자키성을 다스렸을 경우, 혼란으로 인해 오다가 쳐들어 올 수 있다 생각한 것이지요.


 결국은, 오다의 인질로부터 이마가와의 인질로 바뀌었을 뿐 타케치요에게 바뀐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것으로 완전하게 미카와는 이마가와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쓰다이라의 가신도 명목상으로는 타케치요가 성주이기 때문에 이마가와에 따를 수 밖에 없었지요. 타케치요는 이 때부터 19세의 운명의 날, 오케하자마 전투까지 인질 생활을 계속하게 됩니다. 오케하자마의 싸움으로, 당주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잃은 사이에 오랜 세월의 인질 생활로부터 해방되는 이 소년은 후에 전국을 지배할,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공교롭게도 이에야스를 오랜 세월의 이마가와의 주박으로부터 구한 사람은 그 날, 인질 교환된 상대 노부히로의 남동생 오다 노부나가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얼마 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