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남만신교의 전파

일본 전국시대;

남만신교의 전파


 텐몬 18년(1549년), 에스파니아의 그리스도교 선교사,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가고시마에 왔습니다. 


 2년전의 1547년, 말레이 반도의 마락카에 체재하고 있던 자비에르에게, 안지로우라고 하는 일본인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고향, 가고시마에서 살인을 범해 도망치고 있던 안지로우는 죄의 무게에 괴로워하다 자비에르에게 구제를 요구했지요. 자비에르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명을 받아 치유된 안지로우였지만, 그이상으로 감명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자비에르 였습니다. 안지로우가 이야기하는 고향 가고시마의 일, 일본인의 일을 들은 자비에르는 마음 먹고 일본에 선교할 결의를 합니다. 



프란시스코 자비엘



 예수회 고스메 데 토레스 신부, 후안 페르난데스 수도사, 마누엘이라고 하는 중국인, 아마도르라고 하는 인도인, 그리고 세례를 받은지 얼마 안된 안지로우등 3명의 일본인과 함께 배에 탑승한 자비에르는 고어를 출발해 일본으로 향합니다. 텐몬 18년(1549년) 가고시마의 사츠마 반도의 보우노츠(坊津)에 상륙했습니다. 일본에 상륙한 뒤, 우선 시마즈 다카히사에게 알현 해 허가를 받은 자비에르는 가고시마에서 크리스트교의 포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히라도나 야마구치에서도 포교 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더듬거린 일본어로, 잘 되지 않았으나, 열심히 공부해 나중에는 선승과 영혼의 불멸에 대해 선문답을 할 정도로 일본어를 했다고 합니다. 자비에르는 장신으로 미남이여서 여성에게도 인기가 많았다네요. 그러나, 이교도에게의 전도는 쉬운 것이 아니라 신자는 생각하는 것처럼 증가하지 않고 체재한 2년간에 약 1500명 정도에게 선교했습니다. 그런데도, 자비에르는 '일본인은, 현재까지 발견된 인민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들이다'라는 당시의 유럽에서 품던 일본의 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높은 평가를 해 줬다고 합니다. 


 당시 남만은 동남아시아를, 서남만은 중국와 아시아 일대를 제외한 지역을 이르는 말로, 일본에서는 그리스도교를 남만신교라고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