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오오토모 후계자 분쟁, 오오토모 2층의 참변
텐몬19년(1550년) 분고(豊後)의 전국 다이묘 오오토모가의 20대 당주 오오토모 요시아키(大友義鑑)의 후계자를 둘러싼 분쟁이 발발했으니, 이것이 '오오토모 2층의 참변(大友二階崩れの変)'입니다.
분고의 전국 다이묘인 오오토모가의 제20대 당주 오오토모 요시아키에게는 정실이 낳은 요시시게(義鎮)라는 21세 장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측실이 낳은 삼남 시오이치마루(塩市丸)을 후계자로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장남 요시시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신을 손으로 때리거나 검술의 연습인데도 상대를 무참히 치는등 천성이 난폭했다는 설, 요시시게가 병약했었기 때문에 당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설, 요시시게의 어머니가 스오우의 명문 오오우치가의 딸이였기 때문에 친가의 강대한 세력의 영향이 너무 커질것 같아 꺼렸다는 설, 측실을 더 좋아했었다는 설, 시오이치마루가 어리지만 총명해서 몹시 사랑했다는 설들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만,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요. 아무튼 후계문제로 고심하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근데 시오이치마루는 세살이라 아무리 총명해도 그걸 이유로 후계를 삼겠다는 설은 좀 그렇네요.
오오토모 소린 동상
역시 언제나 그렇듯이 각각의 아들을 지지하는 가신끼리의 파벌이 나눠지고, 현 당주인 요시아키의 고민이 계속되어 혼란이 오오토모의 땅에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텐몬 19년(1550년) 요시아키는 장남 요시시게를 벳푸 온천에 보내고 그의 부재중에 중신 4명을 차례차례에 오오토모관에 호출합니다. 사이토 하리마 마모루(斉藤播磨守), 코사이 야마토 마모루(小佐井大和守), 츠쿠미 미마사카노카미(津久見美作守), 타구치 쿠란도자(田口蔵人佐)의 4명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요시시게는 각각의 가신에게 살그머니 마음 속을 털어 놓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4명은 맹반대합니다만, 놀랍게도 요시시게는 맹반대한 4명 중 두 명 사이토와 코사이를 베어 버립니다. 남은 두 명 츠쿠미와 타구치는 공포에 떨며 마음속으로 한가지를 결의합니다.
그날 밤, 그들은 관의 2층에서 자고 있던 시오이치환과 그 어머니를 습격합니다. 확실히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오이치환을 츠쿠미가, 그 옆에 있던 측실과 그 딸을 타쿠치가 살해합니다. 게다가 두 명은 요시아키의 방에도 난입하나 요시아키의 측근이 주군을 지키기 위해 칼을 뽑아 어이 없게 두 명은 죽고 맙니다. 하지만 요시아키도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였지요. 벳푸에서 이 소식을 들은 요시시게는 곧바로 후나이로 돌아와, 이미 다 죽어가 말도 못하는 요시아키에게로 향해 '아버지, 저에게 자리를 물려주신다고요!'라고 말한뒤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요시아키는 이틀 후에 사망합니다.
참변이 발생하다
이 소란의 원인을 시오이치환을 지지하던 친족 이리다치 카사네(入田親誠)에 있다고 판단한 요시시게는 가신들에게 이리다치 정벌을 명령합니다. 이에 도망치던 카사네는 신부의 친가인 아소 코레토요(阿蘇惟豊)에게 몸을 의탁하려 하나 코레타요는 오히려 주군에게의 불충을 탓하며 그를 죽입니다. 결국 이 소동은 중신의 두 명(츠쿠미와 타구치)의 주군에 대한 모반으로 정리됩니다. 관의 2층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2층의 참변' 으로 불립니다. 너무 쉽게 정리되었기 때문에 종종 요시시게가 흑막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시시게는 33세 때에 출가해 법호를 소린(宗麟) 으로 칭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바로 전국시대의 일획을 그은 분고의 왕 오오토모 소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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