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일본 전국시대;

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텐몬 19년(1550년) 모리 모토나리가 킷카와 부자를 살해했습니다. 



모리 모토나리



 관서의 대영웅 모리가도 모리 모토나리가 상속했을 무렵은 일개 고쿠진(반사 반농의 재야의 무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북쪽엔 아마고가, 서쪽엔 오오우치가, 남쪽에는 오오토모가의 사이에 낀 약소세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가가 엄청난 대국의 주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모토나리의 모략의 산물입니다. 모토나리는 뛰어난 장수라기 보다는 위대한 참모스타일 이었습니다. 치밀한 정보 활동에서 모략, 계략을 만들어 적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지요. 강대국에 둘러쌓인 약소국의 전략으로선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모토나리가 크게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것은 차남 모토하루(元春)와 삼남 타카카게(隆景), 모토하루가 킷카와(吉川)와 타카카게가 세토(瀬戸)의 수군을 가지는 코바야카와(小早川)에 각각 양자에게 들어가게 해 모토나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양가는 매우 강력한 가문들이었습니다. 사료에 의하면 이 두 개의 양자 결연은 양가에서 '후계가 없기 때문에'라 부탁받아 모토나리가 허용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혈족마저 격렬히 싸우는 전국시대에 그럴리가 없지요. 분명 모토나리의 계략이 숨어있을 겁니다. 



모리와 킷카와, 코바야카와 가문의 거점



 우선, 삼남 타카카게의 코바야카와는 본가의 누타(沼田) 코바야카와와 분가의 타케하라(竹原) 코바야카와의 2가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타케하라 코바야카와의 당주 오키카게(興景)가 병사한 뒤,  그의 후계가 없었기 때문에 텐몬 13년(1544년), 12세의 타카카게가 양자가 되어 후를 잇습니다. 죽은 오키카게의 부인이 모토나리의 조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그 6년 후 본가 누마타 코바야카와의 양자 결연입니다. 이 누마타 코바야카와가의 당주였던 쇼헤이(正平)는, 타카카게가 타케하라를 잇기 1년 전, 오오우치가의 산하가 된 아마고가의 갓산토다성(月山富田城)을 공격하다 전사해 버렸습니다. 이 누마타 코바야카와가에는 시게히라(繁平)라는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게히라는 당주에 어울리지 않다며 텐몬 19년(1550년)에  시게히라는 삭발해 불문에 들어가버리고 타케하라를 잇고 있던 타카카게가 누마타도 잇게 됩니다. 


 시게하라는 시력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이건 핑계에 불과하지요. 그 뒤에는 전 당주를 따르는 가신의 맹반발이 있어서,  그 가신들 모두가 살해당한 양자 결연이었습니다. 이렇게 해 누마타와 타케하라의 양코바야카와가가 하나가 되어 양가를 통괄하는 타카카게이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게다가 그것보다도 한층 더 이상한 것이 츠구오 모토하루와 킷카와가의 양자 결연입니다.  오닌의 난때에는 동군의 호소카와 가쓰모토의 부하로서 참전해 당시의 당주였던 쯔네모토가 '귀신 킷카와'라 칭해질 정도의 대활약을 하고 있었던 킷카와가였지만 이 때의 당주 킷카와 오키쯔네는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아마고가에 붙었다, 오오우치가에 붙었다했습니다. 



시게하라



 누마타 코바야카와의 쇼헤이가 전사한 갓산토다성공격때 오키쯔네가 중요한 국면에서 오오우치에서 아마고로 등을 돌려서 오오우치측에서는 '쇼헤이의 죽음의 원인을 만든 것은 오키쯔네'라고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유부단한 주군에 불만을 가진 가신이 '오키쯔네를 은거시켜 모토하루를 양자로 해 뒤를 이어달라'고 모토나리에 말했다고 합니다. 원래 모리와 킷카와는 혼인관계로 인해 완전히 남은 아니기 때문에 뜬금포는 아니지만, 너무 모토나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오키쯔네에는 센호우시(千法師)라는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 수상하지요. 텐몬 17년(1548년) 모토나리는 모토하루의 양자 결연을 성립시켜, 텐몬19년(1550년)에는 강제적으로 오키쯔네를 은거시키고 처자도 유폐 해 버렸습니다. 


 그해 9월 새 당주에게의 모반의 혐의를 뒤집어쓴 오키쯔네는 한때 스스로의 부하였던 쿠마가이 노부나오(熊谷信直) 에 의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살해당합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피해 필사적으로 모토나리에 결백을 증명하는 편지를 봉냈다고 하니, 아마 불안의 씨앗을 제거하려는 모토나리의 계책이었겠지요. 이렇게 해서 모토나리는 큰 전투 한번없이, 양 카와가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때 이미 아마고가에서 멀어져 오오우치가를 후원자로 하고 있던 모토나리는 양 카와를 얻은 일로 힘을 길러 결국 오오우치가나 아마고가까지 멸망 시겨 최종적으로 츄고쿠 지방의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