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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어째서일까? 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어째서일까? 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텐몬 22년(1553년)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 노부나가의 부자 2대를 시중든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가 할복 했습니다. 



히라테 마사히데



 전국시대의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는 텐몬 3년(1534년)에 태어납니다. 그 무렵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는 오와리의 수호 시바(斯波)가를 시중드는 수호대의 오다 집안의 한 분파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다가 내의 내분을 이용해 오와리의 대부분을 손에 넣고 오히려 본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 노부히데의 후계인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교육계)였던 것이, 노부히데의 가신중에서도 두번째로 꼽히는 히라테 마사히데입니다. 그는 옛 가곡에 통달하고 다도를 즐겨 풍류를 즐기는 문화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노부나가는 도저히 후계자에게는 안보이는 천한 머리 모양에, 기모노의 소매를 반벗은 골목대장인 양아치  였습니다. 


  미노에 진공을 계속하던 노부히데는 텐몬 16년의 카노우쿠치 전투(加納口の戦い) 후에 방침을 전환합니다. 미노의 사이토 도산과 동맹을 맺고, 이웃나라인 미카와의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와의 싸워 오와리 통일을 우선하기로 합니다. 이 때, 동맹의 사자에 발탁 된 마사히데는 그 훌륭한 교섭실력으로 양자의 화목을 성립시켜, 노부나가와 도산의 딸 노우히메와의 약혼도 성립시켰습니다. 다음 해인 텐몬 17년에는 무사히 농우히메와 결혼한 노부나가였지만, 아직 그의 기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양아치 노부나가



 이윽고 텐몬 20년(1551년), 아버지 노부히데가 죽어, 노부나가는 18세에 다이묘를 잇습니다. 여기서 노부나가의 양아치짓의 절정이 있었지요. 아버지의 장례식에 평소의 그 변태적인 복장을 입고 나타난 노부나가는 합장해 명복을 빌기는 커녕, 제단에 향을 던지고 갑니다. 한편, 그 뒤에 온 남동생 노부유키는 제대로된 차림새에 늠름한 몸놀림으로 장례식에 참가했지요. 이 이후로 노부나가대신 노부유키를 주군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노부나가의 이런 기행은 노부나가의 계산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무렵에 노부나가와 마사히데의 주종 관계를 험악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사히데의 장남 고로에몬이 소지하고 있던 준마를 본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달라 요구합니다. 이에 고로에몬은 무사의 긍지를 걸고 거부했지요. 이렇게 해서 텐몬 22년(1553년) 마사히데는 스스로 할복 자살해,  62세로 생애를 마감합니다. 할복의 원인은 노부나가에 실망했다는 설과,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 주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뒤 장남인 고로에몬이 노부유키에 가담한 일에 책임을 졌다고도 말해집니다.「신초코기」에는 마사히데의 죽음에 대한 노부나가의 반응은 쓰여지지 않아 궁금증만 더해 줍니다. 그보다 더 후에 쓰여진 「노부나가기」나 「노부나가 전쟁 이야기」에서는, 마사히데의 죽음으로 노부나가가 정신을 차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부나가기」나 「노부나가 전쟁 이야기」는 전쟁소설의 성격이 강해서 신빙성이 적지요.



할복



 「노부나가 전쟁 이야기」에는 매사냥을 하러 나가 사냥감을 손에 넣고그것을 하늘 높이 달아 '마사히데, 드시게나'라고 했다거나 강에 들어서 물을 손에 머금고 '마세히데, 마시게나'라며 눈물을 머금은 노부나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만, 그 노부나가가 설마 이랬을 리가 없지 않을까요? 게다가 노부유키 모반이후에 고로에몬에 처분을 내렸다고 하는 기록도 없고, 오히려, 그 남동생과 함께 가신으로 중용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들은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았었지요. 마사히데가 왜 할복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그의 충성심만큼은 진짜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