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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군의 뼈아픈 패배 토이시 괴멸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군의 뼈아픈 패배 토이시 괴멸



 텐몬 19년(1550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 적대하고 있던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의 거점 토이시성(戸石城)에 총공격을 실시했습니다.


 시나노의 스와를 정복한 신겐은 시나노 동부도 그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텐몬 17년(1548년)에 그 근처 일대를 영지로 둔 카츠라오성의 성주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에타바루의 전투 뒤에 중신 이타가키 노부가타나 아마리 토라야스를 잃는다고 하는 충격을 받아 시나노 동부 평정은 당분간 휴지됩니다. 이윽고 텐몬 19년(1550년) 신겐에게 패주 한 나가토키(長時)가, 그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의지한 뒤로, 신겐과 요시키요의 갈등이 다시 표면화합니다. 그해 8월 요시키요의 거점 성, 토이시성를 포위한 신겐은 전군을 출진시켜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강고한 성은 좀처럼 점령되지 않았습니다.



토이시 괴멸의 위치



 어쩔 수 없이, 신겐은 시나노를 잘 아는 사나다 유키타카(真田幸隆)에 명해 주변의 여러 장수들을 아군으로 끌이도록 획책 합니다. 그러나 전혀 전세가 바뀌지 않자 1개월 후 철퇴할 결의를 했습니다. 손자도 그의 병법서에서 말했듯이,  진격하는 것보다 철퇴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다케다군이 철퇴하기 시작하자마자 토이시성에서 농성하던 군사들이 추격을 개시하기 시작합니다. 확실히 몰아넣어 신겐을 괴멸시키려 무라카미 요시키요 자신이 직접 군세를 이끌고 나타납니다. 다케다군이 틀림없이 토이시성 안에 있다고 믿던 요시키요와 그 주력 부대는 이미 타케다군의 배후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얼마전까지 적대하고 있던 타카나시 마사요리(高梨政頼)와 화목을 맺어 무라카미군은 총전력을 다케다의 추적에 투입해 왔습니다. 불의에 급습된 다케다군은 붕괴되어 무너져 버립니다.



야마모토 칸스케의 모습



 유명한 무장으로 요코타 타카마츠(横田高松)가 적의 맹공격에 장렬히 전사하고, 군사들도 전사자만으로 700명을 넘어 버렸습니다. 이 전투는 토이시 괴멸(戸石崩れ)이라고 불립니다. 예의 다케다가의 병법서 '고요군감' 에서는, 일단 졌다라고 하면서도 이 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괴멸한 다케다군 안에서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는 '적의 비난의 화살을 남쪽으로 향하게 하면 이길 수 있다' 라는 발언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아군은 명령을 들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반신반의하는 신겐의 앞에서, 칸스케는, 모로즈미 토리사다(諸角虎定; 신겐의 사촌형제)의 군세를 빌려 전진해 일부러 무라카미군의 바로 앞에서 반격체재를 정비합니다. 그 군세를 격파하려고, 달려오는 무라카미군에 대해 칸스케의 군세는  남쪽으로 도주합니다. 이에 무라카미군도 남쪽으로 추격을 가하지요.


 그 사이에, 다른 타케다군이 태세를 정돈합니다. 그리고 칸스케는 다음에 오야마다 아키라신(小山田昌辰)의 군세를 지휘해 따라온 상대를 재기 불능케 무찔렀습니다. 그 다음 이 승리를 알리며, 승기가 다케다군에게 있다는 것을 퍼뜨리자 다케다군은 사기를 회복하고 무라카미군에 역으로 추격을 감행해 130남짓의 수급을 베었습니다고 합니다. 진 싸움이 이긴 싸움이 되버렸네요. 게다가 야마모토 칸스케는 여기 '고요군감'에서 밖에 등장하지 않는 장수로, 현대는 창작된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만, 그래도 다케다 신겐의 위명에 힘입어 여러 매체에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