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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우키타 나오이에의 어머니, 엔유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우키타 나오이에의 어머니, 엔유인 엔유인(円融院)은 미우라 도우쥬마루(三浦 桃寿丸),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킷카와 히로이에(吉川広家)의 처인 요우코우인(容光院)의 어머니로 미우라 사다가쯔(三浦貞勝), 우키다 나오이에(宇喜多直家)의 처 였습니다. 일설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었다고 하나, 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생년과 출신은 다양한 설이 있어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아문튼 에이로쿠 2 년 (1559 년) 경에 미마치카(美作)의 다카다성(高田城) 성주 미우라 사다가쯔에게 시집 갑니다.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 미우라 도우쥬마루를 낳지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로쿠 8 년 (1565 년) 남편 사다가쯔가 미무라 이에치카(三村家親)에 공격받아 패배하고 할복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코가쿠보의 마지막 자존심일까? 아시카가 우지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코가쿠보의 마지막 자존심일까? 아시카가 우지히메 아시카가 우지히메(足利氏姫)는 코가쿠보의 아시카가 요시우지(足利義氏)와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의 딸인 조코인(浄光院)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덴쇼 11년 (1583년) 아버지 요시우지가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장남이었던 그녀의 동생 우메치요오우마루(梅千代王丸)가 어린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그녀가 가독을 상속하게 됩니다. 전국시대에 몇 없었던 여성 다이묘 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9살인데다가 코가쿠보에서 역대 키츠레가와(喜連川)의 당주의 사적과 글을 수집해 놓은 「키츠레가와반감(喜連川判鑑)」에는 남편과 그녀의 일이 게재되어 있지 않기에 형식상으로만 가독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덴쇼 1..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사랑때문에 종교를 버린, 쇼우가큐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사랑때문에 종교를 버린, 쇼우가큐니 쇼우가큐니(青岳尼)는 가마쿠라 아마고잔(尼五山)의 주지입니다. 그녀가 출가한 경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만, 텐몬 20 년 (1551년) 무렵에는 이미 타이와라지(太平寺)의 주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텐몬 7 년 (1538 년) 제 1차 코우노다이 전투(国府台合戦: 제1차 코우노다이 전투)에서 아버지가 전사 한 직후 아와국에 이동해 사토미 요시타카(里見義堯)에 의탁하였습니다. 코우지 2 년 (1556 년) 후호조 지배에 있는 가마쿠라를 공격하고 나서(가마쿠라, 쓰루카오카하치만궁 전투) 사토미 요시히로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타이와라지에 있던 쇼우가쿠니에게 환속해 아내가 되어달라고 합니다. 그녀도 이에 응해 에도만을 건너 요시히로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불심이 깊은 겐신의 어머니, 세이간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불심이 깊은 겐신의 어머니, 세이간인 세이간인(青岩院)은 나가오 다메카케(長尾為景)의 후실로 '토라고젠(虎御前: 호랑이 앞에서)'라는 통칭으로 알려져 있는 우에스기 겐신의 어머니 입니다. 세이간인에 아버지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다른 무장을 지칭하고 있고,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실 '토라고젠'이라는 이름만 보면 굉장히 사나운 여성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에스기 겐신의 아명인 토라치요(虎千代)를 따서 후세에 붙여준 별명입니다. 그녀는 불심이 아주 깊었다고 하는데요, 우에스기 겐신이 그녀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다메카케의 사후에는 불문에 들어가 보리(菩提)를 닦는데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자신을 '비사문천의 화신'이라 칭하며 한때는 출가하기 까지 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카게카츠 오타테란 승리의 일등공신 센토우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카게카츠 오타테란 승리의 일등공신 센토우인 센토우인(仙桃院)은 나가오 다메카케(長尾為景)의 딸로, 우에스기 겐신의 이복 남매(또는 동모이부 남매)라고 합니다. 이름은 아야(綾)라고 전해집니다. 텐분(天文) 6년(1537년) 나가오 마사카게(長尾政景)의 정실로 시집갑니다. 장남인 요시카게(義景)는 10살에 요절했으나, 차남인 카게카츠(景勝)는 후에 겐신의 양자가 되어, 친자식이 없었던 겐신의 사후 벌어진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란)에 승리하여 겐신을 잇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에스기가의 선조가 됩니다. 에도(江戸)시대의 군키모노(軍記物: 군사소설)의 영향에 의해, 오랫동안 장녀가 하타케야마 요시하루(畠山義春)에게, 차녀(세이엔인(清円院))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에게 시집갔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모리부부에 이은 잉꼬부부, 토이타노 오오가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모리부부에 이은 잉꼬부부, 토이타노 오오가타 토이타노 오오가타(問田大方)는 코바야카와 다카카게 (小早川隆景)의 정실입니다. 코바야카와가의 본가 누마카와가의 당주인 코바야카와 마사하라(小早川正平)의 딸입니다. 마사히라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전사했기 때문에 그녀의 오라버니인 시게히라(繁平)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게히라는 어린데다 병약했기 때문에 오오우치 요시타카와 모리 모토나리에 아마고의 침공이 시작될 때 이를 막는 것은 코바야카와의 어린 당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아마고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텐몬 19년(1550년)에 구금되고 강제적으로 은거하고 출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리 모토나리의 아들 다카카게가 코바야카와가를 잇게 됩니다. 이에 토이타노 오오가타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신겐의 측실, 네즈고료우닌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신겐의 측실, 네즈고료우닌 네즈고료우닌(禰津御寮人)은 가이국 다케다 신겐의 첩으로, 시나노국 쿠니진 네즈 모토나오(禰津元直)의 딸입니다. 자식으로 다케다 노부키요(武田信清)가 있습니다. 다케다 하루노부(신겐)는 텐몬 11 년 (1542 년)에 아버지를 내쫓고 같은 해 시나노 스와를 정복해 시나노 침공을 본격화합니다. 신겐은 텐몬 5 년에 결혼한 정실 산죠노가타가 있었지만 여색을 밝혔다고 합니다. 스와에서 그는 자신이 할복시킨 스와가의 딸의 미모를 보고 반해 가신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측실로 삼습니다. 그녀가 바로 스와부인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신겐은 다케다가의 가신, 네즈가의 유리(由利)를 측실로 삼으니, 그녀가 바로 네즈고료우닌입니다. 자세한 그녀의 동향은 기록에 남아있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묘큐에 가린 모토나리의 부인, 노미노 오오카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묘큐에 가린 모토나리의 부인, 노미노 오오카타 노미노 오오카타(乃美大方)는 츄고쿠의 패자 모리 모토나리의 후실 또는 측실입니다. 킷카와 일족인 노미 타카오키(乃美隆興)의 딸입니다. 모리 모토나리의 처인 묘큐(츄고쿠의 국모, 묘쿄)에 대해서는 다룬 적이 있는데, 여기서 모토나리는 측실을 들이지 않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노미노 오오카타는 뭐냐? 하실 분들이 있겠는데요, 묘큐의 포스팅에도 썼지만 묘큐는 일찍 죽은 편입니다. 그렇기에 후에 후실로 노미노 오오카타를 들인 것이지요. 호이다 모토쿄(穂井田 元清), 아마노 모토마사(天野元政), 모리 히데카네(毛利秀包)를 모리와의 사이에서 낳았습니다. 그녀는 게이쵸 6년(1601)에 세상을 떠납니다. 모토나리가 1571년에 세상을 떠났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신겐의 야망에 희생된 동생, 네네고료우닌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신겐의 야망에 희생된 동생, 네네고료우닌 네네고료우닌(禰々御料人)은 가이국의 기틀을 마련한 다케다 노부토라의 딸로, 신겐의 이복여동생입니다. 네네고료우닌의 아버지 노부토라와 시나노가 스와의 스와 요리미쓰(諏訪頼満)는 항쟁 상태에 있었지만, 텐몬 4 년 (1535 년)에 화목해 텐몬 8 년 (1539 년)에 는 스와 요리미쓰가 세상을 떠나 장손 스와 요리시게(諏訪頼重)가 당주자리에 오릅니다. 이에 노부토라는 텐몬 9년(1540년) 네네고료우닌을 스와국에 시집보냅니다. 그 뒤로 스와국과 가이국의 평화는 한동안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겐이 노부토라를 쫓아내면서 그 평화는 깨어지게 됩니다. 신겐은 험준한 가이에서 벗어나 전국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스와의 점령이 선결과제라 보았습니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츄고쿠의 국모, 묘쿄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츄고쿠의 국모, 묘쿄 묘쿄(妙玖)는 츄고쿠의 패자,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의 정실입니다.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름이 특이한 데요, 법명이기 때문입니다.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킷카와 쿠니쯔네(吉川国経)의 딸입니다. 묘오 8년(1499년) 아키국 쿠니진 킷카와 쿠니쯔네의 딸로 오구라산성 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한 후 아키국의 유력 쿠니진 모리가의 일족인 모리 모토나리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언제 결혼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모토나리와 묘쿄는 매우 사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력 다이묘 또는 쿠니진이라면 측실, 첩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모토나리는 묘쿄 이외의 처첩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토나리가 자식들을 걱정하면서 썼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