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우에스기가문에 사랑받은 부인, 키쿠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우에스기가문에 사랑받은 부인, 키쿠히메 키쿠히메(菊姫)는 다케다 신겐의 여섯번째 딸로, 어머니는 아부라카와 부인입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의 정실이지요. 우에스기가의 전통(?)인지 카게카츠도 그녀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에이로쿠 6년(1563년)에 다케다 신겐의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납니다. 어머니는 아부라카와 부인으로, 친형제에 니시다 모리노부(仁科盛信), 카츠라야마 노부사다(葛山信貞), 마츠히메(松姫)가 있습니다. 마리히메도 아부리카와 부인의 딸이라는 설도 있지요. 덴쇼 3년(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라버니 다케다 가쓰요리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심하게 패한 이후, 다케다 일족의 세력이 쇠퇴하자 가쓰요리는 우에스기와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이 코우에츠동맹..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시대의 흐름을 탄 여인, 쿄고쿠 타츠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시대의 흐름을 탄 여인, 쿄고쿠 타츠코 쿄고쿠 타츠코(京極竜子)는 쿄고쿠 타카요시(京極高吉)와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의 딸 쿄고쿠 마리아(쿄고쿠 마리아)의 딸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를 건드려다 멸망한 아자이가의 세 자매의 사촌누나가 되는 셈입니다. 와카사국의 다케다 모토아키(武田元明)에게 시집을 가 2남 1녀를 낳았습니다. 모토아키는 노부나가에게 영지를 하사 받아, 그 영지를 다스리며 부부는 이시야마성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자, 모토아키는 와카사국 전국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부려 아케치 미쓰히데의 세력에 붙게 됩니다. 하지만 야마자키 전투에서 미쓰히데는 심하게 패배하고 맙니다. 그뒤에 히데요시는 북 오미를 영지로 차지하는데, 이곳의 인심을 잡기 위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노부나가에게 참살당한 여성주, 오쯔야노가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노부나가에게 참살당한 여성주, 오쯔야노가타 오쯔야노가타(おつやの方)는 오다 노부사다(織田信定)의 딸로, 오다 노부나가의 숙모입니다. 이와무라도노(岩村殿), 슈리부인(修理夫人) 이라고도 합니다. 토오야마 카게토(遠山景任)의 부인입니다. 겐키 2년(1571년), 카게토는 자식이 없는 채로 병사하였기 때문에 오쯔야노카타는 노부나가의 다섯 번째 아들인 보마루(坊丸: 후의 카츠나가勝長)를 양자로 삼습니다. 하지만 보마루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오쯔야노카타는 당주의 자리를 계승하여 이와무라성(岩村城)의 여 성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의 겐키 3년(1572년)다케다 신겐의 부하 아키야마 노부토모(秋山信友)에게 이와무라성이 공격받게 되었는데, 원군이 오지 않아 독안에 든 쥐가 됩..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거듭되는 불행의 가운데에 있던, 산죠노가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거듭되는 불행의 가운데에 있던, 산죠노가타 산죠노카타(三条の方)는 사다이진인 신죠 킨요리(三条公頼)의 둘째 딸로,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정실입니다. 아들로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 오우바이인(오우바이인), 노부치카(信親), 노부유키(信之), 켄쇼인(見性院: 아나야마 바이세츠의 부인)이 있습니다. 교토의 산죠 저택에서 태어났다. 산죠가문은 세이가 7가의 하나로 매우 명문인 가문입니다. 스루가의 이마가와의 쥬케이니(쥬케이니)의 중개로 그녀는 다케다 하루노부(신겐)에게 시집가게 됩니다.다케다 가문의 킨쥬중(近習衆) 중에서 경호를 담당하는 고료닌중(御料人衆)에게 경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 신죠 킨요리는 참살당하고, 아들 다케다 요시노부는 아버지의 이마가와 출병을 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 쥬케이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이마가와의 철의 여인, 쥬케이니 쥬케이니(寿桂尼) 나카미카도 노부타네(中御門宣胤)의 딸로,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의 정실입니다. 자식으로 이마가와 우지테루(今川氏輝),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氏親), 즈이케이인(瑞渓院)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장남인 우지테루가 죽은 뒤에 삭발을 하고 법명을 받아 쥬케이니라고 하였다. 우지치카 , 우지테루, 요시모토, 우지자네(今川氏真, )의 4대를 거치면서 이마가와 가문의 정무를 보좌한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입니다. 에이쇼 2년(1505년) 우지치카에게 시집을 와, 에이쇼 8년(1513년)에는 장남 우지테루, 차남 히코고로(彦五郎)를 낳고 에이쇼 14년(1519년)에는 요시모토를 낳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우지치카는 병에 걸려 드러 눕게 되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아버지의 원수 신겐과 결혼한 미녀, 스와고료닌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아버지의 원수 신겐과 결혼한 미녀, 스와고료닌 스와고료닌(諏訪御料人)은 스와 요리시게(諏訪頼重)의 딸로 다케다 신겐의 측실입니다. 유후히메(由布 姫)라고도 부릅니다. 아버지 노부토라를 내쫓은 (신겐이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신겐은 시나노 공략을 시작하며 그 제일보로 스와를 공격합니다.(스와 전투) 자신의 여동생이 시집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공격을 시작해 스와를 점령한 신겐은 아리따운 처자를 발견하니, 그녀가 바로 스와 요리시게의 딸 스와고료닌이었습니다. 신겐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 가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녀를 측실로 삼습니다. 일설에는 아무리해도 지배가 되지 않는 스와를 진정시키기 위해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에 반발하는 가신들은 신겐의 명참모 야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다케다 가쓰요리의 열녀 부인, 호죠부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다케다 가쓰요리의 열녀 부인, 호죠부인 호죠부인(北条夫人)은 사가미국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육녀이고 가이국의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의 계실입니다. 이름은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다케다와 호죠는 스루가의 이마모토와 키요스 삼국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각 혼인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오케하자마전투 이후 다케다 신겐이 아들 노부야쓰를 할복시키면서 까지 동맹을 찢고 스루가를 침공합니다. 이로 인해 호조는 다케다의 딸인 오우바이인은 이혼을 당하기까지 하지요.(오우바이인) 하지만 신겐의 만년에는 키요스 동맹의 회복됩니다. 신겐의 뒤를 이은 가쓰요리는 덴쇼 3년(1575년)의 나가시노 전투에 크게 패배해 가이에 동요가 생깁니다. 그는 이것을 해결하고자 덴쇼 5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구밀복검해 복수를 갚다, 묘우린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구밀복검해 복수를 갚다, 묘우린니 묘우린니(妙林尼)는 요시오카 아키오키(吉岡鑑興)의 아내입니다. 사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오오토모 흥망기(大友興廃記)」나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기록되어 있는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전국시대 아즈치 후기에 큐슈에서 가장 강성했던 시마즈의 대군을 몇 안되는 병사로 훌륭히 막아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남편인 요시오카 아키오키(吉岡鑑興)는 '미미가와 전투'에서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그 때 출가해 법명인 묘우린니를 얻게 됩니다. 남편이 죽은 미미가와 전투(미미가와 전투)이후 시마즈와 오오토모의 힘의 균형은 깨지게 되지요. 소린은 이에 히데요시에게 중재를 요청하나, 시마즈는 이를 무시하고 소린의 거성 우스키성..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멸문의 상처를 딛고, 아자이 쿠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멸문의 상처를 딛고, 아자이 쿠스 아자이 쿠스는 반 오부나가 동맹의 최전선에 있다가 처참히 패배해 그 두개골이 술잔이 되버렸다는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입니다. 자매로 차차, 쇼, 고우가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고우~공주들의 전국에 잘 나와있지요. 그런데 쿠스는 잘 안나온 듯 하네요. 와카사국 미카타군 하야세포(早瀬浦)에서 출생합니다. '미카타군지(三方郡誌)'에는 '혹자는 말한다, 시녀는 아사이 나가마사 가문의 여자라고. 또 이런 말도 있다, 히데요시의 첩 주호우인(壽芳院)의 보모라고.'라고 아자이 쿠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쿠스의 어린 시절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마쓰노마루도노(松の丸殿)를 모신 곳의 기록을을 보면, 아자이 종가 멸망 후 이모인 요우후쿠인(養福院).. 더보기
쿠바 혁명사; 역사가 나를 심판할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재판(3) 카스트로의 명 연설 쿠바 혁명사; 역사가 나를 심판할 것이다피델 카스트로 재판(3) 카스트로의 명 연설 10월 16일이 되서야 비로소 카스트로는 재판장들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법정에서가 아니라, 시민 병원의 간호원 휴게실에서 였습니다. 쿠바 민중이 그의 발언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비밀재판이 열린 것입니다. 세명의 재판관과 두명의 검찰관 그리고 100여명의 무장 경비원만이 이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피델은 기회를 얻자 무려 다섯 시간이나 자신에 대한 변론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 변론이 아닌, 바티스타 정권에 대한 고발이었습니다. 논쟁은 법, 자연과학, 경제, 역사 및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깊이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조국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설파한 이 연설은 쿠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