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 쥬케이니
쥬케이니(寿桂尼) 나카미카도 노부타네(中御門宣胤)의 딸로,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의 정실입니다. 자식으로 이마가와 우지테루(今川氏輝),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氏親), 즈이케이인(瑞渓院)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장남인 우지테루가 죽은 뒤에 삭발을 하고 법명을 받아 쥬케이니라고 하였다. 우지치카 , 우지테루, 요시모토, 우지자네(今川氏真, )의 4대를 거치면서 이마가와 가문의 정무를 보좌한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입니다.
쥬케이니(寿桂尼)
에이쇼 2년(1505년) 우지치카에게 시집을 와, 에이쇼 8년(1513년)에는 장남 우지테루, 차남 히코고로(彦五郎)를 낳고 에이쇼 14년(1519년)에는 요시모토를 낳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우지치카는 병에 걸려 드러 눕게 되고, 그녀는 이때부터 이마가와가를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 「이마가와가명목록(今川仮名目録)」이라는 법을 제정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지요. 다이에이 6년(1526년) 우지치카가 병사하고 우지테루가 뒤를 이었지만, 그는 아직 14살에 지나지 않아 그가 16살이 될때까지 쥬케이니가 인장('귀(歸)'문자가 새겨졌다는 설도 있습니다.)을 사용해 공문서를 발행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여성 전국 다이묘', '아마미다이(尼御台, 여승이 된 옛날 대신이나 쇼군의 부인의 높임말) 등으로 불렸습니다.
일러스트
그녀의 활약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다케다 하루노부(신겐)와 산죠노가타의 결혼을 주선합니다. 텐몬 5년(1536년) 우지테루와 히코고로가 차례로 죽자 쥬케이니는 요시모토를 환속시킵니다. 이에 측실의 아들이었던 겐코 에탄(玄広恵探)과 분쟁이 일어나니, 이것이 '히나구라의 난'입니다.(하나구라의 란) 히나구라의 란을 이끈 것이 다름아닌 쥬케이니 였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난을 제압한 요시모토는 이마가와를 잘 이끌었으나, 오케하자마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기습에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 뒤에 우지자네가 뒤를 이은 후에도 쥬케이니는 계속해서 정치에 개입합니다. 이 시대에 다시 쥬케이니의 인장이 찍힌 공문서가 발행되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오케하자마 이후에 완전히 운을 잃은 이마가와는 이미 끝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도쿠가와의 발호와 여러 가신의 배신이 이어져 있었지요. 결국 그녀는 이즈음에 출가해 법명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4개에 걸쳐 이마가와를 이끌었던 쥬케이니는 70~80세 정도가 되어 세상을 떠납니다. '죽어서도 이마가와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한 그녀의 희망대로, 이마가와관의 동북의 키몬(鬼門)에 있는 류우운지(竜雲寺)에 매장되었습니다. 신겐은 후에 '그 여자가 있는 한, 이마가와를 공격할 수 없었다'라며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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