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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멸문의 상처를 딛고, 아자이 쿠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멸문의 상처를 딛고, 아자이 쿠스 


아자이 쿠스는 반 오부나가 동맹의 최전선에 있다가 처참히 패배해 그 두개골이 술잔이 되버렸다는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입니다. 자매로 차차, 쇼, 고우가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고우~공주들의 전국에 잘 나와있지요. 그런데 쿠스는 잘 안나온 듯 하네요.

와카사국 미카타군 하야세포(早瀬浦)에서 출생합니다. '미카타군지(三方郡誌)'에는 '혹자는 말한다, 시녀는 아사이 나가마사 가문의 여자라고. 또 이런 말도 있다, 히데요시의 첩 주호우인(壽芳院)의 보모라고.'라고 아자이 쿠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쿠스의 어린 시절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마쓰노마루도노(松の丸殿)를 모신 곳의 기록을을 보면, 아자이 종가 멸망 후 이모인 요우후쿠인(養福院)에게 거두어 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사촌인 마쓰도노마루가 아자이 자매들을 맡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녀가 재건한 류우타쿠지


 아버지의 이모 쿄고쿠 마리아(쿄고쿠 마리아)의 아들이며 사촌인 쿄고쿠 타츠코(京極竜子)의 시녀 (姥우바)을 역임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 시중들었습니다. 미카타군 킨잔마을의 조동종 사원 류우타쿠지(龍澤寺)를 재건 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아마 마쓰도노마루와 함께 출가했던 것 같습니다. 말년까지 그녀가 출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류우타쿠지는 원래 호우오지(宝応寺)라 불렸었습니다. 그런데 마쓰도노마루의 시녀가 재흥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쿠스는 시녀일 때 이 절을 재건했던것 같습니다.

 그녀가 언제 죽었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칸에이 3 년 (1626년)에 류우타쿠지에서 쿠스 목상이 미카타군 쿠쿠지(久々子)마을 노파들이 시주하고 섬겼기 때문에, 이전에는 사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류우타쿠지에 있는 위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当寺開基 寶光院殿心室理性尼大姉淑霊 
이 절을 창건한 짓코인(寶光院)님은 마음과 정신 맑은영혼을 가진 비구니셨다. (의역) 

 쿠스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히데요시의 사후에 마쓰도노마루가 오사카성으로 이동할 때 함께 해, 히데요리를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도요토미 쿠니마쯔(豊臣国松) 사형 후 시신을 인수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자이가의 딸들은 혼란스런 전국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기도 하기에, 드라마가 따로 나올 정도이지요. 쿠스역시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절을 재건하기까지 한 것으로 볼 때 어느정도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