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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사랑때문에 종교를 버린, 쇼우가큐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사랑때문에 종교를 버린, 쇼우가큐니



쇼우가큐니(青岳尼)는 가마쿠라 아마고잔(尼五山)의 주지입니다. 그녀가 출가한 경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만, 텐몬 20 년 (1551년) 무렵에는 이미 타이와라지(太平寺)의 주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쇼우가큐니(青岳尼)



 텐몬 7 년 (1538 년) 제 1차 코우노다이 전투(国府台合戦: 제1차 코우노다이 전투)에서 아버지가 전사 한 직후 아와에 이동해 사토미 요시타카(里見義堯)에 의탁하였습니다. 코우지 2 년 (1556 년) 후호조 지배에 있는 가마쿠라를 공격하고 나서(가마쿠라, 쓰루카오카하치만궁 전투) 사토미 요시히로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타이와라지에 있던 쇼우가쿠니에게 환속해 아내가 되어달라고 합니다. 그녀도 이에 응해 에도만을 건너 요시히로의 거성이 있던 카즈사국 사누키성으로 들어가 요시히로의 정실이 됩니다. 이에 호조 우지야스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타이와라지를 폐사해 버립니다. 



승려였을 시절 그녀의 모습



쇼우가쿠니는 에도만을 건널 때 '목조성관세음보살상(木造聖観世音菩薩像)'을 꺼내갔다고 합니다. 후에 이 상은 협상에 의해 반환되어 현재도 도우케이지(東慶寺)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병약했다고 하며, 에이로쿠 연간 초기에 병사했다고 합니다.


 한편, 일본에 있는 고젠지(興禅寺)는 쇼우가쿠니가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공양탑에 의하면 덴쇼 4년(1576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덴쇼 4년 초에 이미 요시히로가 오유미쿠보와 적대관계에 있던 코가쿠보의 아시카가 하루우지의 딸과 결혼하고 우메오우마루(梅王丸)가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때 요시히로에게 버림받았다는 설, 거리에서 요절했다는 설, 쇼우가쿠니가 죽은 뒤에 하루우지의 딸이 정실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어느것도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최근에는 우메오우마루가 쇼우가쿠니의 자식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젠지(興禅寺)



 종교를 버리고 자신의 절도 버려, 사랑하는 이를 따라간 쇼우가쿠니가 말년까지 행복하게 살다 죽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요시히로에게 버림받은 것이었다면, 모든 것을 버린 그녀에게는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여서 충격으로 병사했다는게 말이 되긴 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