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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대정봉환 협력의 시작, 삿토맹약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대정봉환 협력의 시작, 삿토맹약 게이오 3년(1867년) 6월 22일, 사츠마의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토사의 고토 쇼지로우(後藤象二郎),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나카오카 신타로우(中岡慎太郎) 등이, 대정봉환 협력을 나타내는 맹약인 삿토맹약(薩土盟約)을 성립시켰습니다. 게이오 3년(1867년) 4월 토사번의 단체로 정식 발족한지 얼마 안되는 카이에이타이(海援隊)에게 닥친 대사건 이로하마루(伊呂波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배상 문제를 지켜본 사카모토 료마가 당시에 토사 번의 참정으로 활약하고 있던 고토 쇼지로우와 함께 번의 증기선인 야쿠모마루(夕顔丸)를 타고 나가사키를 출항한 것은 6월 9일의 일이었습니다. 이미 이 1월 나가사키에서의 회담에..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10) 조슈가 세번째로 오구라에 상륙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10) 조슈가 세번째로 오구라에 상륙 게이오 2년(1866년) 7월 27일, 제2차 조슈 정벌에서 조슈군은 드디어 오구라성 공략을 목표로 해서, 3번째의 오구라 상륙 작전을 결행했습니다. 조슈는 오오무라 마스지로우(大村益次郎)가 지휘를 해 동쪽의 세키슈우구치에서는 하마다성을 공략하고, 게이슈구치에서는 교착 상태가 계속 되는 중에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가 지휘를 하는 오구라구치에서는 게릴라적인 상륙 작전에 종지부를 찍어, 드디어 오구라성을 공략할 수 있도록 세번째의 상륙을 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 7월 27일, 군함에 의한 원호 사격을 받으면서 상륙한 조슈의 정예 약 800명을 이끌고 오사토에 본진을 지은 신사쿠는 군을 두 패로 나누어 바다측에서 아카사카..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8) 조슈번의 게릴라와 오구라구치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8) 조슈번의 게릴라와 오구라구치 전투 게이오 2년(1866년) 6월 17일, 제2차 조슈 정벌 오구라구치 전투로 다시 조슈군이 오구라에 상륙했습니다. 오구라구치는 그 이름과 같이 오구라번의 거성인 오구라성이 있는 곳입니다. 동쪽의 본영을 히로시마성에 두고 있던 막부는 서쪽의 본영을 이 오구라성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총독은 로쥬우인 오가사와라 나가미치(小笠原長行)가 착임 하고 있었습니다. 오사유키는 총독의 명령으로 큐슈의 각 영주에게 군사의 동원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사츠마번은 출병을 거부하고, 사가번 역시 출병을 거부합니다. 어떻게든 히고번과 쿠루메번이 출병해, 오구라번과 합쳐 2만 정도의 군사가 집결합니다. 그러나, 역시, 의욕이 있는 것은 오구라번뿐이었습니..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7) 세키슈우구치 공방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7) 세키슈우구치 공방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16일, 제2차 조슈 정벌에서 오구라구치와 세키슈우구치의 공방전이 개시되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 6월 8일, 조슈쪽의 관문 스오우 오오시마에 막부군의 군사가 상륙해, 제2차 조슈 정벌의 막이 열렸습니다. 에도 막부는 일본의 정부입니다. 이를 상대로 싸우는 조슈는 1 지방에 불과합니다. 작전을 잘 짜지 않는다면 패배는 명약관화합니다. 조슈에는 방비를 굳혀야 할 거점이 있습니다. 세키가하라에서 진 이래, 거점이 되어야 할 성을 구축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난공불락과는 거리가 먼 하기성에서 에도시대를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 해야할지, 이것이 조슈 정벌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압도..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게이오대 2년(1866년) 6월 14일, 제2차 조슈 정벌의 게이슈구의 선봉으로서 진군 하고 있던 히코네번 이이대에게 조슈군이 기습공격한 게이슈구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이 때, 막부측의 본영은 히로시마에 있고, 선봉의 총독을 맡고 있던 것은 기슈 번주 도쿠가와 모치츠구(徳川茂承), 서쪽의 조슈로의 진공은 시모노세키로 향합니다. 동쪽에서는 산인과 산요의 두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세토우치라고 하는 유통의 요충지가 있었기 때문에, 역시, 산요측 쪽이 번성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산요는 공격과 방어 측에 있어서 최대의 요지가 됩니다. 당시 히로시마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서쪽 지방 가도는 오노로 통했습니다. 그 오노에서는 시쥬우하츠자카(四十八..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5) 신사쿠의 오오시마 탈환 작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5) 신사쿠의 오오시마 탈환 작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13일, 제2차 조슈 정벌, 시쿄전쟁(四境戦争)으로, 최초의 오오시마 전투로 막부 측에 빼앗기고 있던 스오우 오오시마를 조슈번이 탈환하였습니다.(오오시마 공방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8일, 조슈쪽의 관문 스오우 오오시마에 막부군의 군사가 상륙해, 제2차 조슈 정벌의 막이 열렸습니다. 에도 막부는 일본의 정부입니다. 이를 상대로 싸우는 조슈는 1 지방에 불과합니다. 적은 군사를 한층 더 분산해 오히려 패배가 정해진 것이라고 하는 예상 아래, 이 스오우 오오시마에는 군사를 배치하지 않았었습니다. 오오시마는 거의 무저항인 상태인 채로, 비전투원인 많은 도민이 싸움에 말려 들어가 희생이 되었습니다.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4) 오오시마 공방전에서 막부 승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4) 오오시마 공방전에서 막부 승리 게이오 2년(1866년) 6월 8일, 에도 막부의 군함 후지잔마루(富士山丸)가 포격을 개시해, 막부군이 스오우 오오시마에 상륙했습니다. 제2차 장주 정벌의 전쟁의 발단인 오오시마구치 전투가 일어난 것입니다. 게이오 2년(1866년) 6월 5일의 막부의 선전포고에 의해서 개시되는 이번 제2차 조슈 정벌은 긴몬의 변(긴몬의 변)으로, 역적이 된 조슈를 막부가 징벌하는 것입니다. 조슈번은 이 일련의 전투를 '시쿄전쟁(四境戦争)'이라 부릅니다. 그 이름대로, 4개의 방향에서 막부가 공격해 온 것이지요. 원래 막부의 계획은 무려 5갈래로 갈라져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키방면에서 게이슈구치(芸州口), 이와미 방면에서 세키슈우구치(石州口),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3) 사카모토 료마 위기! 데라다야 사건 발발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3) 사카모토 료마 위기! 데라다야 사건 발발 게이오 2년(1866년) 1월 23일, 후시미의 선숙 데라다야(寺田屋)에 숙박하고 있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후시미봉행의 부하가 습격하니, 이것이 '데라다야 사건'입니다. 전에 데라다야 사건을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데라다야 사건) 사실 일본에는 데라다야 사건이 두개가 있습니다. 분큐 2년(1862년)에 일어난 사츠마번사끼리의 살상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번은 '데라다야 소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게이오 2년 1월 23일 에 일어난 후시미 봉행소에 의한 사카모토 료마의 체포극입니다. 긴몬의 변이나 제 1차 조슈 정벌에서도 사츠마번은 선두에서 조슈를 공격하였고 이것이 2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뿌리깊은 둘 사이의..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2) 사카모토 료마, 삿쵸 동맹을 성공시키다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2)사카모토 료마, 삿쵸 동맹을 성공시키다 게이오 2년(1866년) 1월 21일, 조슈번의 카츠라 코고로우(桂小五郎)와 사츠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중개에 의해 회견해, 삿초 동맹이 성립되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해 일본에서는 이 날을 '라이벌의 날'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게이오 원년(1865년) 5월 1일, 사이고 키치노스케(西郷吉之助)와 고마츠 다테와키(小松帯刀)와 함께, 사츠마번의 배고쵸우마루(胡蝶丸)을 타 가고시마로 간 사카모토 료마는 그들에게서, 실은 사츠마가 막부의 조슈 정벌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나 조슈와의 화해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전의 분큐 3년(1863년)에 발발한 8월 18일의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1) 도쿠가와 이에모치, 조슈 정벌을 결의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조슈 정벌(1) 도쿠가와 이에모치, 조슈 정벌을 결의 게이오 원년(1865년) 윤 5월 22일, 조슈 정벌의 취지를 천황에 주상 하기 위해, 제14대 에도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가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이른바 제2차 조슈 정벌을 하려는 것입니다만, 이 때, 제 121대 코우메이덴노에게서 내려진 칙명은 '당분간 오사카성에서 기다리고, 조슈 정벌은 유예하라'는 것으로, 결국 막부는 덴노의 허락이 나올 때 까지의 약 1년간, 수만이라는 대군과 함께 오사카에서 금족 되어 버립니다. 페리의 외국 함선 입항에 시작된 에도막부 말기의 동란은 불평등한 조약에 개국을 단행한 막부와 거기에 반대하는 양이파의 대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양이파는 역시 외국을싫어했던 당대의 코우메이덴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