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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항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메이지덴노, 왕정 복고의 대호령 발표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메이지덴노, 왕정 복고의 대호령 발표 게이오 3년(1867년) 12월 9일, 왕정 복고의 대호령이 발해졌습니다. '대정봉환'과'왕정 복고' 어느쪽이나 도쿠가와 막부가 정권을 덴노에 반납하는 것으로 일견 똑같이 느껴집니다만, 둘은 크게 다릅니다. '대정봉환'은 덴노 아래 새로운 막부 주도의 조직을 마련하고 정치를 실시한다고 하는 것이고, '왕정 복고'는 막부 정권을 배제해, 덴노 스스로 정치를 실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10월 14일에 토막을 외치는 사츠마, 조슈의 비난의 화살을 막으려는 듯이, 쇼군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시원스레 대정봉환을 한 제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였지만, 그의 예측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막부를 넘어뜨리는 대의명..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사카모토 료마 암살당하다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사카모토 료마 암살당하다 게이오 3년(1867년) 11월 15일 오후 8 시에 교토 시조가와하라 마을(四条河原町)의 간장상점 오우미야(近江屋)에 잠복 하고 있던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우가, 수 명의 자객에게 습격당해 료마는 즉사, 신타로우는 2일 후에 사망했습니다. 기이하게도, 이 날은 료마의 32번째의 생일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역사상의 인물중에서도 1위, 2위를 다투는 인기인입니다. 그는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번과 조슈번을 중개해, 삿초 동맹을 성립시켰습니다.(삿초동맹) 또, 토사 번이 막부에 제출한 대정봉행을 추진해, 후의 일본을 디자인한 「건백서(建白書)」의 원안을 생각했던 것도 료마입니다.(삿토맹약) 이 두가지 큰 업적에 대해 최근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대정봉환 협력의 시작, 삿토맹약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대정봉환 협력의 시작, 삿토맹약 게이오 3년(1867년) 6월 22일, 사츠마의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토사의 고토 쇼지로우(後藤象二郎),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나카오카 신타로우(中岡慎太郎) 등이, 대정봉환 협력을 나타내는 맹약인 삿토맹약(薩土盟約)을 성립시켰습니다. 게이오 3년(1867년) 4월 토사번의 단체로 정식 발족한지 얼마 안되는 카이에이타이(海援隊)에게 닥친 대사건 이로하마루(伊呂波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배상 문제를 지켜본 사카모토 료마가 당시에 토사 번의 참정으로 활약하고 있던 고토 쇼지로우와 함께 번의 증기선인 야쿠모마루(夕顔丸)를 타고 나가사키를 출항한 것은 6월 9일의 일이었습니다. 이미 이 1월 나가사키에서의 회담에..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9) 세키슈우구 전투에서 조슈측이 승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9) 세키슈우구 전투에서 조슈측이 승리 게이오 2년(1866년) 7월 15일, 제2차 조슈 정벌 중 세키슈우구 전투로 조슈군이 다이마산(大麻山)을 점령했습니다. 16일과 17일의 이틀간, 츠와노를 넘어 하마다번 내의 마츠다로 진공한 세키슈우구측의 조슈군, 하마다번은 현재 번주 마츠다이라 타케시치(松平武聡)가 투병중이여서, 원래 싸울 생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걱정한 막부군 본영은 돗토리번과 마츠에번에 원군을 요청해, 기슈의 타나베성 성주 안도 타다스케(安藤直祐)를 선봉으로 하마다성으로 보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 7월 15일, 마츠다에서 하마다로 향하는 조슈군과 기슈군이 부딪칩니다만, 막부의 구식의 총에서는 도저히 닿지 않는 거리에서의 조슈의 공격에 패배해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 발발, 해결은 창녀가?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 발발, 해결은 창녀가? 게이오 2년(1866년)에 일본인에 의한 프랑스 병사 살인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게이오 2년(1866년)이라면 1월에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번와 조슈번이 동맹을 맺어(삿쵸동맹), 일본의 운명이 움직인 해입니다. 다음 해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과 왕정 복고의 대호령(王政復古の大号令)이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사이, 요코하마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요코하마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의 승무원 수 명과 요코하마 시내의 노동자 수명이 대낮에 노상에서 싸움을 시작해 버립니다. 거기에 순회공연에 와있던 역사 (力士)시카게야마(鹿毛山)가 개입합니다. 물론 시카게야마도 처음은 말릴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아직 에도의 색이 사라지지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6) 게이슈구치 전투 게이오대 2년(1866년) 6월 14일, 제2차 조슈 정벌의 게이슈구의 선봉으로서 진군 하고 있던 히코네번 이이대에게 조슈군이 기습공격한 게이슈구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이 때, 막부측의 본영은 히로시마에 있고, 선봉의 총독을 맡고 있던 것은 기슈 번주 도쿠가와 모치츠구(徳川茂承), 서쪽의 조슈로의 진공은 시모노세키로 향합니다. 동쪽에서는 산인과 산요의 두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세토우치라고 하는 유통의 요충지가 있었기 때문에, 역시, 산요측 쪽이 번성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산요는 공격과 방어 측에 있어서 최대의 요지가 됩니다. 당시 히로시마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서쪽 지방 가도는 오노로 통했습니다. 그 오노에서는 시쥬우하츠자카(四十八..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5) 신사쿠의 오오시마 탈환 작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5) 신사쿠의 오오시마 탈환 작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13일, 제2차 조슈 정벌, 시쿄전쟁(四境戦争)으로, 최초의 오오시마 전투로 막부 측에 빼앗기고 있던 스오우 오오시마를 조슈번이 탈환하였습니다.(오오시마 공방전) 게이오 2년(1866년) 6월 8일, 조슈쪽의 관문 스오우 오오시마에 막부군의 군사가 상륙해, 제2차 조슈 정벌의 막이 열렸습니다. 에도 막부는 일본의 정부입니다. 이를 상대로 싸우는 조슈는 1 지방에 불과합니다. 적은 군사를 한층 더 분산해 오히려 패배가 정해진 것이라고 하는 예상 아래, 이 스오우 오오시마에는 군사를 배치하지 않았었습니다. 오오시마는 거의 무저항인 상태인 채로, 비전투원인 많은 도민이 싸움에 말려 들어가 희생이 되었습니다.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죠수 정벌(4) 오오시마 공방전에서 막부 승리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죠수 정벌(4) 오오시마 공방전에서 막부 승리 게이오 2년(1866년) 6월 8일, 에도 막부의 군함 후지잔마루(富士山丸)가 포격을 개시해, 막부군이 스오우 오오시마에 상륙했습니다. 제2차 장주 정벌의 전쟁의 발단인 오오시마구치 전투가 일어난 것입니다. 게이오 2년(1866년) 6월 5일의 막부의 선전포고에 의해서 개시되는 이번 제2차 조슈 정벌은 긴몬의 변(긴몬의 변)으로, 역적이 된 조슈를 막부가 징벌하는 것입니다. 조슈번은 이 일련의 전투를 '시쿄전쟁(四境戦争)'이라 부릅니다. 그 이름대로, 4개의 방향에서 막부가 공격해 온 것이지요. 원래 막부의 계획은 무려 5갈래로 갈라져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키방면에서 게이슈구치(芸州口), 이와미 방면에서 세키슈우구치(石州口), ..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3) 사카모토 료마 위기! 데라다야 사건 발발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3) 사카모토 료마 위기! 데라다야 사건 발발 게이오 2년(1866년) 1월 23일, 후시미의 선숙 데라다야(寺田屋)에 숙박하고 있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후시미봉행의 부하가 습격하니, 이것이 '데라다야 사건'입니다. 전에 데라다야 사건을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데라다야 사건) 사실 일본에는 데라다야 사건이 두개가 있습니다. 분큐 2년(1862년)에 일어난 사츠마번사끼리의 살상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번은 '데라다야 소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게이오 2년 1월 23일 에 일어난 후시미 봉행소에 의한 사카모토 료마의 체포극입니다. 긴몬의 변이나 제 1차 조슈 정벌에서도 사츠마번은 선두에서 조슈를 공격하였고 이것이 2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뿌리깊은 둘 사이의.. 더보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2) 사카모토 료마, 삿쵸 동맹을 성공시키다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2)사카모토 료마, 삿쵸 동맹을 성공시키다 게이오 2년(1866년) 1월 21일, 조슈번의 카츠라 코고로우(桂小五郎)와 사츠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중개에 의해 회견해, 삿초 동맹이 성립되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해 일본에서는 이 날을 '라이벌의 날'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게이오 원년(1865년) 5월 1일, 사이고 키치노스케(西郷吉之助)와 고마츠 다테와키(小松帯刀)와 함께, 사츠마번의 배고쵸우마루(胡蝶丸)을 타 가고시마로 간 사카모토 료마는 그들에게서, 실은 사츠마가 막부의 조슈 정벌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나 조슈와의 화해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전의 분큐 3년(1863년)에 발발한 8월 18일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