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후시미성 공방전, 서군의 후시미성 점령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후시미성 공방전, 서군의 후시미성 점령 게이쵸5년(1600년) 7월 19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부재중인 후시미성을, 이시다 미쓰나리의 명령을 받은 모리 히데모토(毛利秀元),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등이 공격해 본격적인 세키가하라 전투의 막이 올랐습니다. 게이쵸 3년(1598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유언에서 오대로와 오봉행을 임명하고, 불과 6세인 히데요리의 장래를 맡기고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히데요시의 유언)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때 벌써 60세에 가까운 나이, 그도 이제 천하를 손에 넣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어쨌든 지금은 그도 도요토미의 가신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히데요시라고 하는 중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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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시다 미쓰나리, 세력을 결집시키다 (2)요시쓰구의 에츠젠, 카가 설득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시다 미쓰나리, 세력을 결집시키다(2)요시쓰구의 에츠젠, 카가 설득 게이쵸 5년(1600년) 7월 14일,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찬동 한 오오타니 요시쓰구가, 에츠젠 츠루가성(敦賀城)에 귀환해 호쿠리쿠의 다이묘들에게 권유를 시작했습니다. 7월 11일의 사와산성의 회견에서, 친구인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찬동 하는 일을 결의한 오오타니 요시쓰구(大谷吉継)는 다음날, 마시타 나가모리(増田長盛)나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도 더해, 향후의 방침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상세한 것들을 결정해 나갑니다. 우선, 초소카베 모리치카(長宗我部盛親)나 나베시마 카쯔시게(鍋島勝茂) 등, 관서에 있어 아직 군세를 일으키지 않은 영주들에게 '아마 결전의 장소가 될 동쪽으로 향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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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시다 미쓰나리, 세력을 결집시키다(1) 요시쓰구 설득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시다 미쓰나리, 세력을 결집시키다(1) 요시쓰구 설득 게이쵸 5년(1600년) 7월 11일, 사와산성(佐和山城)에서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와 오오타니 요시쓰구(大谷吉継)가 회견해 군사를 일으킬 결의를 했씁니다. 오오타니 요시쓰구의 관직 전까지의 생애는 수수께끼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오오토모가의 가신인 오오타니 요시쯔구(大谷吉継)의 아들로 분고에 태어나 16세 때에, 하리마 평정 중에서 히메지성에 있던 이시다 미쓰나리를 통해 관직에 올랐다고 하나, 연령적으로 모순이 있어, 최근의 연구에서는 시가현의 요고쵸(余呉町) 출신이라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는, 전투를 동경하는 용감무쌍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용 이외에도 사무적인 재능이 있었고, 미쓰나리와 사이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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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병상의 히데요시, 유언을 남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병상의 히데요시, 유언을 남기다 게이쵸 3년(1598년) 8월 9일, 병상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마에다 토시이에등을 불러, 히데요리의 장래와 조선에서의 철군을 맡겼습니다. 이 해의 5월 부터 컨디션이 무너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서히 악화되는 병에, 자신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그는 거성인 후시미성(伏見城)에 여러 다이묘를 소집해 나라의 장래나, 아들인 히데요리의 장래에 대해서 여러가지 유언인 듯한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이쵸 3년 8월 9일, 병상의 히데요시는 사방침(팔꿈치를 걸치는 배게)에 의지하면서 일어 납니다. 그 앞의 왼쪽으로는 도쿠가와 이야에스, 마에다 토시이에, 다테 마사무네, 우키타 히데이에가 앉아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모리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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