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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데루모토, 히로시마성에서 출진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데루모토, 히로시마성에서 출진하



게이쵸5년(1600년) 7월 15일, 삼봉행(三奉行)의 연서장(連署状)을 받은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오사카로 향해 히로시마성을 출진했습니다.



모리 데루모토 초상화



 게이쵸 3년(1598년) 어린 히데요리를 오대로와 오봉행에게 맡겨, 도요토미 히데요는 죽었습니다.(히데요시의 유언) 마에다 토시이에가 중재하던 동안은 어떻게든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도요토미 가신단의 톱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를 경시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두고볼 수 없었던 오봉행의 한 사람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이에야스를 배제할 결의를 굳힙니다. 이것이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입니다.


 게이쵸5년(1600년) 정월에, 오대로의 한 명인 우에스기 키게카츠가 연하 인사를 하러 상경하지 않았던 것, 무기를 모으는 것등으로 '모반의 혐의가 있다'며, 카게카츠를 토벌한다고 하는 명목으로 이야에스는 후시미성을 떠났습니다. 이것을 절호의 기회라 본 미쓰나리는 7월 2일, 이에야스와 합류해 아이즈 정벌로 향하던 오오타니 요시쓰구를 설득해,요시쓰구는 갈등하다 이를 받아 들입니다.(요시쓰구 설득) 이 두명은 서군의 대장으로, 모리 데루모토를 앉히려 합니다.


 데루모토는 관서의 대영웅 모리 모토나리의 손자입니다. 모토나리의 적남인 타카모토(隆元)가 급사해, 어릴 적부터 후계자로 여겨진 그는 '모리의 료카와(毛利の両川)'라고 불린 모토나리의 차남 깃카와 모토하루와 삼남 코바야카와 다카카게가 그를 잘 보좌해 냈습니다. 하지만 일설에는 삼촌들이 과보호 했기에, 데루모토는 철이 없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모리가 히데요시의 산하가 되고 나서는, 시코쿠 정벌(시고쿠 정벌)이나 큐슈 정벌(큐슈정벌)에도 출진하고 있지만, 그 때의 주력이 된 것은 역시 깃카와대와 코바야카와대 였습니다. 데루모토가 오대로의 한 명이 될 수가 있었던 것도, 이 '료카와'의 활약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세키가하라의 무렵에는 깃카와가는 모토하루의 아들 히로이에(広家)가 당주였으며, 코바야카와가는 다카카게의 양자인 히데아키(秀秋: 히데요시의 정실 네네의 조카)가 뒤를 잇고 있었습니다.



안코쿠지엔케이 목조상



 그런 데루모토 앞으로 미쓰나리와 요시쓰구 오봉행 중 세 명 마에다 겐이(前田玄以), 마시타 나가모리(増田長盛),나가츠카 마사이에(長束正家)의 이름이 적혀진 연서장을 보냅니다. 7월 12 날짜의 그 서신에는 '자세한 것은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에게 고, 오사카에 와 주십시오' 라 적혀 있었습니다. 이 서신을 읽은 데루모토 즉시 준비해,  게이쵸5년(1600년) 7월 15일, 히로시마성을 출진합니다. 그는 배를 타고 세토내해를 항해해, 오사카로 향합니다. 이것에 놀란 것은, 깃카와가를 잇고 있던 히로이에입니다. 그는, '이미 시대는 이에야스의 것이다'라고 읽고, 독단으로 은밀하게 이에야스에게 모리의 영지를 안도받을 약속을 하고, 동군에 붙는 일을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데루모토는 아직 이 시점에서는 총대장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고, 단지 '불렸기 때문에 가 본다'라고 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미쓰나리 이하의 서군 쪽에서도, 그가 총대장으로 결정되고 있던 것이 아닐뿐더러, 반대 의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리가의 참모인 안코쿠지 에케이와 이시다 미쓰나리의 언변으로 그가 총대장을 맡게 됩니다. 그의 사촌형제로 양자가 되었던 모리 히데모토(毛利秀元)는 이에 한탄했다고 하니, 모리가 내에서도 데루모토의 서군 참전에 찬반이 갈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세키가하라 당일에 모리 데루모토는 출진하지 않습니다. 오사카성에 머무르며, 히데모토를 대신해 출진시킵니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이미 이야에스와 이야기가 통해있던 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모리가는 동, 서 양군에 의리를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아마 데루모토의 계산으로는 서군이 이기면 총대장인 자신이 좋고, 동군이 이기면 어쨋든 움직이지 않긴 했으니 최소한의 입장은 섭니다. 또한 양군이 격렬히 전투해 크게 피해를 입으면 온전하게 군세를 남긴 자신이 패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는 동군의 대승리로 끝나, 모리의 영지는 크게 깍아져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