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야에스가 오사카성에 들어가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야에스가 오사카성에 들어가다


 게이쵸4년(1599년) 9월 27일, 삭발해 교토 산본기(三本木)에 은거한 기타노만도코로(고우다이인)에 대신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 니시노마루(西ノ丸)에 들어 갔습니다.


 게이쵸 3년 (1598년)의 8월 18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에, 이때까지, 오사카성의 니시노마루에 있던 기타노만도코로(고우다이인)는 삭발해 비구니가 되어, 교토 산본기의 저택으로 옮깁니다. 다음날의 게이쵸4년(1599년) 9월 27일에, 당시 거점으로 하고 있던 후시미성에서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려 이야에스가 오사카 성의 니시노마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에 도요토미를 멸하러 이동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요토미의 흥망을 지켜본 오사카성



 히데요시는 유언으로 후시미성에 있던 히데요리와 요도도노에게 오사카성으로 이동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게이쵸 4년 정월 10일에 그들은 이동했고, 아직 어린 히데요시를 대신해 요도도노가 정무를 본 것으로, 히데요시가 역시 유언에서 도요토미가의 장례를 맡긴 이야에스가 오사카성에 들어온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이윽고 그 다음해 미쓰나리 습격사건 이후(이시다 미쓰나리 습격당하다) 우에스기를 토벌하려 이야에스는 떠나버립니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하고,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9월 27일에는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으로 돌아와 히데요리와 요도도노에게 전승 보고를 하는 것과 동시에, 도요토미 가문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는 그대로, 오사카 성 니시노마루에서 해를 넘겨, 다음 해인 게이쵸6년(1601년)의 3월 23일에 후시미성으로 돌아오옸습니다. 즉,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야에스는 도요토미 가문 내에서 실권을 잡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