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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북조 시대/역사편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남북조 동란의 시작, 고묘덴노 즉위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남북조 동란의 시작, 고묘덴노 즉위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8월 15일, 북조 제 2대 고묘 덴노가 즉위 했습니다. 함께 가마쿠라막부를 무너뜨렸지만(가마쿠라막부 멸망), 고다이고덴노가 연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에 반발해 갈등이 시작됩니다. 결국, 둘은 싸우게 되어 큐슈로 도망쳤던 타카우지는 재기해 교토로 향합니다.(타카우지 상경) 연전연패하는 덴노군에 당황한 고다이고덴노는 구노스키 마사시게를 불렀습니다. 마사시게는 교토로 적을 유인하는 작전을 제의합니다만, 덴노가 정의롭지 못하게 도망칠 수 없다며 기각합니다. 이에 마사시게는 죽음을 각오해 겐무 3년 5월 15일 요시사다가 있는 효고로 향해 미나토가와 전투에서 전사하고, 교토는 점령되고 맙니다.(교토 점령) 타카우..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타카우지 교토 점령, 세차례에 걸친 교토 전투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타카우지 교토 점령, 세차례에 걸친 교토 전투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6월 30일 아시카가 타카우지로부터 교토 탈환을 시도한 닛타 요시사다등 고다이고덴노 측이 패배하는 교토 전투가 있었습니다. 함께 가마쿠라막부를 무너뜨렸지만(가마쿠라막부 멸망), 고다이고덴노가 연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에 반발해 갈등이 시작됩니다. 결국, 둘은 싸우게 되어 큐슈로 도망쳤던 타카우지는 재기해 교토로 향합니다.(타카우지 상경) 연전연패하는 덴노군에 당황한 고다이고덴노는 구노스키 마사시게를 불렀습니다. 마사시게는 교토로 적을 유인하는 작전을 제의합니다만, 덴노가 정의롭지 못하게 도망칠 수 없다며 기각합니다. 이에 마사시게는 죽음을 각오해 겐무 3년 5월 15일 요시사다가 있는 효고로 향..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미나토가와 전투에서 마사시게 전사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미나토가와 전투에서 마사시게 전사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5월 25일은, 미나토가와 전투(湊川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함께 가마쿠라막부를 무너뜨렸지만(가마쿠라막부 멸망), 고다이고덴노가 연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에 반발해 갈등이 시작됩니다. 결국, 둘은 싸우게 되어 큐슈로 도망쳤던 타카우지는 재기해 교토로 향합니다.(타카우지 상경) 연전연패하는 덴노군에 당황한 고다이고덴노는 구노스키 마사시게를 불렀습니다. 마사시게는 교토로 적을 유인하는 작전을 제의합니다만, 덴노가 정의롭지 못하게 도망칠 수 없다며 기각합니다. 이에 마사시게는 죽음을 각오해 겐무 3년 5월 15일 요시사다가 있는 효고로 향합니다. 타카우지의 군사를 요시사다, 마사시게 등이 맞아 싸운 전투가 바로 '..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쿠노스키 마사시게, 마사유키 사쿠라이의 이별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쿠노스키 마사시게, 마사유키 사쿠라이의 이별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5월 16일, 고다이고 덴노의 명령을 받은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효고를 향해 출진했습니다. 함께 가마쿠라막부를 무너뜨렸지만(가마쿠라막부 멸망), 고다이고덴노가 연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에 반발해 갈등이 시작됩니다. 결국, 둘은 싸우게 되어 큐슈로 도망쳤던 타카우지는 재기해 교토로 향합니다.(타카우지 상경) 연전연패하는 덴노군에 당황한 고다이고덴노는 구노스키 마사시게를 불렀습니다. 마사시게는 교토로 적을 유인하는 작전을 제의합니다만, 덴노가 정의롭지 못하게 도망칠 수 없다며 기각합니다. 이에 마사시게는 죽음을 각오해 겐무 3년 5월 15일 요시사다가 있는 효고로 향합니다. 이윽고 카와치와의 갈림길이..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타카우지, 타자이부에서 상경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아시카가 타카우지, 타자이부에서 상경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4월 26일, 타타하마 전투에서 승리한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교토를 목표로 해 타자이부(大宰府)를 출발했습니다. 함께 가마쿠라막부를 무너뜨렸지만(가마쿠라막부 멸망), 고다이고덴노가 연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에 반발하는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호조 잔당 토벌을 위해서 가마쿠라에 머문 채로 교토에는 돌아오지 않고, 반대로 고다이고덴노에게서 파견된 닛타 요시사다를 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로(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 닛타군을 추격 하면서 교토로 쳐들어갔습니다. 도중에 참전한 토호쿠의 무사들을 가세해 80만이라는 대군이 되어 교토로 쳐들어가는 아시카가군에 대해, 고다이고덴노는 히에이잔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여기서..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타카우지 재개, 타타리하마 전투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타카우지 재개, 타타리하마 전투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3월 2일, 교토에서 쫓겨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치쿠젠 타타라하마(多々良浜)에서 키쿠치 타케토시(菊池武敏)를 물리치고 재기했습니다. 함께 가마쿠라막부를 무너뜨렸지만(가마쿠라막부 멸망), 고다이고덴노가 연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에 반발하는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호조 잔당 토벌을 위해서 가마쿠라에 머문 채로 교토에는 돌아오지 않고, 반대로 고다이고덴노에게서 파견된 닛타 요시사다를 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로(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 닛타군을 추격 하면서 교토로 쳐들어갔습니다. 도중에 참전한 토호쿠의 무사들을 가세해 80만이라는 대군이 되어 교토로 쳐들어가는 아시카가군에 대해, 고다이고덴노는 히에이잔으로 몸을 숨겼..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닛타 요시사다의 덴노군, 교토 탈환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닛타 요시사다의 덴노군, 교토 탈환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1월 27일, 미이데라(三井寺)에 주둔하고 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군을 닛타 요시사다가 이끄는 고다이고덴노군이 공격해 덴노군이 교토를 탈환했습니다. 제96대 고다이고덴노가 아시카가 다카우지,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등의 아군을 얻어 가마쿠라 막부를 넘어뜨려 시작된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 그러나 공적이 있던 무사 들을 등한시해 문신을 우선한 개혁은 무사들의 큰 불만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나카센다이의 난을 토벌한 뒤에(나카센다이의 난) 가마쿠라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닛타 요시사다는 고다이고덴노의 군세를 이끌고 아시카가 타카우지 토벌에 나섭니다.(닛타 요시사다 출진) 하지만 ..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타카우지 참전; 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타카우지 참전; 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 겐무 2년(1335년) 12월 11일, 고다이고덴노의 명령으로, 토벌에 향한 닛타 요시사다를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토벌한 '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箱根・竹ノ下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 카테고리는 남북조의 동란입니다만, 그 동안은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겐무의 신정을 행하는 고다이고덴노와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대립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투로 표면화되어 곧 타카우지의 북조와 고다이고덴노의 남조로 나뉘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남북조의 쟁란의 계기가 되는 것이 오늘의 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입니다. 모반의 소문이 흐르는 아시카가 타카우지 토벌을 위해 출진한 닛타 요시사다지만, 정작 타카우지는 '수하 무사들을 도우려 했을 뿐 덴노에게..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닛타 요시사다, 타카우지 토벌군으로 출진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닛타 요시사다, 타카우지 토벌군으로 출진 겐무2년(1335년) 11월 19일, 아시카가 타카우지 토벌 명령을 받은 닛타 요시사다가 교토에서 출진 했습니다. 겐코 3년(1333년) 5월 길게 정권을 잡고 있던 호조 가문의 제14대 쇼군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와 가마쿠라막부를 끝내 겐무의 신정을 개시 한 고다이고덴노였지만,(겐무의 신정) 그 신정은 귀족이나 문신에 치우쳐져 있어, 실제로 막부를 토벌한 공로가 있던 무사에게는 은상이 적어 양자의 갈등은 깊어집니다. 이런 가운데 죽은 다카토키의 유아인 호조 토키유키를 옹립해 스와 요리시게가 호조 복권을 위해 나카센다이의 란을 일으켰습니다.(나카센다이의 란) 이를 진압하러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움직이게 됩니다만, 조건으로 '정이대장군(쇼군..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다카우지, 나카센다이의 난을 진압하다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다카우지, 나카센다이의 난을 진압하다 겐무2년(1335년) 8월 19일, 지난 달에 발발한 나카센다이의 란의 주력이던 스와 요리시게등이 할복 해, 아시카가 다카우지에 의해 난이 진압되었습니다. 겐무2년(1335년) 7월 23일에 반란군이 가마쿠라를 점거한 나카센다이의 난(나카센다이의 난)에서 사실상 호조 가문의 마지막 쇼군인 호조 다카토키의 어린 아들 호조 토키유키(北条時行)는 스와 요리시게 등의 세력에 의해 반란군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반란군은 기세를 몰아 가마쿠라를 점령했고, 이에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동생 나오요시와 황태자 나루요시 친왕(成良親王), 어린 타카우지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아키라(足利義詮)를 데려 가마쿠라에서 탈출해 스루가로 향합니다. 탈출한 나요요시의 통지에 의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