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닛타 요시사다의 덴노군, 교토 탈환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1월 27일, 미이데라(三井寺)에 주둔하고 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군을 닛타 요시사다가 이끄는 고다이고덴노군이 공격해 덴노군이 교토를 탈환했습니다.
닛타 요시사다
제96대 고다이고덴노가 아시카가 다카우지,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등의 아군을 얻어 가마쿠라 막부를 넘어뜨려 시작된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 그러나 공적이 있던 무사 들을 등한시해 문신을 우선한 개혁은 무사들의 큰 불만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나카센다이의 난을 토벌한 뒤에(나카센다이의 난) 가마쿠라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닛타 요시사다는 고다이고덴노의 군세를 이끌고 아시카가 타카우지 토벌에 나섭니다.(닛타 요시사다 출진) 하지만 정작 덴노에게 반기를 들 생각이 없어 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있던 타카우지는 동생이 위조한 윤지를 보고 분노해 출전해 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에서 승리를 장식합니다.(하코네 타케노시타 전투) 그리고 그의 군세는 교토로 향합니다.
상기의 신정으로 불만을 가진 각지의 무사들이 타카우지의 아래로 모여, 이미 80만의 대군으로 부풀어 오른 아시카가군이 교토를 제압하자, 부득이 고다이고덴노는 히에이잔으로 도망칩니다. 덴노군은 히에이잔을 거점으로 북국, 오슈의 지원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한편 타카우지는 당시 히에이잔과 적대 관계에 있던 미이데라에 가람 축조를 약속하고 주둔을 인정하게 해 이곳을 거점으로 합니다. 이윽고, 교토의 급한 소식을 듣고, 토호쿠에서 밤낮을 불문하고 달려온 기타바타케 아키이에(北畠顕家) 군이 덴노측에 합류합니다. 이렇게 해 토호쿠의 원군을 얻은 덴노측은 겐무 3년(1336년)의 정월, 전군이 미이데라에 총공격을 실시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한편 미이데라에서 아시카가군의 지휘를 맡고 있던 호소카와 조젠(細川定禅)은 이 총공격을 감지해, 타카우지에게 원군을 요청합니다만, 타카우지는 원군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닛타군이 누문을 돌파해 마이데라의 군세는 크게 패배해 버립니다. 산죠가와(三条河) 강변에서 출진하던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군과 마이데라의 패전병은 합류해 총원 80만의 대군이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꺾인 사기에다, 2만뿐이지만 그 적은 수를 장점으로 기동력을 살린 닛타군에 연전연패해 타카우지는 세번이나 할복을 결의했지만, 밤이되어 닛타군이 추격을 그만둔 것으로, 타카우지는 구사일생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은 「태평기」에 있는 것으로, 실제보다 과장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시카가 토벌을 결의하는 구노스키 마사시게
정예군을 맡고 있던 센다이(定禅)가 설욕을 위해 분전해 닛타군은 사카모토까지 철퇴하게 됩니다. 여디에 토호쿠에서 달려온 쇼왕(ショウ王) 등이 합류해 활기를 얻은 덴노군은 교토 탈환을 겐무 3년 1월 27일에 행하기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기충천한 10만 3천의 덴노군은 개전과 동시에 노도와 같이 교토로 몰려들어 아시카가군은 패퇴했습니다. 하지만 저녁에 구노스키 마사시게의 전언에 의해 군세를 쉬게하기위해 사카모토까지 철퇴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 철퇴 작전이여서, 보기좋게 걸린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교토로 돌아오면 다시 기습을 받아 도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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