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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북조 시대/역사편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타카우지 정이대장군에 임명되다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타카우지 정이대장군에 임명되다



엔겐 3년(레키오우 원년 1338년) 8월 11일,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북조에서 정이 대장군(=쇼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아시카가는 야와타 타로우(八幡太郎) 불린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의 손자 요시아스(義康)가 시모쓰케국 아시카가에 산 것을 계기로, 성을 아시카가로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겐페이 쟁란의 시대는, 그 요시아스의 아들인 요시카네(義兼)의 시대에, 이즈에서 군사를 일으킴 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따라, 대 타이라전에서 무공을 세웠고, 그 호조 도키마사의 딸과 결혼해, 가마쿠라 막부에서도 경의를 표해지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아시카가 본가의 혈통의 당주 아시카가 사다우지(足利貞氏)의 차남으로 가겐 3년(1305년)에 태어난 타카우지 형의 죽음으로 인해, 아시카가 가문의 당주가 되었습니다. 덧붙여서, 타카우지라고 하는 이름은, 제14대 집권 호조 다카토키에게서 한 자를 받은 것입니다. 제 96대 고다이고덴노가 가마쿠라 막부를 넘어트리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겐코의 변(겐코의 변)에서는, 호조명령을 받아, 이것을 평정 하기로 했습니다.



아시카가 타카우지



  그러나, 원래 미나모토 본가의 혈통인 요리토모가 연 가마쿠라막부는 타이라의 분가인 호조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막부 토벌의 의지를 마음속으로 품고있었습니다. 고다이고덴노가 다시한번 탈출해 아들인 모리요시 친왕이 요시노산에 간 겐코 3년(1333년)에는 다시 호조의 명령을 받아 토벌로 향했지만, 그는 돌아서서 로쿠하라탄다이를 공격합니다.(로쿠하라 탄다이 멸망) 겐지의 유파를 이어받는 닛타 요시사다도 동국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겐코 3년(1333년) 5월 22일 가마쿠라 막부는 멸망했습니다.(가마쿠라막부 멸망) 하지만 이후 고다이고덴노가 시작한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은 문신들에게 치우쳤기에 무신들은 점차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고다이고덴노는 아들인 모리나가 친왕을 정이 대장군에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던 덴노와 친왕은이기에, 결국 모리나가 친왕은 불과 수개월에 해임 되었습니다.  겐무2년(1335년), 가마쿠라막부 멸망 때에 할복 했던 호조 다카토키의 유아 토키유키를 옹립한 반란군이 가마쿠라를 공격합니다. 나카센다이의 난의 발발로  타카우지가 부재중인 가마쿠라를 나오요시가 지켰지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정이 대장군에 임명을 요청하나, 이것은 기각되고 맙니다. 대신 은상 수여권만을 지니고, 반란군을 토벌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가마쿠라에서 교토로 돌아오지 않아 고다이고덴노의 의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큐슈로 퇴각했지만, 결국 다시 교토를 탈환해 구노스키 마사시게를 토벌해 스스로의 손으로 제 93대 고부시미덴노의 제 2 친왕(황태자)를 옹립해 고묘덴노로 즉위시켰습니다. 한편, 진짜 삼신기를 가지고 요시노로 도주한 고다이고덴노는 남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엔겐 3년 결국 그는 자신의 손으로 새운 덴노에게 쇼군으로 임명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