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기타바타케 아키이에, 가마쿠라 점령뒤 상경 시작
엔겐 3년, 겐무5년(1338년) 1월 8일, 전년의 말미에 가마쿠라를 공략한 기타바타케 아키이에(北畠顕家)가 교토를 목표로 해 가마쿠라를 출발했습니다.
너무나 문신 중심으로 진행되어, 무사를 무시한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에 반발해, 고다이고덴노에 반기를 든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패배해 고다이고덴노측은 교토를 빼았깁니다.(교토전투) 결국 고다이고덴노가 교토로 돌아오며 갈등을 인단락됩니다. 하지만, 닛타 요시사다는 고다이고덴노의 밀명을 받고 북국으로 향했습니다. (요시사다 북국을 향하다) 그리고 아시카가군은 남조의 성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기타바타케 아키이에
오슈에서 고다이고덴노를 돕기 위해 먼길을 달려 온 이가 바로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입니다. 그의 아버지 기타바타케 치카후사(北畠親房)는 고다이고덴노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이며, 고다이고덴노 정권의 참모이며 후견역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 출자는 무라카미겐지가 유파를 이어받는 공경으로, 상당한 명가였습니다 . 이 즈음의 기타바타케 가문에는 치카후사가 이미 출가하고 있었으므로, 사실상의 아들인 아키이에가 당주였습니다.아키이에는 겐무의 신정이 시작된 겐무 3년(1333년) 무츠 수호(陸奥守)에 임명되어 덴노의 친왕(황태자) 타카요시 친왕을 받을어 오슈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이 2년 뒤에, 관동 지배 담당이었던 타카우지가 반기를 든 것으로 여기에 와서, 교토가 잠령되어 요시노에서 조정을 연 고다이고덴노의 일이나, 북국으로 도망친 닛타 요시사다의 분전(요시사다 북국으로 향하다)을 우연히 들은 아카이에는 가마쿠라를 공략할 결의를 굳혀 엔겐 2년, 겐무 4년(1337년) 8월, 10만여기의 군세를 이끌고 시라가와 관(白河の関)을 출발했습니다. 물론, 타카우지 측도 그것을 맞아 싸울 각오를 했습니다. 가마쿠라를 지키는 것은, 카마쿠라 관령이 되어 있는 타카우지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아키라(足利義詮)였습니다. 그는 부하를 시켜 8만여기의 군사를 붙여 토네가와(利根川)의 하류에서, 기타바타케군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수략이 늘어난 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에서 대치한 양자는 물이 줄어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라(이때는 아이였습니다만)
하지만 아키이에는 가신의 진언을 받아들여 도하를 강항해 급습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시카가군은 패배해 가마쿠라측으로 퇴각하게 됩니다. 무사시에서 6일간 체제하며 가마쿠라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그 사이에 우츠노미야 킨츠나(宇都宮公綱)가 천기로 공격하고, 닛타 요시사다의 차남 도쿠주마루(徳寿丸)도 우에노 군사를 두고 무사시로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카센다이의 난을 주도했던 호조 토키유키도 이즈에서 군사를 일으켜 하코네에 진을 쳤습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라는 오직 11세의 나이로 모두를 격려하며 가마쿠라에서 농성을 합니다만, 그들의 군세는 오직 1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엔겐 2년, 겐무 4년(1337년) 12월 28일 결국 가마쿠라는 함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카가군은 패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카마쿠라를 손에 넣은 아키이에는 타카우지의 손에 떨어지고 있는 교토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엔겐 원년, 겐무 5년(1338년) 1월 8일, 상경을 위해 아키이에는 가마쿠라를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가마쿠라를 점령당한 아시카가군도 입다물고 있지 않고 뒤쫓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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